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개구리수영'이라고 알고 있는 영법인 평영은 70% 이상 발차기의 힘으로 나아가는 영법이다. 상체보다 하체가 더 발달되어 있는 신체구조를 가진 내가 약간의 이점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는 영법이었다.
평영의 발차기 방법은 두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무릎이 발목보다 바깥쪽으로 벌어지면서 차는 웨지킥, 두 번째는 무릎이 발목보다 안쪽으로 모아져서 차는 윕킥이 있다. 두 가지 방법 중 본인의 유연성 정도에 따라 편안한 방법으로 연습하면 된다. 보통은 무릎관절이 안 좋거나 고관절이 유연하지 못한 어르신들이 웨지킥으로 연습하시고, 일반적으로는 윕킥으로 평영을 배우게 된다.
스스로 유연성만큼은 좋다고 생각하는 편인지라 부담 없이 윕킥으로 평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윕킥은 보통 어린아이들이 바닥에 앉을 때 발목을 바깥으로 벌려 앉는 W모양의 자세이다. 그만큼 유연성이 필요한 동작이라고 할 수 있다. 평영을 처음 배우던 날, 강사님께서 0.8M의 유아용 풀 바닥에 앉아 다리를 W모양으로 만들어 보라고 하셨다.
"안쪽 발바닥 힘으로 바닥을 밀어낸다고 생각하고 점프해 보세요. 자, 하나, 둘, 셋 점프!"
'슈-웅-'
순간 다른 사람에 비해 너무 높이 떠오르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이게 아닌가 하고 멈칫했다. 그러나 잠시 후, 역시 나의 하체힘은 남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감지할 수 있었다. 앉아서 했던 이 동작을 물속에서 그대로 하면 평영 발차기 윕킥 자세가 된다.
발차기의 힘이 중요한 영법인 만큼 발차기를 제대로 하는 게 중요했다. 그러나 유연성이 좋은 것만으로는 앞으로 잘 나아가는데 한계가 있었다. 자세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발차기와 손동작의 타이밍, 발을 찰 때 힘을 주고 빼는 강약조절이 맞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었다. 나는 열심히 동작을 하고 있는데 계속 제자리에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만 반복할 뿐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평영은 수영의 4가지 영법(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중에서 체력소모가 가장 적은 영법이기에 물에 빠졌을 때 평영으로 헤엄쳐 나온다고 한다. 그만큼 편안하게 해야 하는 영법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면 너무나 지치고 힘이 들었다. 팔 동작과 발차기의 타이밍을 맞추기가 힘들었고, 발차기의 힘조절이 안되니 앞으로 가는 수영이 아닌 뒤로 가는 수영을 하기도 했다.
"발을 엉덩이 쪽으로 가지고 올 때는 힘을 빼고, 발을 차면서 발바닥 안쪽으로 물을 밀어낸다는 느낌으로 쭉- 차 보세요."
강사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어렵게 느끼는 부분은 '힘을 빼는 부분'이었다. 힘을 뺀다는 건 도대체 뭘까? 내 생각 속에 힘을 빼는 모습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파에 나른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힘을 빼는 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어떤 것을 배우거나 집중할 때는 오히려 힘을 줘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만유학당시 월요일은 문자학 전공수업이 있었다. 교수님은 매주 붓글씨 과제를 내주셨다. 게으른 완벽주의자인 나는 매번 과제를 할 때마다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50%쯤 마음에 드는 붓글씨를 써서 다음날 제출하고는 했다. 그다음 주에는 어김없이 교수님의 평가한마디와 점수가 적힌 과제 종이가 나에게 돌아온다.
“放一點(팡이디엔)” (조금만 힘을 빼)
95점과 함께 돌아온 교수님의 한마디"조금만 힘을 빼". 아마도 외국인 학생이 쓴 걸 감안해서 주신 후한 점수였을 것이다. 교수님께서 빨간펜으로 적어주신 그 한마디를 바라보고 있는데 마음이 이상했다.
겨우 세 글자였다.
그런데 그 세 글자가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 내가 쓴 붓글씨를 계속 바라보았다. 한획한획 꾹꾹 힘줘서 눌러쓴 붓글씨를 보니 마치 잘 해내고 싶어 아등바등거리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붓을 몸의 가운데에 두고 정신을 집중하되 손과 팔 어깨는 힘을 빼고 써내려 가야 해."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글을 쓰는데 손과 팔 어깨에 힘을 빼고 써야 한다니, 참으로 힘든 자세이지 않은가. 더욱이 붓을 몸의 가운데에 둔 채로 손과 팔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는 건 거의 물아일체의 경지에 올라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 수업 이후로 나는 붓글씨를 다시 쓴 적이 없지만 문자학 교수님의 그 세 글자는 항상 내 마음에 남아있었다.
“放一點(팡이디엔)"
수영을 배우면서 새로운 영법을 배울 때마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그 영법이 익숙해지기 전까지 힘을 빼는 게 가장 어렵게 느껴진다. 아마도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과 남들보다 잘 해내고 싶다는 나의 인정욕구가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문자학 교수님의 그 한마디가 나에게 위로처럼 다가왔던 이유도 잘 해내려고 애쓴 내 모습을 정작 나 자신은 모른 채 스스로를 더 잘해야 한다고 채찍질만 했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인가 도전하고 경험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힘을 뺀다는 것은 '때를 아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잣대가 기준이 된 인생이 아닌 나 자신이 기준이 된 인생에서, 언제 힘을 주고 빼야 할지 그 '때'를 아는 것이야 말로나의 인생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방법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모든 영법 중에서 평영이 가장 편안하게 느껴진다. 머리를 고정시킨 채 슬쩍 힘을 뺐다가 발을 찰 때 필요한 만큼의 힘만 준다. 그러면 몸이 쑤~~ 욱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물속의 개구리가 된다. 이 순간을 즐길 수 있게 된 지금의 내가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