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인지심리학자인 김경일 교수의 책과 강연을 좋아한다. 내가 그의 글과 강연을 좋아하는 이유는 인지 심리학이라는 고급스럽고 어려워 보이는 포장지를 아무렇지 않게 북북 뜯어서 '이거 별거 아니야,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야.'라고 쉽고 간결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런 끌림으로 그의 책을 여러 권 읽게 되었다. 그중에서 정말 재미있게 완독 했던 <적정한 삶>이라는 책 속에는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부분이 나온다. 제목이 주는 강렬함 때문인지 마음속에 생기는 이상한 희열감과 함께 옅은 미소를 띠며 순식간에 읽어나갔다.
실제로 개소리에 대한 연구는 1986년 해리 프랭크퍼트 교수의 논문을 시작으로, 2016년 캐나다 워털루대학의 고든 페니쿡 교수가 이 연구로 이그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개소리에 대한 연구가 궁금해진 나는 도서관에서 해리 프랭크퍼트 교수의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을 찾아 읽고, 김경일 교수의 강연도 찾아보게 되었다. 프랭크 퍼트 교수는 개소리에 대한 정의를 옥스퍼드 사전에 근거하여 "Bull:더운 입김, Shit:똥"이라는 뜻으로 '생각 없이 영양가 없는 말을 싸지르는 것'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이토록 '개소리'라는 주제에 꽂힌 이유는 얼마 전 수영수업에서 강사님과 나눈 짧은 대화 때문이다.
2주 전 우리 반 강사님께서 다리를 다치셨다.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물속에서 수업을 할 수 없기에 매일 다른 강사님들이 로테이션으로 수업을 들어오셨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반 수업을 들어오게 된 A강사님. A강사님은 중급반시절 보름 정도 함께 수업한 적이 있었다. 30대 중반인 A강사님은 회원들에게 반말과 존대를 묘하게 섞은 채 생각 없이 말을 툭툭 내뱉는 스타일이었다. 그 강사님과 수업을 하고 나면 뭐라 딱히 화내기에는 애매하지만 썩 유쾌하지 않은 그런 상황들이 종종 생기고는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함께한 수업에서 접영 50M를 하고 돌아오는 나에게 강사님이 말했다.
"그냥 체력 자체가 저질이네. 수영 수업 안 빠지고 꾸준하게 나오지 않았어요?"
"네? 음... 가능하면 안 빠지고 나오려고 했죠."
"그런데 체력이 왜 이래요..."
"아...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요..."
"치~ 언제는 좋았나~"
강사님의 마지막 말에 반박할만한 순간이 주어지지 않은 채 지나간 짧은 대화였다. 그런데 그날 하루종일 강사님의 마지막 말이 이상하게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그 대화를 나누었을 당시 나의 상황은 이틀 전 위경련으로 응급실에 다녀왔고 몸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무리하지 말고 몸만 풀고 오자는 생각으로 간 수영수업이었기에 강사님의 눈에는 그날의 내 체력이 저질인 것처럼 보였을 수 있다. 나의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없고 다른사람이 알아야 할 이유도 없기에 강사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는 좋았나~" 이 대목에서 약간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나와 매일 수업하는 강사님이 아닌 두 달여 만에 만나 그날 하루 수업을 하게 된 상황에서 이 말을 듣는 게 썩 유쾌하지 않았다. 10개월 동안 수영을 배우면서 과연 컨디션 좋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으랴. 그런 점에서 "언제는 컨디션이 좋았나"는 말은 강사님의 입장에서 바라본 부분적인 느낌을 마치 나는 늘 컨디션이 안 좋은 사람인 것처럼 일반화시킨 것이다.
이날의 대화를 곱씹어 보면서 이상하게도 이 상황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불편감은 결혼 전 다니던 회사에서도 자주 있던 상황이었다. 사장님은 회사가 끝나면 직원들과 회식하면서 술 마시는 낙으로 사는 사람이었다. 2세 경영자였던 사장님은 회사에서 오래 일하신 이사님들이나 상무님도 못 말리는 트러블메이커였다.
(퇴근시간 10분 전)
"어이~ 해외영업팀이랑 구매팀 오늘 회식할 거니까 다들 집에 바로 갈 생각하지 마."
회식에서 진상 부리는 사장님의 스타일을 익히 알고 있던 직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회식 참석여부를 눈빛으로 교환하고 있었다. 그때 한 여직원이 말했다.
"저는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회식에 참석 못 할 것 같습니다."
"뭐? 컨디션이 안 좋다고? 네가 언제는 컨디션 좋았냐? 내가 컨디션 사줄 테니까 좋은 말로 할 때 회식 참석하도록" (멍멍)
한 번은 회식자리에서 남자 직원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도 있었다. 술에 취해 자신의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다며 본인이 가지고 있던 우산으로 남자직원의 머리를 내리쳤다.
"야 인마! 내가 너 정신바짝 차려서 잘되라고 이러는 거 아냐~" (멍멍)
이런 개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인정욕구가 강하고, 자기를 상승시키고 싶은 욕구가 강하며, 자기 지위를 침탈당하거나 빼앗기고 싶지 않은 욕구가 강하다고 한다. 이것은 드라마에서나 보던 상황이었다. 그 남자직원은 얼마 뒤 회사를 그만두었고 나 또한 입사한 지 7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렇듯 개소리의 특징은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은채 느낌은 정당화하고 싶을 때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라고 한다.
얼마 전 "im 신뢰예요"라는 말을 유행시킨 전청조-남현희 씨 사건만 봐도 정말 말도 안 되는 개소리에 사람들이 현혹되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개소리에 우리가 관대해지는 이유는 개소리를 하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진심'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진정성'에 이끌려 이런 사람들이 하는 개소리에 현혹된다고 한다. 개소리 제조기였던 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지금) 뉴욕은 춥고 눈도 온다. 우리에겐 지구 온난화가 필요하다.-2012/11/7"고 말했다. 사태의 실상이 어떠한지는 중요치 않고 오직 자신의 느낌을 "진정성"있게 내뱉은 것이다.
사태의 실상 혹은 진실은 늘 맥락 속에 있다. 맥락을 놓치는 사람은 쉽게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맥락은 쉽게 드러나지 않아 전후 사정을 추측하고 상대의 상황을 이해해야 비로소 모습을 나타낸다. 이렇듯 제시된 정보 뒤에 숨어있는 맥락을 잘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위해서는 '겸손'이라는 인격이 필요하다. A강사님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 내가 불편감을 느낀 이유도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자신의 느낌을 내뱉은 그 말들이 무례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김경일 교수는 개소리에 현혹되지 않는 명확한 답은 바로 "행복"이라고 말한다. 행복한 사람들은 절대 개소리에 당하지 않는다. 행복한 이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파괴보다는 공존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공존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향한 배려와 선행 등의 이타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행복한 사람들은 긍정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 일에 헌신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몰입감이 높다고 한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친밀한 시간을 갖고 우정 어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를 맺고 있으며, 보람 있고 값진일을 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간다.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나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성취를 한다.
개소리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솔직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욕구를 감추면서 나의 느낌을 정당화시키는 순간 나 스스로도 "개소리"를 하게 되는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 또한 이 개소리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를 솔직하게 밝혀야겠다.
"강사님~저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아 주시겠어요?"(솔직하게)
"컨디션 좋은 날도 많았답니다~^^"(약간의 겸손)
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모든 이가 이것을 알고 있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개소리를 하고 다니니까. <개소리에 대하여>중에서 -해리 G. 프랭크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