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나를 외면했을까?
* 마지막화입니다.
10월에 이직한 직장에서 한 달만에 퇴사를 하게 되었다.
내 발로 나가게 되었지만, 한 편으로는 나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글쎄 근데, 하나씩 다 따지고 보면 내가 큰 업무 실수를 한 것도 아니었고, 어떠한 역량을 발휘했던 것도 아니다. 참 시기와 환경이 그곳이 내 자리가 아니었던 건지 당장 어떤 회사를 가려고 다음 이직처를 마련하지 못하고 나왔다.
그런 삶을 누가 살고 싶을까.
글을 올리지 못하고 한참을, 뭐부터 해야 타자를 다시 쓸 수 있을까 싶어 블로그를 오랜만에 정리하면서
나란 사람의 과정들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했다.
2023년부터 2025년을 쭉 돌아보니 삶을 타인과 비교함으로써 나오는 무력감과 불만들이 나를 괴롭히는 게 싫어서 스스로에게 집중하려고도 했던 순간들도 있고
분노했구나!
절망도 했고,
그럼에도 삶이라는 지평선 상의 곡선 중,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들도 많았어!
내 삶에는 행복도 슬픔도, 견딤도, 소소한 일상도 가득하니 어쩌면 내가 자족해야 하는 것은 이런 것이겠구나 싶다.
나는 겁이 많아 벌써 두렵다.
인간에겐 예견된 불행들이 몇몇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사랑하는 관계와의 이별이다.
집착했던 것들과 이별하는 일이다.
내 것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일들이다.
내가 이 생을 떠나는 것도 이별이고
그들이 먼저 내 곁을 떠나게 되는 걸 목도하는 것도 그러하다.
'세상엔 내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 육신도 내 것이 아니다.
사라짐의 그 결말과 과정의 방식이 참혹한 것인지, 편안한 것인지, 예상치도 못한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 하나도 불명확한 삶을 산다는 것에 어찌 그냥 행복만을 기대하며 살 수 있을까!
그저 안부를 묻는 행위나, 기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건, 우리 삶의 긍정적인 것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강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실존주의 심리학에서는, 그래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죽음, 자유와 책임, 고독, 무의미라는 4가지 실존적 조건에 직면하여 개인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창조해 나간다.
실존의 네 가지 조건—죽음, 자유, 고독, 무의미—올해는 특히 그 앞에서 나는 의미를 스스로 빚어내야 했다.
정말로 날 외면했던 걸, 결과적으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퇴사를 통해서, 대체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지를 어렴풋 느끼고 있다.
이제는 외면하지 말고 마주하라!
직장의 수가 참으로 많이 변했던, 이례적이었던 2025년이었다.
하지만 또 이렇게 아주 과거부터의 글을 하나씩 정리해 보니
내가 웃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없었던 게 아님을
그러면서도 울고 고통스러워했던 나날들 속에서
삶은 또 다른 방식으로 피어났다.
이 또한 국가의 평화가 이어졌기에 내가 누릴 수 있었던 하루였던 거겠지.
평화와 평안을 위해
노를 저어라.
치러야 할 전쟁에선 승리하고자 애쓰며
나의 삶의 유한함을 인정해야 한다.
현재를 사랑해야 함을.
그러다 보면, 나는 내 삶의 영적 사명도
인간으로서의 본분도
알아가게 되지 않을까.
인내하고 연단하여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글을 쓰가 어려웠다.
그동안 난 어떤 강인한 글을 쓰려고 했던 거였을까.
그러나, 정말 외면해야 하지 말아야 했던 건 내가 느끼는 단편마다의 감정이나 욕구였을지도 모르지만
진짜로는 이 삶이 가져다주는 진실성과, 내가 갖고 있는 능력과, 현실, 그리고 인생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삶의 과업과 위기, 그리고 일상, 사회, 개인의 바람들이었음을.
우리는, 단순한 위로 속에 기대고 있으면서도
그 위로만이 이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니며
어쩔 수 없이 버텨야 하는 것들과
환경에서 오는 안락감과 고통들을 반복하며 다 같이 버티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마주하러 다음 글을 쓰고자 한다.
그 글에는, 없는 일을 끌어올리지도 말고 있는 일을 너무 적게 적어나 부풀리지도 말길 바라며.
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던 이들이 있다면
그 삶에 작게나마 기댐이 되거나, 생각으로 남아주셨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