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이미 나는 코끼리를 떠올리고 있다. 뒤에 따라오는 부정어는 우리의 뇌에게는 중요치 않다. 오히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아야 돼'라며 더 강조하는 효과만 줄 뿐이다. 이렇듯 우리의 뇌는 부정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부정어를 긍정형으로 바꾸는 게 중요하다. 아이에게 "소파에서 과자 먹지 마."라고 하면 아이는 소파에 앉을 때마다 과자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엄마는 소파에서 과자를 먹지 말라는 말을 계속 반복하게 될 것이고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에게 '소파=과자'의 강조효과만 주는 것이다. 그 대신 "과자는 식탁에서 먹을까?"라고 긍정형으로 바꿔줌과 동시에 해결책을 제시해 줌으로써 아이는 부모의 말에 더 쉽게 수긍할 수 있게 된다. 스키선수들도 장애물을 피하는 연습을 할 때 "나무를 피해야 해."라고 생각하기보다, "길을 따라가, 눈길을 따라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스키를 탄다고 한다.
처음 수영을 배울 때 강사님께 가장 많이 듣던 소리가 "호흡할 때 머리 들지 마세요"였다. 그 말을 듣고 호흡을 하려고 하면 계속 호흡할 때만 되면 "머리를 들면 안 돼."라는 생각만 들었다. 결국 머리를 들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다리가 가라앉고 목에 힘이 들어가면서 호흡을 할 때마다 머리를 들게 되는 효과만 나타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사용한 방법은 강사님께서 알려주시는 지시사항들을 긍정형으로 바꾸어 생각하는 것이었다. "호흡할 때 고개를 들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 좀 더 머리가 물속에 잠긴 상태로 호흡해 보자."라고 생각했다. 사실 코와 입의 반만 나와도 호흡하는 데는 문제가 없기에 물에 몸을 맡긴다는 생각으로 여러 번 시도하다 보니 어느새 호흡이 편안해졌다.
자유형을 배울 때에는 한동안 자꾸 오른쪽 팔을 돌릴 때 왼쪽팔이 아래로 떨어졌다. 한쪽팔이 다 돌아오지 않았는데 다른 쪽 팔을 돌리려고 하다 보니 팔로 풍차 돌리기 시전을 했던 것이다. 강사님께서 "오른팔이 다 돌아오기 전에 왼쪽팔이 돌아가면 안 됩니다. 왼쪽팔이 안 떨어지게 하세요." '왼쪽 팔을 떨어뜨리지 말자. 왼쪽 팔을 떨어뜨리지 말자.'그러나 내 몸은 이미 오른팔이 도착하기 전에 왼쪽 팔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돌리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시 긍정형으로 전환시켜 생각해 보았다. "왼쪽 팔을 그대로 유지하자. 오른팔이 돌아올 때까지 왼쪽 팔을 그대로 유지하자. " 부정형으로 들었을 때는 몸과 머리가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면, 긍정형으로 바꾸어 생각하니 머리가 인식하는 대로 몸이 따라주는 느낌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수영의 꽃은 "접영"이다. 'Butterfly stroke'라고 불리는 영어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접영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양팔을 벌려 앞으로 나아가는 영법이다. 수영의 4가지 영법 중에서 가장 저항을 많이 받아 체력 소모가 큰 영법 중 하나이다. 그러나 접영을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수영의 꽃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주말 자유수영에서 남편이 접영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가슴이 설레었다. 나도 저렇게 멋진 접영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전직 수영강사였던 남편에게 과외도 받고 유튜브로 공부도 하고 열심히 연습도 했다.
제일 처음 접영을 배울 때에는 물타기를 배우게 된다. 양팔을 위로 뻗쳐 수영장 바닥 끝까지 깊이 들어갔다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을 반복하는 연습이다. 몸이 뜨고 가라앉는 타이밍을 느낄 수 있는 연습방법이다. 그다음은 입수를 하기 위한 발차기를 배운다. 접영킥을 돌핀킥이라고도 하는데 우리의 양쪽 발이 돌고래의 꼬리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수영을 배우면서 가장 큰 희열을 느꼈을 때가 바로 접영의 돌핀킥을 배웠을 때였다. 돌핀킥을 차면서 웨이브를 타고 앞으로 나아갈 때면 마치 내가 바닷속 인어라도 된 것처럼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느낌이 다른 영법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좋았다. 마지막으로 접영을 잘하기 위한 가장 큰 관문은 바로 팔 돌리기와 발차기의 타이밍 맞추기이다. 팔은 나비의 날개처럼 쫘악 펼쳐야 하는데 처음 배울 때는 팔꿈치가 굽혀지고 몸에 힘이 들어가 물에 빠진 사람처럼 "살려주세요"수영을 하게 된다. 접영만큼은 그 어떤 다른 영법보다 예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내가 생각한 방법은 접영을 할 때마다 나비처럼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팔꿈치를 굽히지 마세요. 발차기할 때 무릎을 너무 굽히지 마세요." 이런 지시사항들을 새겨듣되 긍정형으로 바꾸어서 생각했다. "나는 나비다. 그러니 팔을 활짝 펴서 날아보자." 좀 많이 무거운 나비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나비처럼 날아간다고 생각하며 접영을 하니 어느 순간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아직도 접영은 많은 연습이 필요한 영법이긴 하지만 접영을 할 때마다 수영을 배우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속으로 들어가 멋지게 양쪽 날개를 펴서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나는 나비가 된다.
예전의 나는 장점보다 단점에 더 많은 중점을 두고 살았다. 그렇게 살아가려고 한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내가 잘 못하는 부분, 내가 잘 안 되는 부분을 고치려고만 생각했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데 나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써야 할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단점은 술술 써내려 져 나갔다. 나는 아주 감정적이라 타인의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편이었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 약점이나 한계를 극복하는 시도를 해 보는 것을 두려워했다.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스스로 자책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생각이 이리저리 튀어 한 가지 일을 마무리 짓는데 힘들었다. 그리고 게으른 완벽주의자답게 이것저것 따지고 안 되는 이유와 변명들을 백만 가지 늘어놓다 보니 모든 시작이 힘들었다.
이러한 나의 단점들을 늘어놓고 보니 이 많은 단점들에 대해 집착하고 고치려는 삶을 사느라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사용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책은 일상이 되었고 나 스스로에게 엄격했다. 비극과 희극은 결국 똑같지만 내가 보기에 달렸다는 말처럼 나의 관점을 바꾸니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지는 듯했다.
아주 감정적이라 생각했던 나의 단점은 타인의 상황이나 감정에 잘 이입함으로써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는 장점으로 변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는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잘 발견하며,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에 사람과 만물에 관심이 많다. 생각이 이리저리 튀어 집중력이 부족하다 생각했던 내가, 그런 생각들 하나하나를 아이디어로 받아들이고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현상들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장점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시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대신 깊은 내적 성찰을 통해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려고 노력한다는 장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처럼 나라는 사람의 꽃을 피우게 하는 건 바로 나의 "태도"이다. 우리 모두 재능과 소양을 갖고 태어나지만 모두가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부정적으로 취할 것인지 긍정적으로 취할 것인지는 나의 선택이다. 나의 단점에 집중하며 고치는데 집중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 나의 장점을 더 발전시키는데 집중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도 나의 선택이다. 운동은 자신의 현재를 마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그렇게 수영을 통해서 나는 과거 속 나의 상처를 회피하기보다 마주하고 흘려보낼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나가는중이다. 수영을 통해서 나만의 속도를 찾아가고, 나아가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힘을 빼야 할 때와 힘을 줘야 할 때를 배워나가는 중이다. 아직도 나는 수영을 통해서 내 안의 편견과 부정적인 시선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연습 중이다. 이왕이면 긍정적인 태도로 나의 장점을 더 발전시키는데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아직 나는 꽃을 피우지 못했다. 그러나 꽃을 피우기 위해 추운 겨울의 땅속에서 깊이깊이 뿌리를 내리고있는 중이다. 따스한 봄날의 바람과 햇살을 맞으며 나만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그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