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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Jul 04. 2024

대만에서 먹었던 음식에 관한 나의 소소한 기억들 #2

ep.16




비 오는 날 들었던 음악, 그곳에서 맛보았던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했던 음식, 축축하기도 따갑기도 했던 대만의 날씨들.


유학생에게 타국에서 맛보는 음식들은 달콤하기도 슬프기도 하다. 추억이 담겨있는 음식들의 향과 맛을 느낄 때면 집이 그리워지기도 하고, 낯선 향기와 맛을 만날 때면 흥미롭게 탐닉하고 싶어 진다.


입으로 먹는 행위는 가장 빠르게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그래서였을까 대만에서는 사실 배가 고파서 먹었던 기억보다 늘 정신적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입속에 음식을 담았던 것 같다.




#1. 500원짜리 스테이크 코스요리


대만돈으로 500원이면 한화로 약 2만 원 정도이다. 테이스티(TASTY)이라는 곳이었는데 2만 원으로 스테이크 코스요리를 즐길 수 있었다. 체인점으로 타이베이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캐주얼 레스토랑이다. 중간, 기말고사가 끝났을 때나, 학기가 끝났을 때 우리는 모아뒀던 쌈짓돈을 꺼내어 이곳에서 거하게 회포를 풀었다.


애피타이저부터 샐러드, 수프와 빵, 탕종류로 전채요리를 시작한다. 주요리는 소고기 스테이크부터 오리고기까지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사와 한잔과 음료, 디저트까지 포함된 코스였다. 이곳에 가기로 한날이면 하루종일 음식을 먹지 않았다. 위를 비워두고 경건한 마음으로 이곳의 음식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서 처음 입속으로 넣게 되는 애피타이저 한입은 황홀하게 느껴진다. 신기하게도 코스로 나오는 요리 하나하나가 다 너무 맛있었다. 사실 그 당시엔 무엇을 먹어도 맛있게 느껴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마도 그 음식들이 하나같이 맛있었다고 내가 기억하는 이유는 그곳에 가는 날은 힘들었던 한 학기를, 시험기간을 버텨낸 나에게 주는 보상심리가 곁들여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 디저트까지 알차게 먹고 나면 만족스럽게 배를 뚜둥기며 나와 이번 시험기간도, 이번학기도 잘 버텨낸 스스로를 토닥여주고는 했다. 2만 원의 행복이었다.




이미지출처: 구글






#2. 대만 속 태국, 와청(瓦城)


대만으로 가기전, 한국에 있을 때는 태국음식을 맛본 적이 없었다. 요즘처럼 콘텐츠로 다른 나라의 음식들을 자주 접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거니와 그 당시 우리에게 외식이라 함은 아웃백, 빕스, 혹은 중국집, 돼지갈빗집 정도였다.


간의 중국식 인테리어가 가미된 태국요리 전문점 같은 느낌이랄까. 어쨌든 이곳에서 태국 요리들을 맛본 이후로 나는 태국요리와 사랑에 빠졌다. 파파야로 만든 샐러드인 쏨땀부터 태국식 카레, 똠양꿈, 팟타이까지 정말 입맛에 잘 맞는 음식 같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태국식 밀크티까지 잔잔한 얼음으로 가득 채워 달달하게 한잔 마셔주면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대학교 졸업식 때 한국에서 엄마와 동생이 대만으로 왔었다. 그때 이곳을 데려갔는데 정말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한국사람이라면 호불호 없이 누구나 좋아할 맛이라는 생각을 했다. 음식이 맛있으니 그 나라까지도 궁금해서 졸업여행을 태국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태국에서는 길거리에 파는 팟타이도 정말 충격적으로 맛있었다.




대만에서 먹었던 와청瓦城의 음식들





#3. 대만에서 맛본 한국식 중국요리



유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한 중식당이 있었다. 바로 한국식 중국요리를 하는 식당이었다. 타이베이의 쭝샤오푸싱 이라는 곳에 위치해 있는 이 식당은 한국인 사장님 두 분이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간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먹었던 중국요리보다 맛있었다는 건 기억한다. 옛날 중국집 같은 분위기의 이곳은 가게가 작아서 테이블이 5~6개 밖에 없다. 유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알음알음 찾아오는 곳이었다. 이곳의 별미는 탕수육이었는데 요즘 흔히 먹는 찹쌀 탕수육이 아니라 정말 옛날식 바삭 탕수육이 나왔다. 바삭한 식감에 적당히 새콤 달콤한 소스를 부어먹으면 그곳이 바로 한국인 것처럼 느껴졌다. 사장님 내외분은 60대 정도로 보였는데 손님이 있어도 자주 싸우셨다. 처음에는 놀라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목으로 넘어가는지 몰랐지만, 여러 번 가다 보니 마치 엄마아빠가 싸우는 것처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우리는 우리의 먹을 것들을 먹어치웠다. 그렇게 싸우는 와중에도 음식의 맛은 변함이 없고 음식이 나오는 속도에도 지장이 없으신 것을 보면 요리고수임에 틀림없다.




#4. 타이베이 과일왕


동남아의 과일은 싸고 맛있는 걸로 유명하지만 대만의 과일은 조금 다르다. 대만의 과일은 다른 여느 동남아 과일과 달리 향과 식감이 더 좋다. 망고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동남아 과일과 달리 향이 더 강하고 식감이 쫀득하다. 대만에서 정말 좋았던 점은 과일을 원 없이 먹었다는 것인데, 가격도 저렴할뿐더러 먹기 좋게 잘라서 판매하기 때문에 과일을 먹고 난 후 음식물쓰레기 처리문제나, 껍질을 깎아먹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수박 같은 과일은 한통을 사서 다 먹을 수도 없었기에 잘라서 무게에 달아서 판매하는 것을 사 와서 먹고는 했다.


대만대학교 앞 공관야시장에는 저녁마다 리어카를 끌고 오시는 자칭 과일왕 할아버지가 있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국제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과일왕 할아버지의 리어카가 왔는지 확인하고는 했다. 할아버지는 아주 잘 드는 과도를 손에 쥐시고는 현란한 손기술로 과일껍질을 잘라내고 과일을 컷팅해 주셨다. 러면서 자신이 타이베이 과일왕이라고 했다. 하루는 과일왕이 추천해 주는 과일을 꼭 먹어보라고 하셨다. 몽키 바나나처럼 작은 바나나였는데 타이베이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과일이니 꼭 먹어보라고 했다. 나는 그냥 예전에 먹었던 몽키 바나나 같은 것이겠지 하고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반송 이를 사 왔다. 기숙사에서 그 바나나를 까먹고 정말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


'아니 무슨 이런... 맛이... 내가 알던 그 맛이 아닌데?!'


바나나인데 키위처럼 상큼한 맛이 나기도 하면서 과육이 쫀득쫀득거렸다. 그렇게 많이 달지도 않은데 바나나 향이 마지막에 입안에서 쫘악 퍼졌다. 알고 보니 그 과일은 빠지아오(芭蕉)라는 바나나과의 과일이었고 대만 남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과일이라고 했다.


"타이베이 과일왕 할아버지 진짜 인생 최고의 과일이었어요!"



이미지출처:구글   빠지아오(芭蕉)





#5. 백 원짜리 맥주와 안주 천국 러차오(熱炒)


러차오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포장마차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천막으로 된 이동식 가게는 아니고 건물에 있는 가게이다. 타이베이 장안똥루 지역에 러차오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여러 가게 중에 어디를 들어가도 맛이나 가격은 비슷하다. 그때는 맥주도 100원, 요리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안주들이 100원이었는데 지금은 160원 정도로 오른 듯하다.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금액이 안 오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겠지...


내가 가장 즐겨 먹었던 안주 메뉴들은 수안니바이로우(뜨거운 물에 데친 얇은 돼지고기 위에 소스를 뿌려주는 음식), 콩신차이(모닝글로리볶음), 꽁빠오지띵(중국식 닭요리), 펑리샤치오(파인애플과 새우튀김 위에 달달한 마요네즈소스를 얹어주는 음식) 있었다. 더운 나라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의 맛이란,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다. 거기다 밤이 된 거리를 밝히는 형형색색 간판들의 불빛, 기름에 볶아대는 음식냄새들까지 이곳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대만 100원짜리 술집 러차오(熱炒)





#6.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 피크닉 카페 


드라마 도깨비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나라로 훌쩍 넘어가고는 한다. 도라에몽 만화영화에서도 나오는 비밀의 문처럼 나에게도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 같은 카페가 있었다. 대만대학교에서 사범대학교로 향하는 뒤쪽길이 있었다. 큰대로들과 달리 골목들이 늘어선 이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학교가 끝나면 자주 이 길목에 있는 피크닉이라는 카페를 들르고는 했다. 대만에는 작고 아기자기한 콘셉트의 카페들이 참 많다. 골목골목마다 이런 곳에 이런 장소가 있나 싶을 정도로 숨어있는 예쁜 곳들이 많다. 비가 흠뻑 내리던 날 제출할 과제를 하기 위해서 피크닉 카페를 찾았다. 바깥에는 비가 와르르 쏟아지는데 그 카페의 작은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용한 실내에서는 따뜻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바깥의 상황이 마치 엽서 속 한 장면처럼 현실과 분리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나나와 사과, 키위를 섞어 갈아주는 과일주스 한잔을 주문하고 내가 자주 앉는 곳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카페의 한 모퉁이에는 방바닥처럼 되어서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아 있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 앉아 벽에 기대어 노트북을 펼쳤다. 워드 화면 위에 써내려 가야 할 리포트내용을 한참 째려보다 카페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을 내다보고는 했다. 지금도 한 번씩 흰 바탕에 까만 커서가 깜빡일 때면 머릿속에서 그곳이 떠오르고는 한다.




#7. 인병에 담긴 벨기에 맥주



학교 근처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우리의 아지트 같은 공간이 있었다. 사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곳인데 밖에서 외관으로 봤을 땐 그냥 카페 같았다. 대만 카페에서는 음식도 같이 판매하는 곳이 많기에 음식을 판매하는 카페인줄 알고 들어갔다. 그런데 내부 분위기는 밖에서 보는 것과 정 반대였다. 바(BAR) 같은 술집이었는데 이곳은 벨기에 맥주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함께 간 한국인 동생들과 주문을 하려고 사장님께 손을 들었다. 그리고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하려는데 사장님께서 우리에게 손짓하시며 이리로 와보라고 하셨다. 주방 쪽에 붙어 있는 곳으로 가니 복도에 커다란 냉장고들이 여러 개 붙어있었다. 와인처럼 보이는 병들이 종류별로 세워져 있었는데 사장님께서 이 중에서 먹고 싶은 맥주를 고르면 된다고 하셨다.


"와인이 아니라 맥주라고요?"


우리는 신기한 마음에 무엇인지 종류도 알지 못하는 병을 하나 선택했다. 잠시 후 사장님께서 안주와 함께 술을 가져다주셨다. 맥주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이날 이후로 이곳을 우리의 비밀 아지트로 만들자고 했다. 와인병 같은 커다란 병에 들어있는 벨기에 맥주는 우리를 매료시켰다. 그곳에 있는 각각 다른 종류의 라벨을 보고 맥주맛을 느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대만에서는 음식으로 세계여행이 가능하다.다시 대만에 가게 된다면 이곳이 아직 있는지 꼭 한번 들러보고 싶다.





벨기에 맥주










메인사진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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