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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중에 수영장이 무너진다면...

불안을 다스리는 나만의 방법

by 유자씨

2월이었다.

아직 겨울이라 춥지만 곧 봄이 올 것 같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찬 계절에 수영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에게 다가올 변화에 대해 설레기도 기대되기도 했다. 물공포증이 있는 내가 과연 수영을 배울 수 있을까 싶다가도 물속을 유연하게 헤엄치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심장이 요동쳤다.


수영수업은 9시 반에 시작된다. 딸아이의 등원차량 시간은 8시 22분, 아이를 등원버스에 태우고 수영장까지 20여분 가량 걸어간다. 등산로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 수영장은 안에서도 밖에서도 경치가 아주 좋다. 봄에는 벚꽃이 피고 여름엔 초록잎들이 춤춘다. 가을엔 단풍이 알록달록 물들고 겨울엔 나뭇가지가 앙상해진다. 수영장 안에서 보이는 바깥 경치가 정말 그럴싸하다. 샤워를 하고 수영복을 입고 물속으로 들어와 전날 배운 영법들을 이리저리 연습해 본다. 그러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하면서 내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떠오기 시작한다.


'딸아이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쩌지?'

'내가 수영장에 있는 동안 아프다고 나에게 전화가 오면 어쩌지?'

'스마트워치를 사야 하나...'


쓸데없는 걱정인 것을 알고 있다. 무슨 일이 생겨서 나에게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았다면 비상연락망을 작성해 뒀으니 신랑이나 조부모님에게 연락이 갈 것이다. 수영장에 들어와서 전화를 확인하지 못하는 시간은 겨우 1시간 남짓인데 이런 생각들로 불안해하는 내가 참 한심스럽다. 스마트폰 분리 불안증상인건지, 엄마인 내가 딸과의 분리불안증상을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들은 수영 수업을 시작하고 수영에 집중하면 곧 사라지고는 했다.


여름 장마철이었다. 집중호우가 이어져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그런 뉴스들을 보고 비 오는 길을 걸어 수영장에 도착했다. 들어가기 전에 주변을 둘러본다. 경사진 산등성이 아래 위치해 있는 수영장 후면부분을 보고 들어와서는 또 불안한 상상을 하고는 한다.


'여기도 산사태가 나면 어쩌지?'

'수영중에 산사태가 나서 수영장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지?'

'그래도 수영복은 입고 있으니 탈출할 때 바로 뛰어나갈 수는 있을 거야.'


물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겠지만, 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내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당하는 것 같다. 펄렁이는 심장을 부여잡고 고개를 몇 번 휘휘 젓고는 수업에 집중면 이내 또 사라지는 불안이었다.


어릴 때도 나는 습관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는 했다. 아빠와 엄마가 함께 식당을 운영하시던 때였다. 어느 날, 술에 흥건히 취한 아빠만 집으로 돌아오고 엄마는 같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에게 엄마는 왜 안 오냐고 물었더니 아빠랑 싸우고 먼저 나갔다고 한다. 아빠는 엄마가 집에 먼저 와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빠는 알코올중독자였다. 엄마랑 싸우면 늘 피바람이 불었고 어린 나의 눈에 엄마는 늘 피해자였다. 그날밤,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엄마에게 수십 통의 전화를 걸었다.


'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나는 밖으로 나가 울면서 엄마를 찾아 헤맸다.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나와 엄마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그래야지만 그런 최악의 상황들이 생기지 않을 것만 같았다.




불안은 불확실하고 모호함을 먹고 자라난다. 나의 삶은 늘 불확실하고 모호함 투성이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아차린 적이 거의 없다. 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으면 좋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싫으면 나도 싫었다. 나의 삶엔 타인의 시선만 남아 정작 진짜 '나'가 없었다.


수영을 작하고 이유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불안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어린 시절들이 떠올랐다. 어린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었던 무력한 상황들, 엄마를 지켜줄 수 없었던 어린 내 모습을 마했다.


스포츠의 순기능 중 신체적 건강증진의 효과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마음의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수영을 통해 경험하게 된 것이다. 물속에서 수영하고 있는 동안은 온전히'나'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다만 스멀스멀 불안이 몰려올 때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에 집중하려 한다. 삶이 불안하고 불행해지는 순간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손안에 잡으려고 할 때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어찌할 수 없는 일보다, 어찌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감사하며 오늘을 시작한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일어나 기도한다. 아이등원준비를 하고 아침을 차리고 출근하는 신랑을 배웅하고 아이를 유치원차에 태워 보낸다. 가볍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나는 매일 물속을 헤엄치러 간다.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흘려보낼 평온함을 주시고,
어찌할 수 있는 것들을 행할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지혜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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