17화 낮은 회복탄력성, 내가 문제일까?

완벽주의자와 회복탄력성의 관계에서 자기를 수용하는 방법

by 유다월

자기 자신에게 유난히 엄격한 사람들이 있다.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고, 늘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사람들 말이다. 이는 기질적 성향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성장 과정에서 쌓인 경험과 주변의 기대가 그 마음을 더 단단히 조여 온 결과이기도 하다.

심리학적으로는 '높은 자기 기준(self-standards)' 혹은 '완벽주의적 성향(perfectionistic tendency)'으로 설명하는데, 그런 성향은 분명 성장의 발판이 된다.


완벽주의자는 때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넘어서기 어려운 목표에도 과감히 도전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실패 앞에서 일어난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커지면, 도전이 주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서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리거나, 도전을 시작하더라도 끝내는 '실패하지 않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실패를 마주했을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잘 다니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부도와 함께 사라질 수도 있다. 누구나 부러워할 자리에서 예기치 못한 권고사직을 당할 수도 있다. 건강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삶의 방식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리기도 한다. 주식이나 부동산에서 큰 수익을 내던 사람이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늘 실수 없던 시험에서 단 한 번의 방심으로 중요한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또,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뜻하지 않게 틈이 생겨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요즘의 근래 몇 년간, 특히 내 삶은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비칠지도 모른다. 사회가 정해놓은 엄격한 기준으로 본다면, 이미 실패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직장이라는 자리에서도, 결혼과 같은 관계의 영역에서도, 가끔은 ‘과연 내가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제대로 버티고 있는 걸까’라는 물음이 스치곤 한다.


또, 스스로를 항상 증명하려고 애쓰는 만큼, 그 열심히 내게 제대로 돌아오지 않을 때 오는 상처도 이루 말할 거 없이 컸다.




원래도 나는 날 외면했는데 그런 비난과 실패의 마음이 들 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회복의 속도는 점점 더 느려졌다. 회복이라 하면, 심리학에선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말이 있다. 이 개념에 대해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나의 삶 속에서는 그 의미를 온전히 체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란, 삶에서 맞닥뜨리는 역경이나 실패, 스트레스 상황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단순히 고통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적응 방식을 배우고, 이전보다 더 단단한 모습으로 성장해 나가는 힘을 말한다.



회복탄력성은 자신이 현재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실패나 역경을 바라보는 자신의 사고방식을 점검하는 인지적 유연성,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맺는 사회적 지지망,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 그리고 삶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목표와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것—이 모든 요소가 균형 있게 작용할 때, 비로소 제대로 기능하게 된다.




그러나 완벽주의자의 회복탄력성은 양면적이다.

이들은 목표 지향적이고 자기 규율이 강하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계획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지속할 수 있다. 그만큼 자기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실패를 분석하고 개선점을 찾는 과정에서 학습과 성장의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실패나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기면 과도한 자기비판과 죄책감에 빠지기 쉽다.

“완벽하게 하지 못했다”는 기준 때문에 작은 좌절에도 회복이 느려지고, 스트레스가 누적되기 쉽다. 인지적 유연성이 낮으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재평가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자책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런 대화를 일터와 같은 현장에서 하다가 어떤 이는 본인의 높은 회복탄력성에 대해 자신하는 사람이 있었다. 특히 그는 본인의 사회적 지지 체계에 대해 깊이 신뢰했다.


내게, 웃기게도 이 대화 자체에서도 회복탄력성이 낮다는 게 묘한 열등감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고, 패배감으로 올 때도 있었다.

완벽주의 성향이 여기서도 작용했던 탓이다. 그저 상대가 "그렇구나."가 아니라, "난 왜 저 사람처럼 안되지?", "난 왜 저 사람 같은 사회적 지지체계가 없었던 거지?"와 같은 자기비판으로 빠지게 되었다.


그 순간, 회복탄력성이 낮은 내가 문제인 것처럼 느꼈었다.




하지만, 회복탄력성이 낮다는 것은 결함이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단지 현재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신이 회복하는 방식이 아직 최적화되지 않았다는 신호일뿐이다. 회복탄력성은 선천적 특성보다는 학습과 경험을 통해 충분히 강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회적 지지 체계가 부족할 경우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불리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대체할 수 있는 전략과 내적 자원을 강화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자기 격려와 긍정적인 위로를 건네는 일, 글을 쓰며 마음을 정리하는 행위 모두 자신을 수용하고 사고를 안정화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외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노력도 도움이 된다.


내게 적절하고 안전한 커뮤니티에 합류하거나, 취미 동호회, 그리고 필요할 땐 공인된 상담가나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것도 굉장히 적극적인 노력이 될 수 있다. 이 마저도 어렵더라도 무엇보다 인지적 유연성을 갖고 상황을 다각도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스스로 설정한 작은 목표들을 꾸준히 달성해 나가는 과정이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데 큰 힘이 된다.

결코, 결함이 아니다. 다만 힘써 애써야하는 영역이다.



나는 이런 글을 적으면서도 외면한 나를 다시 바라보려고 많이 애쓰면서, 동시의 현재의 나를 포기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스스로 마음가짐을 단단히 먹기로 노력하더라도, 때론 풍량을 만나 흔들려 전복되는 배와 같이 될 때가 우리 삶에 없는 게 아니니까.

그럴 때 용기 있게 나는 누구에게, 그리고 어디에, 그리고 나 자신에게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인생은 좁고 긴 터널과도 같아서, 스스로를 다그치는 성향이 괴로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인생을 온전히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회복하고, 다시 일어서고, 오뚝이처럼 언제든 스스로를 세울 수 있도록.


오늘도 나는 나를 지키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품는다. 삶의 풍랑 속에서 넘어질 때마다 자신을 다그치거나 비난하지 말고, 잠시 숨을 고르고 내 안의 중심을 찾아보길. 작은 용기와 자기 다독임이 모여, 어떤 시련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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