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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Aug 01. 2024

립스틱 짙게 바르고

ep. 20




7살 때쯤이었던 것 같다. 일을 하러 가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엄마의 뒤꽁무니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엄마는 화장대에 앉아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팩트로 피부를 톡톡 치더니 연한 베이지색 셰도우를 눈두덩이 위에 펴 발랐다. 그리고는 조금 더 진한 베이지색 셰도우를 쌍꺼풀 라인을 따라 펴 발랐다. 마지막으로 진한 갈색의 셰도우를 아이라인을 따라 발라주었다. 반짝이는 펄이 들어간 갈색 계열의 셰도우들이 엄마의 눈두덩이 위에서 영롱하게 반짝였다. 엄마가 턱을 들고 마스카라를 바르기 위해 눈을 치켜뜰 때에도 엄마의 턱밑에서 화장하는 엄마의 모습을 신기한 듯 지켜보았다. 마지막은 립스틱이었다. 입술라이너로 입술라인을 그린다음  벽돌색 립스틱을 채워 넣었다. 엄마가 입었던 밤색 물방울무늬 블라우스와 엄마의 얼굴에 채워진 색깔들이 눈에 튀지 않지만 예쁘고 반짝이게 어우러졌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참 예뻤다. 맞춤옷 가게에서 일을 하던 엄마는 실크바지를 입고 또각또각 높은 굽을 신은채 일을 하러 나갔다.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가면 나는 엄마가 앉았던 화장대에 그대로 앉아 엄마의 화장품을 몰래 발라보고는 했다. 스무 살이 되자 당당하게 화장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얼굴에 발라보기도 하고 잡지에 나오는 화장품들과 화장법들을 연구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대만에 간 이후로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해서였을까. 한국에서는 결코 바르지 않았던 짙은색 립스틱을 다. 학생에게는 거금이었던 3~4만 원대의 나스 크루엘라 색상을 사고는 입술에 짙게 발라보았다. 나스의 립스틱은 펜슬타입으로 색깔마다 독특한 이름이 붙어있다. 크루엘라라는 이름을 본 순간부터 마음에 들었다. 101마리의 달마시안 속 크루엘라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 짙은 와인색상에 다크하고 매트한 립스틱 색상이 딱 내가 찾던 느낌이었다 싶었다. 그날 크루엘라 립스틱을 바르고 위에 또 덧바르고 다시 또 덧바르고 내가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덧발라보았다. 강렬한 색깔이 주는 무언의 용기를 통해서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초라하고 연약한 내진짜 모습을 짙은색으로 숨기고 싶었던것이었을까. 무리 진하게 덧칠을 해도 이 세상 속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저 마음속 가득한 분노와 나도 알지 못하는 응어리들을 표출해 내는 나만의 소심한 방법이었다. 마치 연약한 살들을 딱딱한 껍질로 감싸고있는 갑각류처럼...









대만에서의 모습들을 떠올려보면 참으로 유약했다. 나를 잘 몰랐고 나의 중심을 잡고 서있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두발로 땅을 딛고 있는데도 불안했고 언제 흔들려 넘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초조했다.


그랬던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책이 있었다.


대학교1학년 매주 화요일은 <현대문학습작>이라는 전공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대만의 신문이나 현대 문학 작품들을 해석하고 배우는 수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학년때는 모든 전공수업들이 힘들게 느껴졌지만 <현대문학습작>은 유독 더 힘들게 느껴졌다. 신문에 나오는 용어들이 이해도 안 될뿐더러 사전에 검색해도 잘 찾기 힘들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교수님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안경을 쓴 남자교수님이었다. 나는 겉모습을 보고 그 사람의 목소리를 예측하기를 좋아하는데 수님의 외형을 보고 첫 목소리를 들었을 때 혼자 속으로 외쳤다.


'역시 내 예감이 맞았어!'


얇고 가느다랗게 떨리는 음성에 보통의 남성보다 조금 높은 음역대의 톤이었다. 약간의 비음이 섞인 채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국어 발음을 흘리듯이 빠르게 말하셨다. 유독 마지막 발음을 뭉그러뜨리며 말씀하시고는 했는데 아무리 안간힘을 쓰고 집중해서 교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으려고 해도 중요한 동사들 밖에 들리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교수님의 웃음 섞인 농담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눈치껏 다른 친구들이 웃으면 따라 웃기 바빴다. 사실 1년 동안 어떻게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르고 통과했는지 모르겠다. 그랬던 내 머릿속에 유일하게 이 수업시간에 배웠던 문학작품이 남아 있었다. 바로 장샤오펑의 <아재 我在>라는 산문이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이 산문 속에서 발췌한 문장을 프린트로 나누어 주셨는데, 그날 바로 서점에 가서 이 책을 샀다.









겉표지만 보고는 절대 사지 않았을 그런 책이었다. 고대 문서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하고 세로로 글씨가 적혀있는 이 책을 서점에서 사들고는 집에 돌아와 사전을 찾아가며 읽어냈다. 비록 작가의 의도를 오롯이 이해하며 읽어내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고는 했다. 쩌면 아직도 이 책을 버리지 못하고 갖고 있는 이유도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내가 있다...我在... 워짜이..."


언제부터 이토록 나의 존재에 대해서 확인하고 싶었을까. 엄마와 나를 연결해 주는 탯줄을 끊어내고 세상밖으로 나올 때부터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임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나의 존재에 대해 확인받고 싶어 했다. 아마도 이런 마음속 갈증은 환경적 요소와 타고난 성향이 합쳐진 것이라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의 제목 두 글자를 소리 내어 읽는 순간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체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我喜,我悲,我貪戀,
我捨棄。。。。。。都因為 <我在>

내가 좋아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포기하는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있기 때문이다.

-張曉風 《我在》中-

 


내가 좋아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포기하는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 당연한 문장이 왜 나에게는 크나큰 위안으로 다가왔을까.


나는 스스로 내 존재를 부정하려 했다. 타인의 시선에 나를 맞추고 착한 딸 좋은 친구 훌륭한 학생으로 살아가려 했다. 내가 좋아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포기하는 그 모든 것들은 억누르고 무시한 채 내 삶의 중심에 내가 아닌 타인을 세워두려 했다. 그렇게 억눌리고 무시받던 진짜 나는 이 산문 속 문장을 만나 자각한 듯했다.


내 삶은 오롯이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나이며, 부끄럽고 못나고 당황스럽고 불안해하고 질투하는 모든 나의 모습을 꽁꽁 숨길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진짜 나라는 사람의 자아가 완성된다는 것을 알아차린것이다.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대만>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대만유학 시절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정리하고 회고하는 시 가질 수 있었다. 막연히 좋았던 기억과 힘들었던 일들을 추억하기보다 그런 시간들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글을 쓰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가 나의 등록금을 만들기 위해 밤에 대리운전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이 졸업장 하나를 받기 위해서 엄마를 힘들게 했다는 생각에 너무 고 죄송스러웠다. 과연 어떤 것으로 엄마의 희생과 헌신에 보답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알게 되었다. 대만에서 보냈던 그 시간들은 단순히 졸업장을 받아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음을. 그 속에서 진짜 나를 찾을 수 있었음을. 행복해지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그 순간이 진짜 행복이었음을. 나 또한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듯하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는 순간이 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약간은 선선한 날씨였다. 햇살도 좋고 바람도 시원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대만대학교 캠퍼스를 달리고 있었다. 이어폰 속에서는 심규선의 <부디>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초록색 야자수 잎들이 나를 향해 손짓해 주었고, 햇살이 나를 따스히 비춰주었다. 바람결이 내 머리를 어루만졌고 촉촉한 공기들이 나의 볼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 모든 것이 나였고, 내가 곧 그 모든 것이었음을. 자연 속에 살아 숨 쉬는 나의 숨결에 감사했다. 이곳에 존재하고 있음에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부족함 많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좋아해 주고 아껴준 동생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존재자체만으로도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친동생들과 다름없는 언주, 수현이, 선함과 사랑스러움으로 나의 곁에서 늘 용기와 응원을 보내준 보미, 나래에게 이 글을 통해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 대만에서의 수많은 희로애락을 함께 해주고 곁에 있어주어 너무나 감사하다고. 너희들 없이는 지금 이 순간도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야. 너무나 고맙고 사랑해 늘...











메인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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