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걸 정말 내 뜻대로 계획할 수 있을까?”
“죽음이란 걸 정말 내 뜻대로 계획할 수 있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병원 생활과 수술, 끊이지 않는 통증. 삶이 통제할 수 없는 혼돈이라면, 차라리 내가 직접 마지막을 설계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계획은 간단했다. 한 달 치 진통제를 모으고, 완벽한 장소를 정하고, ‘품위 있는 퇴장’을 실행하는 것.
[주의] 아래 이야기는 극단적 선택 및 자해 시도를 다룹니다. 읽는 분들 중 불편함이나 트라우마를 느낄 수 있는 분들은 충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위기 상황에 있거나 자살을 고려 중이라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그 질문이 처음 떠올랐을 때, 솔직히 말해 나는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두려움도, 슬픔도, 망설임도 없이, 그냥 하나의 논리적인 가능성을 검토하는 기분이었다. 마치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것처럼, 나는 차분하게 생각했다. ‘만약 내가 내 삶을 끝내기로 결정한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죽음을 감정적인 선택이라고 하지만, 내게 그것은 오히려 철저한 계산의 영역이었다. 나는 이미 충분히 싸웠고, 버틸 만큼 버텼고, 더 이상은 지치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원래 이런 걸까? 항상 버티고, 참고, 견뎌야만 하는 걸까? 나는 너무 오랫동안 ‘살아내는 것’에 집중해 왔다. 살아간다는 건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는 걸까?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살아남으려고 하는 걸까?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질문이 가장 무서웠다.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면, 계속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는 뜻일 테니까.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온갖 진단명과 치료 기록이 나를 정의했다. 나는 질병과 함께 살아왔고, 그게 내 삶의 전부였다. 가족성 용종성 폴립증(FAP), 양극성 정동장애, 대장 절제 수술. 내 몸은 이미 수술 자국과 고통의 기억으로 가득했다. 토털코렉토미를 받고 난 뒤, 나는 더 이상 정상적인 소화기관을 가지지 못했다. 먹는 것 하나조차 신경 써야 했고, 어떤 날은 그냥 물을 마시는 것조차도 두려웠다. 몸은 만성적인 피로에 젖어 있었고, 통증은 불쑥불쑥 찾아왔다. 가끔은 온몸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고통이, 마치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나를 덮쳤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나는 어느 순간부터 죽음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공상에 불과했다. ‘만약 내가 사라진다면, 누가 가장 먼저 눈치챌까?’ ‘사람들은 얼마나 슬퍼할까?’ 그런 유치한 상상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들은 점점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아주 현실적인 방법을 떠올렸다. “한 달 치 분량의 강력한 진통제를 모아두면 어떨까?”
이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가능성을 계산하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 양이면 확실히 끝낼 수 있을까?’ ‘고통 없이 갈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질문들이 반복될수록, 나는 점점 더 차분해졌다. 어쩌면 나는 이미 결정을 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베트남 사이공(호찌민)에 살고 있었다. 호주계 학교를 다니며, 프랑스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도시의 혼잡한 거리, 오토바이가 가득한 도로, 습한 공기…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는 이곳에서 나는 점점 더 세상과 분리된 느낌이 들었다. 학교에서도, 병원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는 마치 유리벽 안에 갇힌 사람 같았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돌아갔지만, 내 시간은 멈춘 것만 같았다.
어느 날부터 나는 응급실을 찾기 시작했다. “수술 부위가 아프다”는 연기를 하며 진통제를 처방받았다. 처음에는 주사 형태로 받았고, 이후에는 처방전을 통해 캡슐을 받았다. 의사들은 내가 얼마나 아픈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이미 여러 차례 수술을 받은 환자였으니 강한 진통제를 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한 달 치 분량의 약을 모았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이 양이면 성인 남성 두 명을 동시에 숨지게 할 수도 있는 치사량이었다. 계산은 정확했다. ‘이 정도면 확실히 끝낼 수 있겠지.’ 나는 약을 손에 쥐고 조용히 웃었다.
그 순간, 거울 속 내 모습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한동안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눈 밑은 어둡게 꺼져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그래도 이상하게도 감정이 없었다. 두렵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오히려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 남은 건, 장소와 타이밍을 정하는 일뿐이야.’
나는 서울을 선택했다. 익숙한 곳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었다. 베트남에서 홀로 사라지는 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적어도 내 흔적을 발견할 사람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인천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숙소는 신중하게 골랐다. 깨끗해야 했고, 보안이 철저해야 했으며, 직원들이 불필요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곳이어야 했다. 너무 저렴한 호텔은 싫었다. 마지막 순간마저 초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 한복판의 최고급 호텔을 예약했다. 3박 4일 일정. 첫날에는 유서를 작성하고, 둘째 날 죽음을 실행하고, 셋째 날쯤 호텔 직원이 발견하겠지. 계획은 철저했다.
출국 당일, 나는 짐을 챙기며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정말 끝내는 건가? 그러나 생각보다 흔들리지 않았다. 공항으로 가는 길, 출국 심사, 탑승… 모든 것이 너무나도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마치 그냥 짧은 여행이라도 떠나는 기분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나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두꺼운 구름 위로 올라가면서 하늘이 한층 더 푸르게 변해갔다. ‘이게 내가 하늘을 보는 마지막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모든 계획이 틀어지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나는 너무 철저하게 준비했다. 이건 단순한 감정적인 선택이 아니라, 내가 치밀하게 설계한 결론이었다.
그렇게,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는 조용히 구름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고통은 단지 고통일 뿐이지만, 절망은 고통을 ‘영원’이라 믿는 착각에서 생긴다.” - 알베르 카뮈, 니체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 자살 예방 핫라인(한국) 1393 /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 베트남, 호주 등 해외 거주자의 경우, 지역별 자살예방 또는 정신건강 지원 센터를 확인
• 주변에 믿을 만한 친구, 가족, 전문가에게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길 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