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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입니다.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 JUST DO IT!

by 유자씨

학창 시절 중간, 기말고사가 다가오면 나는 어김없이 분주해진다. 먼저 각 과목별 시험범위를 알록달록하게 라벨링 한다. 마음잡고 공부를 해야 하니 일단 집의 책상을 정리한다. 책상정리를 하다 보니 필통에 필기구가 마음에 안 든다. 문구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색의 형광펜과 글쓰기 편한 샤프를 산다. 독서실에 앉아 시험범위의 첫 페이지를 펼친다. 연필로 줄을 긋고 형광펜으로 중요한 부분을 줄 치고 필기한 부분을 다시 쓴다. 먼가 출출한 느낌이다. 자판기에서 율무차 한잔을 뽑아 들고 친구와 수다를 떤다. 나는 아직 시험공부를 시작할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다.


대만유학시절 중어중문과를 전공한 나는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일단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매 학기 두 번에 걸쳐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시험을 친다는 게 나에게는 끔찍한 악몽이었다. 거기다 전공과목은 2절지 크기의 빈 종이 시험지 위에 교수님이 내주신 문제에 대한 답을 채워 내야 했다.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림도 그리고 그래프도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교수님께 나의 노력을 표현해야 했다.


시험기간이 시작되면 핑크색 네모난 포스트잇 위에 네임펜으로 시험과목과 시험 일자 시험범위를 적어 기숙사의 하얀 벽위를 채운다. 탁상달력 위에는 빨간색 볼펜으로 과목별 시험일과 리포트제출일자를 표시해 둔다. 전공책을 펼친다. 아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다. 기숙사 아래에 있는 세븐일레븐으로 내려간다. 내 눈에 보이는 온갖 달달구리들을 집어 방으로 돌아온다. 잠시 머리 좀 식힐 겸 심리적 안정도 필요하니 한국예능을 찾아본다. 나는 아직 시험공부를 시작할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다.


늘 좀 더 완벽한 시작을 찾아 헤매다 결국 시간에 쫓겨 시험 치기 전날 벼락치기로 밤을 새웠다.




수영 시작하려 마음먹기까지는 2년의 시간이 걸렸다. 2년 동안 나는 갖가지 변명들로 내가 수영을 시작할 수 없는 이유들을 늘어놓았다.


"나는 위가 안 좋은데 말이야, 수영장 물은 락스물이잖아. 수영도 못하는 애가 배운다고 가서 얼마나 물을 먹겠어. 어휴. 난 위가 약해서 너무 힘들 거야." (첫 번째 고민)


"아니 수영하면 중이염 달고 살아야 한다면서? 나 중이염 걸리기 싫은데..."(두 번째 고민)


"수영복 입기엔 자신이 없어. 이런 몸으로 어떻게 수영복을 입어... 살을 조금만 더 빼고 시작해 보자."(세 번째 고민)


"겨울에 추울 땐 어떻게 해... 물이 정말 차가울 텐데... 감기 걸리기 딱 좋겠다 정말..."(네 번째 고민)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와 키즈카페에 갔다. 그곳엔 롤러스케이트장이 있었고 딸아이는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롤러스케이트를 탔다. 롤러스케이트 신발을 신고 자유자재로 휙휙 다니는 언니오빠들을 보면서 '우와~ 재밌겠다. 나도 저렇게 타고 싶어.' 하다가도 옆에서 엉덩방아를 쾅쾅 찧어대는 친구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넘어지면 어떻해... 난 잘 타고 싶은데...' 하며 신발을 신기전부터 고민하는 딸아이를 보았다.


순간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신랑이 딸아이에게 신발을 신겨주며 말했다.

"괜찮아, 누구나 다 처음엔 넘어지면서 배우는 거야. 넘어져보지 않고 잘 타게 되는 사람은 없어.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세상에는 정말 많단다."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은 나였지만, 머릿속으로 걱정만 하고 생각하다 결국 흐지부지 되거나 시작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나였다. 스스로 시작하지 못할 이유와 변명들을 수십 가지 늘어놓고서 시작하지 않는 나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던 내 모습이 보였다.


그냥 하자.

그냥 해보는 거지 뭐.


그렇게 나는 수영장에 등록했다. 수영을 배운 지 10개월 차인 지금 뒤돌아보면 시작하기 전에 했던 고민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수영장 물에 염소가 섞여있어 락스냄새 비슷한 게 나긴 하지만 처음 배영을 배우면서 어마무시한 양의 물을 먹어본 결과 위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첫 번째 고민해결)


귀에 물이 들어가고 덜 마르고를 반복하면서 중이염에 생길 위험이 크긴 하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중이염에 걸린 적은 없다. 더 심한 비염과 부비동염이 오긴 했지만 그 아픔보다 수영의 재미가 더 커서 아무런 문제점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두 번째 고민해결)


내가 만족할 만큼의 살을 빼지는 못했지만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에 들어가는 순간 그 고민은 바로 사라진다. 정말 아무도 내 몸에 관심이 없다. (세 번째 고민해결)


날씨가 추워져도 수영장 물온도는 사계절 내내 똑같다. (네 번째 고민해결)


무릎팍 도사님보다 더 통쾌한 고민해결이다!

JUST DO IT!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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