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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과 다이어트의 상관관계

평생 다이어트 안 하고 살아가는 방법

by 유자씨

얼굴만 보면 나는 48킬로처럼 보인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늘 반전이 있듯, 나의 몸에도 반전이 있다. 옷 사이즈로 비교하자면 얼굴은 44, 상체는 55, 하체는 66이다. 아주 안정적인 피라미드 체형이다.

어렸을 때도 나의 하체는 남달랐다. 초등학교 때 무릎을 꿇고 앉으면 앞벅지가 불툭 올라왔다. 중고등학교 때는 교복이 치마여서 아주 좋았다. 하체비만을 가리기에 딱 좋았으니까.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도 연예인처럼 여리여리 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운동하고 식단조절도 했다. 그 결과 여리여리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50킬로 중반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었다.

문제는 대만유학을 가면서 부터시작되었다. 유학당시 급작스런 하복부통증으로 난소낭종 제거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년 정도 호르몬약을 먹었고 폭식과 절식을 오고 가는 사이에 내 몸은 혼돈을 겪고 있었다. 60킬로 초반까지 부푼 내 몸은 물에 흠뻑 젖은 청바지처럼 무거웠다. 배가 분명히 부른데 자꾸만 배가 고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신적 허기가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가 갑자기 슬프고 우울해지기를 반복했다. 음식이 명치끝까지 찬 것 같아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데도 자꾸만 입으로 먹을 것이 들어갔다. 잠을 잘 못 잔다는 이유로 쉽게 술에 의지 했다.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가 얹혀 있는 것 같이 답답해서 늘 큰 숨을 몰아서 내쉬고는 했다. 정말 심장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할 정도로 바로 누워 잠드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힘들게 보내준 유학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끝내야 했다. 힘들어도 졸업장을 받아서 돌아가야 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이 나는 싫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읽고는 너무 아팠다. 상처가 나면 누구나 아프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그 상처에 점점 더 무뎌져 가거나 익숙해질 뿐이다. 젊은 청춘이라고 해서 아픔과 고생이 당연한 건 아니니까.

아팠지만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상처였고, 고통스러웠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었기에 감내해야 했다. 그 감내의 결과가 물에 젖은 청바지처럼 무거운 내 몸뚱이였다. 나는 내 마음을 돌봐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 돌봐주어야 할지, 그 당시에는 왜 아픈 건지 조차 알지 못했다.

나를 위로한답시고 몽쉘 12개를 앉은자리에서 다 먹었다. 187그램짜리 ABC초콜릿 한 봉지를 다 먹고 심장이 벌렁거려 데굴데굴 굴렀다. 자기 사랑을 설탕으로 대체했던 것이다. 그때의 나는 진짜 나를 사랑해 주는 방법을 몰랐다.


아이를 가졌을 때는 세상의 모든 음식으로 사랑을 대체했다. 내 몸과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임신 당시 65킬로에서 시작했던 나의 몸무게는 신나게 불어나 막달에는 87킬로가 되었다. 유독 양수도 많았던 내 배를 보고 사람들은 쌍둥이냐고 묻고는 했다. 10개월 만에 22킬로가 불어난 내 몸은 아이를 낳고 나서도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양수와 아이 몸무게만 딱 빠졌던 것 같다. 5킬로 정도였나?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만삭일 때보다 몸무게는 5킬로가 빠졌는데 보기에는 몸이 더 부풀어 보였다. 손발이 계속 퉁퉁 부었고 내 생전 살이 찐 표시가 난 적이 없었던 얼굴마저 부풀어있었다.

물풍선처럼 떠오르지도 못하고 빵빵하게 차서 굴러다녔다. 많이 걸으면 발목도 아프고 골반도 아팠다. 누워서 잘 자지 않았던 딸아이를 내내 앉고 있느라 어깨도 아팠다. 내 몸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엄마라는 이름의 처음 겪어보는 책임과 의무까지 더해졌다.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었다. 각종 원푸드 다이어트, 간헐적 단식, 시중에 판매하는 여러 종류의 다이어트 보조제, GM다이어트식단, 삭센다주사제까지. 운동도 커브스부터 시작해서 매일 만보 걷기, SNPE자세교정등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런 썸네일을 보여줬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진짜 살 빼는 방법

알고리즘에게 내 머릿속을 해킹당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홀린 듯 썸네일을 눌렀고 내가 좋아하는 김상욱 교수님께서 나오신 프로그램의 영상이었다. 그 영상의 결론은 정말 어이없게 심플했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진짜 살 빼는 방법은 덜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이다.

하하.

아니 슨생님 누가 그걸 모르냐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영상을 본 뒤로 마음속 한구석에 있던 돌덩이 하나가 없어진 것처럼 가벼워졌다. 어쩌면 너무 많은 다이어트 정보와 방법들에 눈이 어두워져서 진짜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덜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이 다이어트의 진리라면 그것을 과연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라는 문제의 해답을 찾아야 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시작하고부터 나는 아이를 등원시키고 바로 집 아래에 있는 해반천을 걸었다. 마음이 힘든 날에는 걸으면서 펑펑 울기도 했고, 기분이 좋은 날에는 걸으며 한없이 감사했다. 그렇게 2년을 일주일에 적어도 3번 이상은 만보씩 걸었다. 아침에 일어나 잠깐의 명상을 했고, 걸으면서 든 생각들을 글로 적어 옮겼다. 그러다 보니 내가 몰랐던 나의 마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 누구보다도 잘 알고 돌보아주어야 하는 내 자신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내가 알아주기 시작하자 내 몸도 서서히 예전의 내 모습을 찾아갔다.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았다. 아주 서서히, 아주 천천히, 그런 하루하루들이 반복되면서 몸무게도 줄어들고, 몸 곳곳의 통증들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지 10개월이 다되어가는 지금, 수영을 시작했을 때보다 체중은 1~2킬로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체지방이 4킬로가량 빠졌고 예전에 입었던 옷들이 거의 맞는다.

수영을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한다.

"수영하고 살 빠졌어요?"

수영하고 살이 빠진 사람은 엄청 힘들어서 먹는 게 줄어든 경우이다. 과학자들이 말한 다이어트의 진리인 덜먹고 많이 움직인 것이다. 반대로 수영하고 살이 더 쪘거나 그대로인 사람은 엄청 힘들어서 많이 먹은 경우이다. 많이 먹은 만큼 운동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결국 수영을 해서 살이 빠지는 게 아니라, 덜 먹고 많이 움직여서 살이 빠진 것이 진실이다. 다만 많이 움직인 것의 활동분야가 운동이라면 심장이 잘 뛰고 혈액순환이 잘될 것이며, 근육량이 증가해 기초대사량이 올라가 더 건강한 신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더 이상 나는 설탕이나 자극적인 가공식품들로 자기 사랑을 대신하지 않는다. 내 몸을 소중히 대하는 마음으로 좋은 음식들을 채워주려고 노력한다. 수영을 해서 살이 빠졌다기보다는 수영을 통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조금 지루하고 오래 걸리지만 평생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냈다.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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