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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Oct 11. 2024

J를 희망하는 P의 돈정리

ep.12




돈은 감정을 가진 실체라서 사랑하되 지나치면 안 되고 품을 때 품더라도 가야 할 땐 보내줘야 하며, 절대로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존중하고 감사해야 한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돈은 항상 기회를 주고 다가오고 보호하려 한다.

-김승호 <돈의 속성>중에서-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어렸을 때부생각해 왔던 질문이었다. 돈이라는 것은 돌고 돌아서 돈이라는 엄마의 말처럼 돈은 늘 우리 곁을 맴돌지만 막상 필요할 때 돈이 없다면 불행의 굴레에 갇혀 버린다고 생각했다. 유명한 브랜드의 신축 아파트에 살면, 외제차를 타면, 한 달에 몇천만 원씩 벌면 행복할까? 가질 수 있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있을 만큼의 재력이 있다면 정말 행복할까?


좋은 집에 사는 것, 좋은 차를 타는 것, 좋은 음식과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원하는 것은 모두 욕망이다. 그런데 도대체 '좋은'의 기준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타인의 삶과 나를 비교하다 보면 원하던 욕망에 다다랐다 하더라고 만족할 수 있을까? 욕망은 비교에서 나온다. 비교는 우리를 쉽게 불행에 빠뜨리고는 한다. 비교는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기에 내가 만족하지 않는 이상 끊임없이 욕망의 갈증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원하던 집이나 새 차를 살 때,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을 때, 돈을 많이 벌게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 정말 행복일까? 이런 것들은 내가 바라고 원하던 바에 다다랐을 때 느껴지는 단순한 기쁨들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단순한 기쁨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픔, 고통, 두려움, 불안, 감사, 기쁨 등의 여러 가지 감정들이 어우러져 나의 내면에서 충만해지는 고결한 마음상태이다. 행복은 신기루 같아서 잡으려고 하면 잡히지 않는다. 다만 가만히 서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렇게 나의 내면에서 행복을 찾는 순간 마음속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 있다.


결국 '돈이 많으면 행복해 질까?'라는 질문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행복은 내 마음속에서 찾는 것이며 돈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 애초에 돈과 행복을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돈은 우리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바라보아야 한다. 돈이 얼마나 있어야 행복할까의 관점이 아닌,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행복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할 영속적인 인간과 우주에 대한 사랑이라면, 돈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그저 필요한 수단인 것이다.


감정적이고 즉흥적 성향이 강한 나는 감정에 의한 충동적 소비성향이 강했다. 그래서 기분이 좋거나, 나쁘거나, 슬프거나 우울할 때면 소비를 통해 보상받으려고 했다. 충동적으로 소비를 하고 나면 그 뒤에 따라오는 감정은 불안과 죄책감이었다. 감정은 그대로 인정해 주고 알아차려 주면 저절로 흘러가게 되어있는데, 나는 충동적인 소비를 함으로써 그 순간의 감정에 다시 사로잡혀버렸다. 그 뒤에 따라오는 죄책감이나 불안은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또다시 소비를 하게 되는 악순환을 경험했다.


그러나 집을 비우고 정리하면서 공간이 정리되었고, 생각이 정리되었고, 감정도 정리하는 방법을 배워나갈 수 있었다. 사실 공간을 비워내면서 물건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외면하고 억눌렀던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외면해 왔던 나의 감정들과 생각들은 모두 내가 사는 공간에 오롯이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생각과 감정이 정리되자 자연스럽게 돈에 대한 부분에도 생각이 미쳤다. 러다 우연히 김승호 회장의 <돈의 속성>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종잣돈을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돈은 어떻게 불려야 한다는 등의 지루하고 따분한 방법론적인 책들 속에서 김승호 회장의 <돈의 속성>은 나에게 유레카 같은 책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돈에 대해서 그동안 궁금하고 목말라 있던 나의 궁금증과 답답함들을 모두 해소해 주는 느낌이었다. 밤을 새워 단숨에 읽어나갔다. 돈의 속성이라는 제목의 책이었지만 인생론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러자 그 사람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유튜브를 찾아보고 그가 낸 책들을 모두 읽어보았다. 김승호 회장은 돈을 스스로 감정을 가진 인격체로 대하며 돈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돈을 인격체로 대한다는 생각에 너무나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들어왔을 때 감사하고, 돈을 내보낼 때 좋은 곳에 쓰려고 하며, 돈을 잘 모으고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다른 사람의 돈을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한다. 늘 생각하고 있던 모호한 개념들을 김승호 회장의 명확하고 간결한 문장들 속에서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언제든지, 누구와 든 지, 얼마든지, 어디든지, 시간과 금액에 상관없이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자유와 돈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그래서 내가 행복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나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도전을 즐기고, 남을 도울 능력과 시간이 있고, 궁극적인 가치와 진리에 여전히 목마르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김승호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중에서-






'돈! 돈! 돈!'


돈을 밝히면 속물이고 나쁜 사람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다만 나는 그렇게  세뇌당했을 뿐이다. 드라마 속에서 돈이 많은 사람들의 고충과 불행들을 보며, '그래 돈이 많으면 뭐 해, 저렇게 자식들이 속을 썩이는데.' '평생 힘들게 돈을 모아서 부자가 되면 뭐 해, 사기를 당하거나 한순간에 길바닥에 나앉는데 말이야.'라는 생각들이 돈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은 나쁜 것이고 인생에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내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의 맥락을 잘 살펴보면 돈이 많아서 불행한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돈을 잘 다루지 못해서 생겨난 부수적인 부작용들 같은 것이다. 김승호 회장은 돈을 다루는 데는 네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돈을 버는 능력, 돈을 모으는 능력, 돈을 쓰는 능력, 돈을 유지하는 능력. 돈을 버는 능력만 있어도 부자가 될 수 있지만 돈을 유지하려면 이 네 가지 능력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작은 돈을 함부로 하면 안 되고 큰돈은 마땅히 보내야 할 곳에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작은 돈을 함부로 하면 주변이 그를 따라서 돈을 함부로 하고 마땅히 풀어야 할 때 큰돈을 풀지 않으면 주위에 사람이 떠난다.

-김승호 <돈의 속성> 중에서-


사실 돈은 우리가 필요한 물건 중 하나와 다름없다. 필요한 물건들을 교환하기 위한 수단으로 화폐가 생겨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그렇다면 물건을 정리하는 마음과 똑같이 돈도 정리해 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승호 회장이 말한 돈을 다루는 네 가지 능력 중에서 전업주부인 내가 당장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돈을 모으는 능력, 돈을 쓰는 능력, 돈을 유지하는 능력이었다. 미니멀라이프를 희망하기 전에도 가계부를 쓰기는 했지만 주먹구구식이었다.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나의 성격답게 그냥 가계부를 내가 사용한 금액을 알기 위해 기록하는 정도의 용도로만 사용했다.


하지만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집의 살림도 마트처럼 재고정리가 잘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계부를 쓰는 방법에 대해서 공부하고 돈을 모으는 방법에 대한 유튜브에서 여러 가지 영상들도 찾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2년 정도를 하다 보니 가계부를 쓰는 이유가 단순히 내가 사용한 돈의 지출내역을 알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계부를 기록함으로써 작은 돈을 함부로 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작은 돈에 이름을 붙여주어 소중한 곳에 보내 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큰돈은 마땅한 곳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돈을 사용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으로 보내주게 되었고 내가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보낸 돈이 다른 돈과 함께 내가 필요로 할 때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돈을 쓸 때에도 검소하되 인색하지 않고 내 품에 들어온 돈은 감사하고 풍요롭게, 내 품에서 나가는 돈도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의 월급이 들어오면 고정지출과 변동지출 경조사/예비비등의 한 달 예산을 정한다. 고정지출을 살펴보면서 불필요한 곳에 돈이 새어나가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 보고 변동지출의 예산을 정해둔다. 변동지출은 나의 기분에 의한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항목이기에 예산을 미리 정해두고 그 범위 안에서 가능하면 사용하려 한다. 예를 들면 한 달 배달을 통한 외식 비용은 20만 원이 넘지 않도록 설정해 둔다던가, 쇼핑유흥비, 문화생활비의 예산을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두면 생각지 못한 지출을 막을 수 있다. 즉흥적인 P형인간이 계획적인 J 형인간으로 탈바꿈하려 무던히 노력 중인 것이다.


가계부를 제대로 쓰기 전에는 막연하게 나가는 돈만 생각하고 불안해했다.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보다 없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느꼈었던 것이다. 돈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방법이 모호하고 막연하기만 하니 돈도 나를 막연하고 모호하고 불안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계획하고 모르는 부분에 대해 공부하며 알아나가게 되자, 모호함이 정확함으로 막연함이 구체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비를 할 때는 나만의 규칙을 만들어 지키려고 노력했다. 나만의 필욕리스트를 만들어서 필요와 욕구를 구분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욕구는 없어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지만 지금 내가 갖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욕구는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나 감정적인 나는 욕구에 의한 소비충동이 일어날 때 한걸음 물러나 나의 감정을 바라봐주려고 노력한다. 지금 나의 마음상태가 어떤지, 왜 그런 물건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봐 주고 흘려보내주면 물건을 사지 않아도 자연스레 욕구가 해소되고는 한다.


후회하지 않는 소비를 하기 위해서 가능하면 3번의 심사를 거치려 노력한다.


1심. 필요-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필요한 것인가?

2심. 예산- 지금 당장 지출할 수 있는 돈이 있는가?

3심. 대체- 다른 방법이나 물건으로 대체할 수 없는가?


이렇게 3심을 거치는 동안 장바구니를 활용해서 갖고 싶었던 것들을 담아두고 3심을 통과한 물건들만 구매하려고 한다. 대부분은 3심에서 구매 결렬로 이어진다. 사실 욕구에 의한 소비는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시간이 지나면 다른 방법이나 대체제가 찾아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욕구에 의한 소비충동을 조절하게 되면 내가 정말 필요하고 소중한 것에 돈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경험을 위한 시간에 돈을 사용할 수 도 있고,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에 돈을 사용할 수 있다. 정말 사용해야 할 때 인색하지 않을 수 있으며 불필요한 허영심이나 감정의 보상용으로 돈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가계부쓰고 나서 엄청난 돈을 모으고 내가 원하는 경제적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드라마틱한 결과는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돈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변했다는 것이다. 돈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가지려고 하면 할수록 멀어지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와 비교를 통한 불행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신랑이 월급을 보내줄 때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나는 신랑에게 당신의 노고에 감사함을 전하고 그 돈을 소중하고 가치 있게 쓰겠노라 다짐한다. 신랑은 나에게 그렇게 생각해 주어 고맙다고 말한다. 행복은 행복을 끌어당기고 감사는 감사를 끌어당긴다. 돈에 좋은 생각과 긍정적 마음가짐을 가지면 돈은 나에게 다시 좋은 생각과 긍정적 마음가짐을 가져다준다. 좋은 돈은 좋은 돈을 끌어당기며 나를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돈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모습을 바꾸어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나, 지식, 시간을 제공해 준다. 그래서 올바르게 사용한 돈을 사용할수록 좋은 에너지에 둘러싸이게 된다. 돈을 좋은 바람에 실어 순환시키면 다시 그 바람이 나에게 순풍을 가져다준다.


신랑이 혼자 버는 외벌이보다 부부가 함께 맞벌이를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돈을 더 많이 버는 것보다 딸아이에게 우리의 존재가 필요한 순간에 함께 있어 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돈을 사용하고 모으고 유지하고 버는 모든 순간에도 우리는 선택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정하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 한다.


비를 바라면 홍수를 피할 수 없고, 바람을 원하면 태풍을 맞아야 하듯,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따른 대가도 있기 마련이다. 더 이상 따라오는 대가가 무서워서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는 겁쟁이가 되고 싶지 않다. 기꺼이 비를 원하고 홍수를 감당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꺼이 바람을 원하고 태풍을 감당할 마음의 용기를 내어본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항상 감사함으로 무장하려 한다. 이러한 생각들이 내가 돈을 정리하고 나서 얻게 된 선물이다. 고작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의 세상에서는 내가 선택한 생각이 바로 힘이고 진실이다. 유리잔의 물은 내가 보기에 따라 반이나 남았을 수도 있고, 반밖에 남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메인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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