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을 배우면서 발차기 다음으로 내가 넘어야 할 산은 호흡하는 방법이었다. 몸을 물에 띄우기도 힘든데 호흡까지 하면서 팔도 돌려야 한다니.산 넘어 산이다.
"자, 물속에 얼굴을 넣고 음~~~ 하고 코로 내뱉는 숨을 유지한 채 물 밖으로 고개를 돌리세요. 그다음파~~~ 하고 숨을 내뱉으면서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물속으로 고개 넣으세요."
"음~~~ 파~~~ 음~~~ 파~~~ 켁켁켁..."
호흡 실패. 코로 물이 들어온다. 마치 콧구멍에 주유하는 느낌이랄까. 코가 맵다.
호흡을 하기 위해 고개를 물 밖으로 돌릴 때에는 뻗어져 있는 팔에 고개를 완전히 기댄 채 살짝 돌려야 한다. 그런데 발차기가 제대로 안되다 보니 다리는 가라앉고, 물을 안 먹으려고 머리에 힘이 들어가다 보니 자꾸만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처럼 '살려주세요' 수영을 하게 되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매일 유튜브로 "자유형 호흡하는 방법" , "자유형 발차기"등을 검색해서 보고 다음날 수영장에 가서 연습해 보았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안 따라주니 여기서 그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머리가 인지한 내용을 몸에 익숙해지게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머리로 내용을 받아들였으니 몸이 익숙해지도록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을 나 자신에게 주어야 했다. 평생 운동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나라는 사람의 속성을 인정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느 순간 목에 들어간 힘이 서서히 빠지면서 자연스레 호흡이 가능해졌다. 발차기도 좋아지니 몸이 물에 잘 뜨는 유선형이 만들어지면서 앞으로 잘 나아가기 시작했다. 물에 몸을 맡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초급반은 수심 0.8미터 길이 18미터의 유아용 풀에서 수업을 한다. 수심 0.8 미터면 7살인 우리 딸의 키보다도 작은 얕은 물이다. 처음보다는 앞으로 잘 나아가기는 했지만 자유형을 하고 가다 호흡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면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18미터 끝까지 도착하지 못하고 자꾸만 15미터쯤에서 호흡이 힘들어서 멈춰 섰다.
흐어어어어억 헉헉헉...
"자꾸만 3미터 남겨놓고 같은 곳에서 멈춰 서네요. 그걸 이겨내셔야 합니다. 근력운동 할 때도 진짜 힘들어서 못할 것 같을 때 그때 해야 근력이 늘어나는 거예요."
강사님이 말씀하셨다.
거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이미 최선을 다해서 연습해 왔기에 더 이상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강사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어쩌면 나는 끝까지 가보지도 않고 나의 한계를 나 스스로 정해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것 같았지만 조금만 더 참고 끝까지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한번, 두 번, 세 번... 쉬지 않고 왕복으로 30미터를 수영하게 되었을 때 중급반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수영하시면 안 되세요."
이비인후과 선생님의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수영을 시작하고 두 달째, 한참 수영에 재미를 붙여 매일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영장에 갔다. 겨울이라 많이 추웠지만 걸어서 수영장을 가는 길이 그렇게나 신나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자유형이 조금 익숙해질 때쯤 배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강사님께서 배영은 자유형을 거꾸로 하면 된다고 하셨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물을 먹는 양도 자유형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많았다. 자유형으로 물먹는 게 '켁켁'정도이면, 배영으로 물먹는 건 '꿀떡꿀떡 콸콸콸'이었다.
추운 겨울날씨에 걸어 다니면서 수영장 물을 매일 먹다 보니 나의 고질병 부비동염이 재발했다. 왼쪽 광대뼈아래쪽 통증과 함께 코막힘, 두통까지 심해져 잠을 자기도 힘들 정도였다. 감기에 걸려도 생전 코맹맹 소리도 잘 안 하던 나였지만 매일 수영장 물을 마시다시피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애교 섞인 코맹맹소리를 장착하게 되었다.
그렇게 찾게 된 이비인후과.
선생님께서 작은 카메라로 내 콧속을 확인했다.
"지금 콧속 점막이 엄청 부어있네요. 이렇게 부어있으면 산소 전달이 잘 안 되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지요."
"선생님, 제가 요즘 수영을 배우고 있는데 약 먹으면 수영은 계속해도 되는 거죠?"
"수영이요? 허허. 지금 이런 상태에서 제일 안 좋은 게 비행기 타는 거랑 수영하는 거예요. 안 그래도 코 점막이 부어있는데 물속에 들어가면 수압 때문에 증상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어요. 약 먹고 증상이 다 나을 동안만이라도 수영을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일주일치 약을 처방받아 나오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겨내야지. 극복해야 해. 모든 건 정신력싸움이라고.'
의사 선생님의 권고를 애써 부정하며 나 스스로 위안을 삼기 위한 내적갈등이었다.
'한참 물이랑 친해지려고 하는 이 순간에... 이제 좀 뭔가 연습했던 것들이 되는 것 같은 이 순간에... 하필 이 순간에 아프다니... 아니야. 더 열심히 해야 해. 나아가야 한다고. 내 한계를 극복해야지!!'
정신이 나간 소리였다. 코가 막혀 일상생활에서 숨쉬기도 불편한 데다가 수면의 질도 낮아져 매일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았다. 그런 몸 상태로 계속 수영을 하면서 면역력도 떨어지고 증상이 더 심해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약을 먹는 동안 일주일가량 수영을 쉬었다. 잠시 멈춰야 할 때였던 것이다.
나는 멈춘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잠시 멈춘다는 것이 결코 포기하거나 그만두는 것이 아님에도 나 스스로 '멈춤=포기'라는 공식을 세워 내 몸을 학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건강을 위해 시작했던 수영이 되려 나의 건강에 위협을 주고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처럼, 멈춤은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작은 쉼이며, 더 다양한 것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작은 여유가 아닐까.
인생에서 나아가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잘 알게 되는 순간은 언제쯤 찾아올까? 어쩌면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도 혼란스러울지 모르겠다. 여기까지가 최선이라 생각했지만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순간의 선택도, 잠시 멈춰가는 선택도 모두 다 나의 선택이다. 선택의 연속인 인생 속에서 나는 그저 후회하는 선택보다는 만족하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선택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기보다 내가 한 선택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려 한다.
우리는 날마다 매순간 계속되는 그 선택 앞에서 다른것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그 순간 우리 앞에 놓인것의 가치만을 생각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의식속에 아름다움의 씨앗을 심는다면 그 씨앗이 자라나서 나비를 유혹하는 꽃이 되듯이 우리의 삶에 더 큰 아름다움을 초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