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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Jun 20. 2024

용허(永和) 다리를 건너면 기막힌 북경오리집이 나와요.

ep.14





언어중심 중고급반 수업에 올라가면 작문숙제를 내주신다. 작문 주제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주제는 <정대의 개들>과 <대만의 미식>이었다. 정대의 개들에 대해서 잠깐 설명하자면, 정치대학교 주위에는 유랑견들이 아주 많다. 조금 과장해서 사람 반, 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 개들도 아니고 큰 개들(트리버급)이 사람처럼 돌아다닌다. 사람을 보고 짖지도 않고 그냥 자신들이 사람인 것처럼 버스정류장에 앉아있거나 에어컨이 나오는 가게 앞에 문지기처럼 앉아있다. 개를 무서워하는 나는 처음에 정말 패닉이었다. 이렇게 큰 개들을 목줄도 묶지 않고 돌아다니게 둔다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사람들도 개들도 짖거나 놀라지 않는다. 아주 시크하게 자신들의 갈길을 간다. 밤에는 늑대처럼 '아우~~'하고 울며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기도 하는 정대의 개들은 우리나라였다면 아마 9시 뉴스에 출연했을 것이다.








대만에서는 정말 다양한 세계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심지어 모든 나라의 음식들이 거의 맛있다. 그렇기에 선생님께서도 나름의 자부심으로 <대만의 미식>이라는 작문주제를 내주셨을 것이다. 참 신기하게도 그 나라 사람들이 직접 와서 식당을 차린곳도 많았고, 대만사람이 운영하는 곳도 있었다. 놀라웠던 것은 대만은 외식문화도 굉장히 발달해 있다. 집밥보다는 삐엔땅(便當)-도시락을 사서 한 끼 끼니를 먹는 문화로 끼니당 가격 또한 합리적이었다. 대만사람들은 본인들의 토속음식과 더불어 정말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겼다.


처음 대만에 왔을 때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서 거의 매일 패스트푸드만 먹었다. 특히 처음 언어중심 과정을 밟았던 정치대학교 부근에는 다양한 음식들이 있지 않았기에 서브웨이나, 일본식 돈가스를 먹거나 한국에서 가져온 식량들로 연명했다. 그러던 중 대만친구가 데려가준 정치대학교 부근 작은 시장 골목에서 파는 수완라 탕(酸辣湯)을 맛보고는 기절할 뻔했다. 마치 한국에서 파는 짬뽕탕에 매운맛이 조금 덜하고 신맛이 조금 더해져 감칠맛이 극대화되어 있는 탕이었다. 그 안에는 사장님이 직접 빚은 완탕(작고 피가 얇은 만두) 들어있었는데 피는 얇고 부드럽우며 속은 꽉 차서 국물과 함께 한입 베어 물면 국물의 감칠맛과 육즙이 함께 어우러진다. 


'국에서 신맛이 나는데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단 말이야?'


정말이지 신세계였다. 그 뒤로도 나는 대만에서 몸살기운이 있거나 한국이 그리워질 때면 그 수완라탕을 먹고는 했다. 다른 곳에서 파는 수완라탕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대만대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거리가 멀어서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그때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 근처의 용허(永和) 지역에 집을 얻었다. 이곳에서 용허다리를 건너면 바로 학교가 있는 공관(公館)이 나왔다.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있고 택시를 타면 학교까지 10분도 안 되는 거리지만 다리하나를 두고 집값은 학교 근처보다 훨씬 저렴했다. 이곳에 살면서 매일 다니는 길을 지나다닐 때마다 계속 나의 눈길을 끄는 간판이 하나 있었다.

 

萬香烤鴨
 완샹 오리구이- 대만식 오리구이



사진출처:구글



베이징카오야를 너무나 좋아하는 1인으로써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심지어 한 마리에 NTD 780원 (한화 약 3만 원대)로 먹을 수 있었다. 안에서 먹을 곳은 없고 포장만 가능한 가게였다.


오리의 고기 부분은 껍질과 함께 썰어서 야삥(鴨餅) - 구절판의 밀전병보다 조금 큰 크기의 삥에다가 오리고기와 파를 넣고, 티엔미엔찌앙(甜麵醬)이라는 단맛이 나는 소스에 찍어먹으면 비싼 북경오리요리가 부럽지 않을 맛이었다. 그리고 고기를 썰고 남은 뼈를 토막 양배추를 넣고 간장 베이스의 양념에 불맛을 내어 아준다. 이 양념에 볶은 오리가 정말 신의 한 수다. 뼈에 붙은 살도 맛있지만 그 살과 매콤한 양념이 뼈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쪽 하고 빨아먹으면 오리고기를 그냥 싸 먹는 맛과는 또 다른 풍미가 느껴진다.


함께 대만에서 공부하던 동생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이곳의 오리고기를 늘 떠올린다. 우리의 소울푸드였다고. 용허지역에서 1년 남짓 살다가 대학교 기숙사로 이사를 했다. 동생들과 함께 시험이 끝날 때마다 마치 우리들만의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우리는 이곳 카오야를 먹었다. 카오야를 맛있게 먹기 위한 우리 나름의 시스템도 갖추게 되었다. 먼저 한 동생이 학교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용허다리를 건너가서 카오야를 사 온다. 구매할 때는 무조건 야삥과, 티엔미엔찌앙 5 봉지씩 추가한다. 볶음은 양배추를 추가하고 매운맛은 중간으로 한다. 우리 나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습득한 것이다. 그리고 기숙사에 남아있는 두 명은 카오야를 먹을 준비를 한다. 마트에 가서 양파를 세네 개 사 와서 눈물을 머금고 얇게 채를 선 뒤 정수기물에 매운맛이 빠지도록 담가둔다. 각자 마실 음료수를 준비하면 이제 카오야를 맞이할 준비가 다 되었다. 오리가 도착하면 전투적으로 먹기 시작한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갔으면 가게 사장님은 우리가 주문하기도 전에 알아보시고 인사해 고는 하셨다.


"니먼 한궈런 라이러~(你們韓國人來了~)"

"너네 한국인 왔니~"


야삥 카오야를 두세 점 올리고 매운맛을 빼둔 양파를 가득 넣어 티엔미엔찌앙에 찍어 입안 가득 욱여넣는다. 카오야의 촉촉 쫀득 바삭한 식감과 양파의 아삭아삭함에 티엔미엔찌앙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폭죽이 터지고는 한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그래 바로 이 맛이거든~!!!"









우리에게 일명 터키아저씨 케밥으로 통했던 터키음식이 있었다. 가게에서 파는 게 아니라 이동식 끌차로 케밥을 파는 터키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는 커다란 꼬챙이에 끼운 큰 고기를 중간에 세워두고 우리가 주문하면 큰 고깃덩어리에서 떼어내 케밥을 만들어 주었다. 주문즉시 구운 난에 고기와 야채를 넣어 주셨는데 이 고기가 정말 맛있었다. 역시 본토인의 손맛이란 이런 것인가. 대만에서는 유독 본토인이 직접 운영하는 멕시코음식이나 중남미음식, 터키, 인도 음식점이 많았다. 학교 근처에 인도인이 직접 운영하는 카레집이 있었는데 아직도 그곳에서 먹었던 카레보다 맛있는 카레는 먹어보지 못했다.


대만대 근처에는 유명한 화덕 피자집이 있다. So Free 피자인데 이곳의 치즈 피자는 정말이지 내 인생의 베스트 치즈 피자였다. 1인 사이즈의 작은 피자인데 한화 8천 원 정도의 금액이었던 것 같다. 1인 1 피자를 기본으로 우리는 한 사람당 한판씩 포장해서 학교 안에 있는 샤오푸라는 곳에서 먹고는 했다.


역시 학교 근처에 있는 브라보 버거(Bravo Burger)의 수제버거도 대만에서 나의 소울푸드였다. 아직까지도 그곳에서 먹었던 수제버거만큼 맛있고 푸짐한 버거는 맛보지 못했다. 나는 항상 파인애플이 들어있는 버거를 주문해 먹었는데 두터운 패티와 파인애플을 포송한 빵을 함께 베어 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정신적 배고픔을 늘 호소했던 유학시절을 달래준 수제버거였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정말 여러 곳의 수제버거집을 찾아다니며 먹어보았지만 아직까지도 이곳만큼 맛있는 집을 찾지 못했다.









대만으로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나와 우리 가족들은 내가 가서 먹게 될 음식들이 우리가 아는 중국음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만의 음식은 중국음식이라기보다 동남아와 동북아를 아우르는 음식문화를 보유하고 있었다. 편견 없이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을 받아들이고 소비하기도 하지만, 자신들 고유의 음식들도 전통을 이어나가는 것 같이 느껴졌다.


중국 한족(漢族)의 일파로 남쪽으로 내려와 터전을 꾸린 객가인들이 하는 식당도 대만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교양수업으로 객가어 수업을 듣기도 했었는데, 객가인들은 자신들의 정통성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높다고 한다. 학교 근처의 객가식당을 가면 대만현지 음식이랑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생선튀김을 얹어주는 밥을 종종 시켜 먹고는 했는데, 조리방식이며 음식의 간이 강하지도 않고 너무 느끼하지도 않아서 입맛에 아주 잘 맞았다.


루로우판(滷肉飯)이라는 대만식 돼지고기 덮밥이 있다. 잘게 자른 돼지고기를 간장소스에 조려 밥 위에 얹어먹는 음식이다. 보통 팔각이나 오향등 향이 강한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을 잘 먹게 되지 않는데 유일하게 내가 좋아했던 향신료 강한 음식이 루로우판이었다. 대만대 근처에 아주 작은 가게에서 판매하는 루로우판이 있다. 간판이름도 기억나질 않을 정도로 작지만 늘 인기만점이라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가도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맛집이었다. 이곳의 루로우판에 계란을 추가하면 루로우판 위에 반숙 계란이 함께 올라온다. 이렇게 먹으면 우리가 늘 해 먹는 계란밥이 아주 고급스러워진다. 돼지고기의 식감과 달콤 짭짤한 간장 소스가 어우러져서 밥 한 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는 했다.





아직 못다 한 대만의 미식에 대해서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메인사진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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