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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Jul 25. 2024

조금은 지루한 질문과 뻔한 대답

ep.19




공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대만대학교 학부 3학년때였다. 전공 선택과목 중에 <宋明理學> 송명이학이라는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30대 중후반의 여자교수님이셨는데 교수로 취임하시고 처음 맡게 된 수업이라고 하셨다. 얼마나 떨리고 설레셨을지 첫 수업에 들어오신 상기된 교수님의 표정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커트머리에 동그란 얼굴형, 동그랗고 쌍꺼풀진 선한 눈매를 가진 분이었다. 웃음을 지으실 때 반짝이는 눈동자와 살포시 올라가는 입매에서 순수함이 느껴졌다. 왠지 느낌이 좋은 수업이었다.


<송명이학>은 중국의 송(宋), 원(元), 명(明) 시대의 철학 사상으로 공자와 맹자의 선진유학을 답습한 것이 아니라, 불교와 노장사상을 결합시켜 재해석한 신유학(新儒學) 사상이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상가로는 대표적으로 주희(朱熹)가 있다. 주희의 사상은 우리나라로 넘어와 성리학을 발전시키는데도 큰 역할을 한다.


대만에서 이 수업을 들으며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내가 철학과 사상을 좋아하고 관심 있어한다는 것이었다. 이 흥미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생각해 보니 중학교 도덕 수업시간으로 돌아갔다. 중학교 도덕 수업 선생님은 젊고 예쁜 여자선생님이셨다. 지루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도덕과목이 그 선생님 덕분에 너무나 재밌게 느껴졌다. 설명도 너무나 재밌고 알아듣기 쉽게 잘해주셨고, 도덕책 속에 나오는 옛시대의 현인들이 마치 자신들의 일상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았다. 그 뒤로 한국에서 대학교에 다닐 때도 교양과목은 항상 철학과 사상 쪽으로 선택해서 들었다. 어떤 이끌림이었을까. 나는 사람들의 생각이 늘 궁금했다. 어떤 생각을 하면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지, 옛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던 건지. 이런 수업들을 들으면서 마음속 갈증이 조금은 해갈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수업을 대만에서 중국어로 듣게 된 것이다. 흥미로웠다. <송명이학>의 첫 수업 때였던가, 교수님께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셨다.


"공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조금은 지루한 이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은 했다. 수없이 많이 들어보고 생각하고 답해보았던 질문이었다. "공부를 왜 한다고 생각하니?". "공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교수님의 질문에 다른 친구들이 열심히 대답했다. 나도 무엇인가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을 어떻게 잘 중국어로 표현해 낼지 고민하다 대답할 시간을 놓쳤다. 그러나 이 질문은 지금까지도 내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분명 흔하고 지루한 질문인데 계속해서 내 마음속에 문득문득 떠올랐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에 대해서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야 하는 것,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이상한 것. 못하면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없고,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중국어를 배우고 나서 내가 그동안 생각해 왔던 공부가 중국어로는 학습(學習)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 공부(功夫)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쿵푸판다>에 나오는 그 무술 쿵푸 혹은 (투자한) 시간, 노력, 재주, 솜씨 등의 뜻으로 쓰인다.


 <송명이학>의 첫 수업시간 교수님의 그 질문에 대해 내가 하고 싶었던 마음속 대답은 이러했다.


"저는 여태껏 공부와 학습을 동일시하며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학습은 단순히 무엇인가를 배우는 행위를 뜻한다면, 공부는 우리 삶의 전반적인 모든 부분에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얻어지는 것들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


마흔이 된 지금,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을 조금 더 보태자면 "나는 지금도 공부 중인 상태이며, 아마 죽기 직전까지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을 때, 결혼을 하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을 때 나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대처하고 견뎌내고 나아가는 행위 속에서 얻어지는 모든 생각과 감정들을 정리해서 나라는 사람 고유의 것으로 만드는 행위가 "공부"인 것 같다. 어쩌면 뻔한 대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위대한 사상과 철학은 늘 조금은 지루한 질문과 뻔한 대답에서 생겨났으니까.



꽃은 언제 아름다워 보일까요?


왕양명의 심즉리(心即理) 사상을 배울 때였다. 교수님께서 다시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꽃은 언제 아름다워 보일까요?"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요."


모든 물(物)의 이치는 우리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왕양명의 심즉리 사상이었다. 내 생각도 그러했다. 나의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면 아무리 예쁜 꽃이라 하더라도 그 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한다.






<송명이학>을 가르쳤던 교수님께서는 1년 뒤 중문학과 전공수업 교수님으로 오셨다. <중국사상사개론>이라는 4학년 전공필수 교수님으로 우리는 다시 재회했다. 게다가 담임 교수님이기도 하셔서 매 학기 교수님께서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셨다. 교수님과 함께 하는 식사자리에서 교수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자신이 처음 교수로 섰던 그 첫 수업에서 나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고하셨다. 반짝이고 예쁜 미소로 집중해서 자신의 말을 들어주던 나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나는 교수님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듯한 묵직한 진심 어린 말에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진짜 어른 같아 보였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학생과 선생님이라는 신분을 떠나 우리는 좋은 친구라 해주셨다.


수업시간 이외에도 교수님과 따로 만나 차를 마시기도 함께 밥을 먹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 이야기들을 교수님께 꺼내었고 교수님께서도 나에게 자신만의 이야기들을 꺼내어 주셨다. 나의 가정환경에 대해, 엄마가 홀로 나를 공부시켜 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교수님은 진심을 다해 엄마에게 존경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졸업식날 엄마가 대만에 오셨을 때 교수님은 엄마를 보시고 인사를 나누시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두 분이서 꼭 껴안으셨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진심을 나눌 수 있다는 모습을 두 분이서 몸소 보여주셨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옆에서 눈물을 훔쳤다.


졸업 후 취업에 관한 고민을 할 때에도 나의 고민을 경청해 주시고 진심으로 격려해 주셨다. 그리고 나에게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가고 정리하는 행위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하셨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교수님이 자주 떠오르고는 한다. 어떤 위치에 있건 진심을 다해 사람을 대해 주시는 교수님의 모습을 보며 진짜 공부를 하는 사람의 모습이란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늘 배움의 자세로 모든 사물과 사람으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이셨다. 교수님과 함께했던 수업의 시험지를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나의 답안지에는 나의 열정과 교수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담겨 있음을 알기에 쉬이 버릴 수 .


사람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생각'하는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복잡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생각하는 행위를 회피하거나 외면하기보다, 생각에 잠식되지 않게 그 생각들을 정리해서 나의 마음과 행동으로 일치되게 만들어야 한다. 조금은 지루하기도 한 질문도 던져보기도, 뻔한 대답을 떠올려보기도 함으로써 나는 더욱 나다워지고 나만의 색깔과 향기가 짙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대만에서 나를 찾아나가는데 한 발짝 더 가까워진 듯하다.











메인사진출처: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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