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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Jun 27. 2024

대만에서 먹었던 음식에 관한 소소한 나의 기억들 #1

ep.15




#1. 별에서 온 그대가 불러온 치맥 열풍


학생활중 틈틈이 보았던 한국 드라마나 예능은 나에게 숨 쉴 구멍 같았다. 기숙사에서 혼자 밥 먹을 때 런닝맨을 보면서 먹고 있으면 마치 한국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잠들기 전 드라마를 틀어두면 한국집에 있는 것 같은 포근함이 느껴졌다. 2013년 겨울, 별에서 온 도민준 씨로 인해 대만도 후끈했다. "You are my destiny~그댄" 이 노래 가사만 흘러나와도 극 중 천송이가 "도민준 씨"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떠오르고는 했다.


별에서 온 그대가 인기몰이를 하기 전에는 대만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김치찌개, 불고기, 비빔밥, 한국식 바비큐(삼겹살구이) 정도의 메뉴를 판매했다. 그런데 별에서 온 그대로 치맥열풍이 불고 나서 타이베이 중심가에 한국식 치킨집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치킨을 어떻게 안 먹을 수 있겠는가. 함께 유학하던 한국인 동생들과 손을 잡고 이곳으로 향했다. 이른 저녁시간이었지만 이미 테이블은 대만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우리는 겨우 한자리를 잡아 앉았다. 대만에서 한국치킨을 먹다니 감격스러웠다. 여자 네 명이서 양념 한 마리 후라이드 한 마리를 시켰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 모두 1인 1 닭을 하고 싶었지만 유학생의 호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자제하기로 했다. 갓 튀긴 치킨의 맛은 많은 말이 필요가 없었다. 대만의 지파이를 사랑하지만 한국치킨의 맛은 또 다르니까. 거기에 생맥주를 한잔 곁들어 마시는 맛이란 정말 짜릿했다. 치킨의 바삭함과 맥주의 차갑고 톡소는 맛이 어우러져 몸서리 쳐지게 행복했다. 다음번에는 돈을 조금 더 모아서 1인 1 닭을 하기로 다짐했다.


얼마뒤에는 학교 앞 야시장에도 한국식 치킨을 파는 곳이 생겼다고 했다. 소문을 듣고 가보니 젊은 한국남자 두 명이 운영하고 있었다. 작은 부스 안에서 컵에 담아파는 닭강정을 판매하고 있었다. 소문에는 젊은 사장님 두 분이 고려대 법학과를 다니다가 이곳에 와서 창업을 했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나도 학업을 포기하고 이곳에서 닭을 튀겨서 팔까라는 생각을 아주 잠시, 아니 아주 많이 생각했다. 그러나 용기를 내지 못하고 원래의 목적대로 학업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그 당시 오븐마루였는지 굽네치킨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국의 프랜차이즈 치킨도 대만에 상륙했다.








#2. 운수 좋은 날


대만대학교 근처 한국식당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뚝배기에 담긴 김치찌개와 순두부 같은 찌개류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가격도 합리적이어서 점심때 자주 이곳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동생들과 밥을 먹으러 갔다. 나는 김치찌개를 시켰고 아주 맛있게 밥 한 그릇을 말아 뚝딱 해치웠다. 그런데 뚝배기의 내용물을 다 먹고 나니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검은색 물체가 뚝배기 바닥에 붙어있었다.


'내가 잘못본거겠지... 어제 잠을 못 잤더니 헛것이 보이나...? 설마... 에이 아니겠지... 아닐 거야...'


다리가 쪼그라들어 배를 보이고 누워있는 그 생명체는 바로 바퀴벌레였다.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 차라리 덜 맛있게 먹어서 끝까지 다 먹지 않았다면 그래서 못 봤다면 나았을까 싶었다. 충격의 눈망울로 종업원에게 보여주었다. 잠시 후 사장님이 나오셔서 죄송하다고 하시며 우리테이블의 밥값은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밥값이 문제가 아닌데... 나는 바퀴벌레를 우려낸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


어쨌든 다시 돌릴 수 없는 시간이었다. 보양식을 먹었다고 생각하자.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뒤로 약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무엇인가로 입을 헹궈내고 싶은 마음에 상큼한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 그래도 여전히 뚝배기 바닥에 있던 그 녀석의 충격적 비주얼이 잊히지 않았다. 앞으로 그 식당은 손절이라며 동생들과 씩씩대며 이야기를 하고는 자전거를 타고 기숙사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엉덩이 뒤쪽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펑'하고 났다. 나는 다른 차들이 달리면서 플라스틱 같은 물건을 밟았나 싶었다. 그런데 잠시 후 자전거가 안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자전거를 멈추고 뒷바퀴를 보니 내 자전거 바퀴가 터져 있었다. 앞에 먼저 달려가던 동생이 자전거를 세우고 토끼눈을 한채 나에게 왔다. 우리 둘은 눈을 맞추며 서로 크게 웃었다. 사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같이 나기도 했던 것 같다.


"무슨 이런 운수 좋은 날이 있냐."









#3. 초두부씨 죄송합니다.



대만의 샤오롱빠오 하면 생각나는 음식점 이름이 있다. 바로 타이펑(鼎泰豐)이다. 처음 타이펑에서 샤오롱빠오를 먹었을 때 정말 가히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아는 그 만두가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피가 얇은데 육즙과 만두소의 내용물이 어우러지는 맛이 예술이었다. 숟가락 위에 올려놓은 샤오롱빠오 한 덩이의 피를 살짝 찢어 육즙이 나오게 한 다음 얇게썬 생강채를 몇 점 얹어 먹으면 입안에서 춤을 춘다.

    


딩타이펑 샤오롱빠오


솔직히 이 조그마한 샤오롱빠오를 적어도 20개는 앉은자리에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딩타이펑은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라 그 당시 마음껏 먹기 위해서 대만 현지인이 추천해 준 곳을 찾았다. 중정기념당 뒤쪽에 위치한 오래된 가게인데 샤오롱빠오는 이 집이 더 잘한다고 했다. 가격도 저렴한 편에 다른 대만 음식들도 함께 팔았다.


이곳에서 나는 악명 높은 초두부씨를 만났다. 야시장을 지날 때마다 항상 나던 그 냄새, 알 수 없는 악취의 그 냄새가 초두부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번 그 맛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초두부씨를 이곳에서 한번 접해보기로 결심했다. 이곳은 샤오롱빠오도 맛있고 다른 음식들도 맛있으니까 초두부도 분명 맛있을 거야 라며 최면을 걸고 용감하게 한입 베어 물었다. 물컹한 듯 퍽퍽한 두부가 입안으로 들어왔고 두세 번 이빨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서 뱉어냈다. 나는 냄새로도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했기에 냄새가 고약하면 입으로 넣어도 맛이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홍어나 고수처럼 향이 강한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긴 하다. 그러니 초두부씨 너무 섭섭해하지는 마세요. 당신께만 그런 건 아니랍니다.



이미지출처: 핀터레스트







#4. 내 사랑 위미 딴삥


대만에는 아침식사만 판매하는 짜오찬디엔(早餐店)이 많다. 이곳에서는 보통 또지앙(豆漿)-달달한 콩물, 딴삥(蛋餅)- 또띠야 같은 전병 위에 계란을 굽고 각종 재료들을 넣어 구워주는 음식, 로보까오(蘿蔔糕)-무떡, 산밍쯔(三明治)-샌드위치 등이 있다. 가격도 대만돈 40~60원(한화 1600원~2400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라 가볍게 아침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한 대만의 아침식사는 바로 옥수수를 넣은 딴삥이었다. 딴삥은 종류가 다양해서 치즈, 참치, 햄등을 추가해서 먹을 수 있다. 옥수수 딴삥을 주문하면 사장님이 바로 앞에 있는 철판에 구워주신다. 먼저 계란을 풀고 옥수수알갱이를 무심하게 한두 스푼 넣는다. 그리고 철판 위에 삥을 얹는다. 이 딴삥에 사용하는 삥의 식감이 정말 특이하다. 또띠야와 라이스페이퍼의 중간쯤 되는 식감이랄까. 뭔가 쫀득하면서도 또띠야보다는 얇으면서 식감이 착착 달라붙는다. 전병 한쪽면이 조금 데워지는 동안 그 옆에 계란에 옥수수를 넣은 물을 부어 굽는다. 그리고 계란이 살짝 익으려고 하면 그때 그 위로 삥을 올려서 계란말이처럼 몇 번을 접는다. 사장님은 숙련된 기술로 철판 위에서 뒤집개를 이용해서 바로 컷팅을 해주신다. 이 딴삥을 찍어먹는 간장 소스가 정말 예술이다. 대만은 소스를 참 잘 만드는 것 같다. 짭조름하면서 단맛이 살짝 도는 되직한 간장 소스인데 한국에서는 절대 이맛을 찾을 수 없다. 완성된 위미딴빙을 소스에 살짝 찍어 먹으면 삥의 쫄깃함과 옥수수의 톡톡 터지는 식감, 계란의 고소함이 더해져서 너무나 맛있다. 대만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맛있는 음식을 고르라면 위미딴삥이다. 대만이 그리울 때마다 집에서 한 번씩 라이스페이퍼를 이용해 만들어 먹기도 한다. 그래도 딴삥을 찍어먹는 소스가 없어서 아쉽다.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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