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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y November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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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Nov 11. 2024

귀 빠진 날

11월 11일





왜 생일을 귀빠진 날이라고 부를까? 문득 궁금해졌다.

 

태어난 날이라는 의미의 생일(生日)보다 순우리말 같은 적나라함이 느껴진다. 귀 빠진 날.


산모가 아이를 출산할 때 아이의 귀부분이 빠져나오면 산모와 아이 모두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무사히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뜻하는데서 생겨났다고 한다.


마의 산도로부터 귀가 빠져나온 순세상에 무사히 안착하는 기준점이 된다. 귀가 빠져나옴으로써 이 세상에 발을 딛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부여해준 이름으로 몇 날 몇 시에 태어나 한 세상을 살다 가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귀가 기준점이 되었을까? 굴에서 귀와 거의 같은 선상에 있는 코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코 빠진 날. 


아마도 귀가 기준점이 된 데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역사 속 성인들이 하나같이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경청(傾聽)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귀를 열지만,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연다.'는 말도 있듯, 말을 잘 들어주는 자세는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덕목이 된다. 잘 듣는 자세를 갖추어야 잘 이해할 수 있고, 비판하거나 분석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나만의 생각이 모여 창의적인 것들을 생각해 낼 수 있다.


숫자 1이 네 개 모여 있는 날인 오늘은 나의 귀가 빠진 날이다. 빼빼로 데이가 생기면서 내 생일은 빼빼로 데이로 기억되었지만 나는 내 생일의 숫자가 참 좋다. 


 록 태어날 때 목에 탯줄을 8번이나 감고 있어 의사 선생님의 칼날에 의해 세상구경을 하게 되었지만,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대견하다. 나는 잘 들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일까? 세상의 소리에, 자연의 소리에, 사랑하는 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을까?


불혹(不惑),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릴 일이 없는 나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미혹(迷惑)하다. 이따금 어떤 감정에 빠져 홀린 듯 정신을 못 차리기도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갈팡질팡하기도 한다. 다만, 아주 조금은 내 주변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세상의 일들에 무던해진 것 같기도 하다. 나의 40대는 미혹과 불혹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따금 흔들리기도 단단해지기를 희망한다. 뜨겁게 달구어진 쇳덩어리가 단단해지듯 열심히 담금질해 보기를 희망한다.



'이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라는 질문을 오래도록 가슴속에 품고 다녔다. 그러나 질문자체가 잘못되었 것을 근래에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 태어난 것이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태어났으니 한평생을 살다 가는 것이라고, 그 속에서 나는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뿐이라고. 하지만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내가 세상에 온 이유는 나의 영혼이 지구라는 학교에서 무엇인가 배우기 위해 온 것이라 생각한다. 그로 인해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나를 알아간다. 모든 경험을 배움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추려 해 본다.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힘들고 지쳐 내 삶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에도, 그 속에서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내가 이생에서 수많은 고통 속에서 배움을 갈고닦아둔다면 나의 배움으로 인해, 나의 아이가 좀 더 평안하게 삶을 살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배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의 깨달음으로 너의 살아갈 날들이 좀 더 평안할 수 있다면 기꺼이 나를 고통 속으로 집어넣어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겠노라 다짐한다.


힘들게 세상으로 나를 내보내 주신 엄마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당신의 생애 속에서 당신의 딸로 태어날 수 있어서 큰 행복이자 축복이었다고. 11월 11일에 귀가 빠진 모든 이들에게도 사랑과 축복을 전한다.


귀 빠진 날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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