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라 내 기억에는 없지만, 엄마의 생생한 스토리 구현으로 그 당시를 마치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고는 한다. 엄마는 크고 동그란 공중탕에 등을 돌리고 둘러앉아 열심히 때를 밀고 있었다. 옆에 계시던 아줌마가 물을 푸던 바가지에 아기머리가 걸려 기겁하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뒤돌아 보니 내가 탕 속에 꼬르륵 빠져있었다고.
물속에 빠진 순간 나는 두려웠을까? 아니면 엄마 뱃속처럼 익숙하고 반가웠을까?
스스로 기억을 못 하니 알 길이 없지만, 이 사건이 내가 물에 대한 공포를 가지게 한 건 틀림없다 생각했다.
어쨌든 그 아주머니께서 기막힌 타이밍에 바가지로 물을 퍼주신 덕분에 나는 탕에서 건져져 나올 수 있었다.
자라면서 나는 이 사건으로 인해 스스로 물 공포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냥 이유 없이 물이 무서웠다.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재미있어 보인다 싶다가도 막상 물속으로 들어가면 몸이 경직되고 뻣뻣해졌다. 함께 계곡으로 놀러 간 친구들의 장난에 튜브가 뒤집어져 몸이 물속에서 한 바퀴 돌면 마치 물속에 잠겨있는 그 순간이 영원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헉헉헉.
물 밖으로 나와 가쁜 숨을 내쉬며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어서 까지도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 나쁜 불안감이 있었다. 티셔츠의 목부분을 머리로 쏙 집어넣을 때마다,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여기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처음 와본 생경한 곳에 혼자 뚝 떨어진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러고 나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이가 엄마의 산도를 비집고 세상에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나갈 수 없는 그런 느낌이랄까.
나는 난산으로 태어났다. 허니문 베이비였지만 나의 존재 자체는 그렇게 달콤하지 못했다.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부터 아빠의 술버릇으로 인해 엄마는 힘들어했지만 아빠와 헤어질 수 없는 명분이 바로 나였다.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진통이 와서 병원에 갔는데 8시간 동안 유도분만을 해도 소식이 없자 의사 선생님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빠는 술독에 빠져 병원에 오지 않았고, 나의 친할머니이자 엄마의 시어머니께서는 수술은 무슨 수술로 애를 낳냐고 하시며 병원 복도에서 동네 창피하다고 대성통곡을 하시면서 수술동의서를 써주지 않으셨단다. 그 와중에 엄마와 나의 목숨도 위태로워졌고, 어쩔 수 없이 수술동의서를 써주신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고 한번 더 병원복도에서 대성통곡을 하셨다고 한다.
내가 여자아이라서.
나중에는 나를 첫 손주라고 아주 예뻐해 주셨지만 엄마의 가슴속에는 사무치는 한으로 남아있는 사건이었다. 어쨌든 8시간 유도분만 끝에 제왕절개로 태어난 나는 목에 탯줄이 8번이나 감겨있었다고 한다. 엄마 뱃속의 양수를 헤엄치며 너무 신나게 놀았나 보다.
내 이름의 한자는 있을 유(有)에 물 하(河)이다. 참 정직한 이름이지 않은가.
물이 있다.
내 이름에는 물이 있다.
내가 태어나고 할머니께서 철학관에 가서 받아오신 여러 가지 이상한 이름들 중에서 가장 무난한 이름이라 엄마가 선택하셨다고 한다. 내 사주에 물이 없어서 이름에 물을 넣은 거라고 하셨다. 내가 대만에서 유학할 때 문자학 교수님께서 내 이름을 보시며 굉장히 진지하게 나에게 물어보셨다.
혹시 집에 농사를 크게 지으시냐고.
뭐 어쨌든 나는 내 이름이 좋다.
한국어로도(유하),
중국어로도(요우허),
영어로도(Yuha)
모두 발음이 쉽고 부드럽게 느껴져서 만족스럽다. 이름의 뜻까지도 물이 있는 나는 이상하게도 물이 무섭지만 좋았다. 두렵지만 한번 제대로 느껴보고 싶은 갈망이 늘 존재했다.
올해 초 결혼 후 7년간 신랑이 나에게 지속적으로 권유했던 수영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난 수영복을 입을 자신도 없는데.'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두렵고 불안한 감정과 생각들이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건들로 인해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나는 물공포증이 있어야 하는 사람처럼...
그렇다면 한번 실험해보고 싶었다.
무섭고 두렵지만 물에 내 몸을 한 번 맡겨보고 경험해 보자는 생각으로 수영장에 등록했다.
그렇게 나는 올해 초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10개월 차 고급반 수영인이다. 매일아침 수영 가는 시간이 기다려 질정도로 너무나 재밌고 내 모든 생각은 수영으로 가득 찰 만큼 나는 수영에 빠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