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시작하고 알게 된 것 중 가장 신기했던 건 우리 몸이 물에 가라앉는 게 더 어렵다는 것이었다. 신랑이랑 수영장에 갔을 때 물속에 몸을 가라앉혀 보라고 하는데 계속 몸이 풍선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튜브도 구명조끼도 없는데 몸이 계속 뜬다. 아니 그동안 나는 물에 빠지면 몸이 가라앉을까 봐 그렇게나 무서워했는데 몸이 가라앉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이었다니 싶었다. 초급반 수업 때 강사님께서 발차기 다음으로 알려주신 내용도 우리 몸은 물속에서 저절로 뜬다는 것이었다. 우리 몸에 있는 폐 속의 공기로 인해 물에서 힘을 빼고 가만히 있으면 우리의 몸은 자연스럽게 물 위로 뜨게 되어있다고 한다.
'그래 우리 몸은 자연스럽게 물 위로 뜨게 되어있어. 몸에 힘을 빼고 편안하게 해 보자.'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자유형 팔 돌리기를 시도한 지 1초도 안되어 꼬르륵 물을 먹고 만다. 강사님께서 말씀하셨다.
"학교 다닐 때 운동신경 없다는 소리 많이 들었죠?"
"네......"
그렇다. 학교 다닐 때 내가 가장 싫어했던 과목은 체육이었다. 특히나 공으로 하는 운동은 너무나 싫었다. 동그랗게 생긴 공이 빙글빙글 돌아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 피구를 할 때면 그냥 공을 맞고 빨리 밖으로 나가는 게 마음이 편했다.
대만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매 학기 교양필수 과목으로 체육을 수료해야 했다. 골프, 테니스, 요가, 태극권, 탁구등 다양한 수업들이 있었다. 요리조리 이수하기 편한 과목들을 골라 운 좋게 통과해 오다가 4학년 마지막 학기는 불행히도 수강신청을 잘 못해서 테니스 수업을 듣게 되었다. 어쩌면 이 수업을 통과 못해서 나는 졸업학점이 모자라 한국으로 돌아가는 기간이 늦춰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매일 악몽을 꿀 정도였다. 아무리 쳐도 늘지 않는 나의 테니스 실력에 선생님께서는 두 손 두 발을 다 드셨다.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테니스 채로 벽에다가 공 열 번만 맞추면 통과시켜 주겠다."
'열 번... 열 번은 맞출 수 있을 거야...'
결과는 어쨌든 선생님은 나를 통과시켜 주셨고 나는 무사히 제 때 졸업장을 받아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감사해요 선생님... 흑흑)
다행히 수영은 공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기에 테니스처럼 최악은 아닐 거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배웠다. 수업을 마치고 오면 유튜브를 보면서 발차기하는 방법, 자유형 호흡하는 방법, 유선형을 만드는 방법 등의 영상을 보고 다음날 수영장에 가서 연습을 하고는 했다. 수영강사 출신 신랑찬스도 썼다. 주말마다 수영장에 끌고 가서 교습도 받고 이해될 때까지 물어보고는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는 공에 반응하는 민첩성은 둔하지만 유연성과 지구력이 좋았다. 힘든 자세를 유지해서 버텨낼 때 희열을 느끼고는 한다. 그렇게 수영을 배운 지 두 달째쯤 되었을 때 강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생각했던 것보다 잘하는데?"
후훗.
우리 부부가 5년째 오르는 산에는 997개의 계단이 있다. 주차장에 도착 후 걸어서 20여분의 오르막을 오르고 나면 997개 중 첫 번째 계단이 시작된다. 첫 번째 계단에는 1이라는 숫자가 표시되어 있다. 그냥 오르막을 오를 때는 시간으로 얼마만큼 올라왔는지 확인하게 되는데, 숫자 1 이 써져 있는 계단을 밟고 서면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마음이 생기면서 계단의 숫자에 집착하게 된다. 1 다음에 만나게 되는 숫자는 100이다. 100개의 계단을 올라왔다는 생각도 잠시, 아직 남은 계단의 개수는 897개라는 생각에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300개까지는 쉬지 않고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이다. 400을 향해 계속 걸어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까지만 오르고 다시 내려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구간이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며 내적갈등을 하는 순간 뒤에서 신랑이 나를 밀어주며 말한다. "천천히 심장 뛰는 소리를 잘 들어봐. 심장박동수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자기만의 속도를 찾아봐."
씁-후-씁-후-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700 계단까지 올라왔다. 아스라이 높기만 해 보였던 정상이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느껴진다. 잠시 멈춰 다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어디선가 희미한 트롯노랫소리가 들린다. 나무 막대기를 지팡이 삼아 평온하게 걸어 올라오시는 할머니한테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허리춤에 차신 가방에 달려있는 조그마한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랫소리에 맞춰 너무나도 평온하게 자신만의 속도로 우리 곁을 유유히 지나 올라가셨다. 마치 방금 산을 오르기 시작한 사람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제껏 나는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들은 무시한 채 먼저 오르는 사람을 보며 빨리 가서 좋겠다고 생각했다. 뒤를 따라오는 사람을 보며 그나마 내가 뒤쳐지는 건 아니구나 하며 안도했다. 이미 정상을 올랐다 내려오는 사람을 보며 나도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생각하는 막연한 기대로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먼저 오르는 사람도, 뒤를 따라오는 사람도, 이미 정상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람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일 뿐인데 나는 제일 중요한 '나'를 잊은 채 살고 있었다.
산을 오를 때나 수영을 할 때 느끼는 힘겨움과 조바심, 안주하고픈 마음과 포기하고 싶은 이 모든 마음들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들일 뿐이다. 흐르는 물에 배를 띄우듯 그 마음들을 모두 흘려보내고 나면 나는 그저 내 몸속 모든 근육의 움직임과 심장이 뛰는 소리에 집중하면 된다. 그렇게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면 고요하게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심장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기분 좋은 뜀박질을 한다.
수많은 실패와 도전 속에서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속도를 찾아간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면 온전히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만의 속도를 찾기 위해 온전히 나를 사랑하며 세상을 유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