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씨 Nov 12. 2024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11월 12일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 <수선화에게>



머릿속에 이따금 정호승시인의 <수선화에게> 시 중 한 구절인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말이 떠오르고는 한다.


'그래. 외로우니까 사람이지.'


혼잣말을 하며 를 되뇌어 본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그래 삶이란 원래 외로움을 견뎌내며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것이지. 나만 외로운 게 아니야. 가슴검은 도요새도, 하느님도, 새들도, 너도, 산그림자도, 종소리도 외로움에 사무칠 때가 있는 거야. '


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은 위로가 되고는 한다. 세상에 나 홀로 뚝 떨어진 것 같은 그런 날. 슬픔을 꾸역꾸역 삼키고, 외로움을 아무리 꾹꾹 눌러보아도 식도를 역행하는 신물처럼 나도 모르게 툭 하고 올라올 때가 있다. 슬픈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삶이 고달파서도 아니다. 그저 나의 영혼이 이따금 나를 몰라봐줄 때, 고요함 속에서 진짜 나를 찾지 못했을 때 사무치는 외로움이 몰려오고는 한다.


리의 마음은 둘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하나는 에고(ego): 자아의 목소리, 나머지 하나는 신의 소리 혹은 지혜의 근원다. 보통 자아의 목소리(ego)는 내 마음속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나에게 일어나는 상황의 주도권을 잡고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려 한다. 감정이나 생각에 의해 쉽게 결정되는 마음의 목소리다. 반대로 신의소리, 지혜의 근원은 고요함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랑받고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우리 안에 이미 가득 차 있다고 말하는 목소리이다. 나는 대개 자아의 목소리 속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다 고요 속에서 지혜의 근원을 만났을 때 비로소 우주가 사랑하는 아이임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외로움이 필요하다. 외로움 속에서 고요함을 찾고 고요함 속에서 지혜의 근원을 만난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닌데, 그저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그럴 수도 있어."라는 위로의 말 한마디였는데. 정작 나는 나 자신에게 이 말들을 해주지 않았다. 세상 그 누구도 등 떠밀고 채찍질하지 않았는데 나 스스로 빠져나갈 틈 없는 구석으로 등 떠밀고 채찍질 해댔다. 그러고는 나의 아픔을, 나의 고통을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원망했다. 정작 나 자신은 알아봐 주지 못했으면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그 외로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본다. 왜 이렇게 외롭냐고 소리칠 것이 아니라,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라고 나 스스로를 안아주고 보살펴 주려한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며 눈과 빗속에서 고요함을 찾아본다. 그 고요함 속에서 지혜의 근원을 만나 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채워나가 본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이전 11화 귀 빠진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