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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Jun 13. 2024

소원을 이루어준 핑시 천등축제(平溪 天燈節)

ep.13




매년 2월에는 타이베이외곽에 위치한 핑시(平溪) 지역에서 천등축제(天燈節)가 열린다. 종이로 만들어진 커다란 등에 자신의 소원을 쓴 다음 하늘로 날려 보내는 정월대보름의 행사인데, 매년 십만여 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이 축제를 보기 위해 핑시를 찾는다고 한다. 천등축제를 하는 날엔 까만 밤하늘에 수천 개의 소원이 쓰인 등이 붉게 수놓아지는 장관을 볼 수 있다.


2012년 2월 나는 이 축제에서 커다란 등에 소원을 써서 하늘로 띄워 보냈다. 그리고 그 소원은 2012년 9월에 이루어졌다.








1년 반정도 언어중심 수업을 들으며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외국 국적의 학생이 대만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졸업증명서 및 성적표 영문 자기소개서와 중문 자기소개서, 중문 학습계획서, 대만에서 주최하는 중국어능력 검정시험(TOCFL) 레벨이 필요했다. 학교마다 요구하는 조건이 다르겠지만 나는 국립대만대학교 중문학과와 정치대학교의 정치외교학과를 지원해 보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 내가 다녔던 대학교의 교수님들은 대부분 대만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오신 분들이었다. 그분들 중 대다수가 정치대학교, 사범대학교, 대만대학교 출신이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대만에서 국립대만대학교는 우리나라의 서울대학교와 같은 레벨의 학교라고 하셨다. 그만큼 대만 학생들에게도 대만대학교의 네임벨류는 대단했다. 정치대학교는 정치외교학으로 유명한 학교인데 대만의 정계인사들이나, 기업가들을 많이 배출한 명문대학교이다. 교수님들께 익히 대만대학교와 정치대학교의 명성과 높은 문턱에 대해서 들어서인지, 입학을 준비하면서 나는 상당히 불안하고 초조했다.


한국에서도 여러 번 원하는 대학에 지원했지만 불합격했던 기억들이 떠올라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곳 대만까지 와서 다시 불합격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때의 나는 나라는 사람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기를 갈망했던 것 같다. 국에서처럼 수능을 쳐야 하는 것도 내신관리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과연 이 높은 문턱의 대학을 내가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늘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1년 반 동안의 언어중심 성적과, 한국에서 다녔던 대학교의 성적, 그리고 고등학교 성적표를 제출했다. 한국에서 치렀던 HSK, 스피치 대회 대상 상장, 대만에서 나갔던 로터리클럽 스피치대회 상장까지 내가 어필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끌어모아 준비했다. 중문 학습계획서는 표를 만들어 타임라인처럼 작성하고, 자기소개서도 수십 번 고쳐 썼다. 나에게는 정말 간절한 소원이었다.








핑시 천등축제에 도착한 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의 소원을 써 내려갔다. 소원을 쓰며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꽃보다 남자> 드라마 속에서 보았던 대만대학교 문학원에서 수업 듣는 모습을. 문학원 가운데 있는 잔디밭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으며 다음 수업을 준비하는 모습을. 대만대학교의 도서관에서 리포트를 쓰고 문헌들을 찾아 공부하는 모습을. 자전거를 타고 캠퍼스를 누비는 모습을.


밤이 어두워지자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천등을 하늘로 날려 보내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모두 카메라를 꺼내 들고 숨죽였다. 수천 개의 천등이 밤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아름다웠다. 잠시 눈을 감고 소원을 마음속에 떠올렸다 다시 눈을 떴다.


하늘로 높이 올라간 천등들이 별처럼 작아져 반짝이고 있었다.






2012년2월 하늘로 올라간 나의 소원





소원(所願):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람. 또는 그런 일.



소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지금도 그날 내 눈으로 직접 보았던 수천 개의 천등이 하늘로 떠오르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날 나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아서였을까, 그해 9월 나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국립대만대학교 중문학과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합격발표가 났던 날, 제일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합격했어!!!"


엄마는 나보다 더 기뻐하며 입학을 축하해 주었다. 준비하는 동안 불안함과 초조함이 찾아올 때마다 엄마는 항상 나에게 믿음을 주었다. 열심히 노력했고 바랐으니 이루어질 것이라고. 엄마는 늘 기대하기보다 나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내 소원이 이루어진 것은 엄마의 믿음과 나의 간절함이 담긴 천등의 합작이지 않았을까.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입학한 나는 자전거를 타고 이국적인 야자수가 펼쳐진 아름다운 대만대학교의 캠퍼스를 누비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곳에서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












메인사진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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