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가워지고 곳곳에 단풍이 물들어가면 꼭 생각나는 드라마가 있다. 아직도 드라마에 나왔던 OST가 귓가에 생생하고 장면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드라마 <도깨비>이다.
주인공 도깨비(공유)가 문을 열고 나가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게 되는 그 능력을 나는 오랫동안 탐해왔다. 지금 있는 이곳에서 내가 생각하는 곳으로 문을 열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니. 꽉 막히는 도로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고, 출퇴근시간의 붐비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고, 비행기에서 난기류로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아도 된다니. 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란 말인가.
신랑이 미국으로 3개월간 출장을 갔을 때에도 딸아이와 나는 이 능력을 간절히 원했다. '저 문을 열고 나가서 아빠가 있는 곳으로 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영상통화를 하며 아빠의 얼굴을 보고 울어대는 딸아이를 옆에서 바라보면서, 아빠가 제발 휴대폰 속에서 나와서 자신을 직접 안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딸아이의 울부짖음을 들으면서, 나는 비밀의 문이 있다면 참 좋겠노라 생각하고는 했다.
신랑은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아픔에, 딸아이는 아빠를 직접 안을 수 없다는 아픔에, 나는 그런 신랑과 딸아이를 위해 대신 아파 줄 수 없다는 고통 속에서 3개월의 시간을 보내었다.
그러나 고통이 없는 삶은 축복이 아닌 저주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고통이 없는 삶을 바라왔지만 사실 우주의 이치는 고통 속에서 우리가 더 단단해지고 무엇인가 배우고 성장해 가야 하는 것임을 이제는 알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고통이지만, 그로 인해 나도, 내가 사랑하는 이도 성장해 감을 느낀다.
3개월의 헤어짐 속에서 우리 가족은 서로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되었고, 함께 있는 이 시간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헤어짐 속에서 만남을 소망하고 만남 속에서 헤어짐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랑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안개 같은 것이 아닐까.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답답하지만, 어떨 땐 그 뿌연 안갯속에서 진짜 반짝이는 것을 찾아내기도 하니까.
도깨비처럼 원하는 곳으로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는 없지만,내 마음속에 나만의 비밀의 문을 만들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가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다. 눈을 감고 조용히 우주 속에 있는 아주 작고 작은 먼지 같은 내 모습을 찾아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곳 어디든 여행할 수 있다. 대만에서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녔던 시절로 돌아가기도 하고, 어린 시절 아빠가 나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용두산 공원에 비둘기 먹이를 주러 갔던 시간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내가 없이는 먹을 수도 잘 수도 없었던 딸아이의 꼬물이 시절로 돌아가기도 하고, 신랑과 함께 둘이서 자유로이 대만의 어느 골목길을 거닐었던 시간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눈을 감고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는 육신에 갇혀있지 않고 영혼에 눈뜨게 된다. 그렇게 나의 영혼은 무한한 공간 속에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여행한다. 그리고 이것이 작용하는 원리는 '사랑'임을 깨닫는다. 나 자신에 대한 지극한 사랑, 내가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사랑, 나와 스치는 인연들에 대한 사랑. 이 모든 것이 사랑 속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깨닫는다.
도깨비 드라마 속에 나오는 김인육 님의 시 <사랑의 물리학>이 마흔의 나에게는 또 다르게 와닿는다. 딸아이를 처음 만나던 순간 아이가 꼬물거리며 나의 품에 안겼을 때가 떠오르기도 하고, 내가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가 진짜 나의 모습을 마주했을대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