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성 진통제와 편도 티켓: 베트남에서 서울까지

“이 정도 용량이면 확실하겠지?”

by Youhan Kim

"이 정도 용량이면 확실하겠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는 순간까지도, 나는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숫자들을 굴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모은 약이면 충분해. 치사량은 이미 넘어섰을 거야.’ 베트남 사이공의 프랑스계 병원을 오가며 적당히 아픈 척을 했던 기억,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 들고 나오던 순간들, 그리고 서랍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캡슐의 감촉이 떠올랐다. 모든 게 하나의 퍼즐이 되어, 내 ‘마지막’을 향해 점점 더 정교하게 맞물려 가는 기분이었다.


[주의] 아래 이야기는 극단적 선택 및 자해 시도를 다룹니다. 읽는 분들 중 불편함이나 트라우마를 느낄 수 있는 분들은 충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위기 상황에 있거나 자살을 고려 중이라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탔을 때, 창문 밖 풍경이 왜 그렇게 낯설게 보였을까. 늘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베트남 거리, 오토바이와 차량이 얽혀 있는 혼란스러운 모습이 어느새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택시 기사가 “휴가는 즐겁게 보내세요?”라고 물어왔지만, 난 웃음 지을 힘이 없었다. 몸이 묘하게 가벼웠다. 머릿속으로는 ‘그래, 이젠 정말 끝내도 되겠지’라는 안도감과,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나도 괜찮은 걸까?’ 하는 미약한 갈등이 뒤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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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여느 여행객처럼 티켓을 들고 탑승 수속을 밟았다. 사람들이 각자 짐을 끌고, 여권을 확인받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에겐 단순한 여행이겠지만, 내겐 “마지막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래서일까, 크게 떨리진 않았다. 오히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차분했다. 이미 ‘이 길의 끝’이라고 믿고 있으니, 설렘이라기보단 담담함에 가까웠다.


출국 심사대를 통과하고 나서 게이트로 걸어가는 동안, 서류 가방 안에 든 약 봉투가 파스락거렸다. 몸만 기울이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그 작은 캡슐들이 조금씩 흔들리는 소리에 땀 한 방울이 묻어났다. ‘이 작은 것들이 내 생애 마지막 열쇠라니.’ 이상하게도 그 생각이 날 안정시켰다. 누군가에겐 위태로운 도구지만, 내겐 고통 없는 안식을 보장해줄 장치처럼 느껴졌다.


비행기 내부로 들어서고, 의자에 앉자마자 창문을 열심히 들여다봤다. 이륙하기 전, 안전벨트를 매는 안내방송이 흘렀다. 승무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주변의 승객들은 들뜬 목소리로 서로 대화를 나눴다. 나는 헤드폰을 끼고 눈을 감았다. ‘이제부터 정말로 “마지막으로 향하는 편도 티켓”이 시작이구나.’ 그저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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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 직후, 비행기가 하늘을 가르자 구름층이 눈앞에 펼쳐졌다. 순백의 구름이 가득한 바다를 지나 하늘로 올라갈 때, 문득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딱히 슬프다거나 후회스럽다는 감정은 아니었다. 그냥 이 순간이 너무 선명하게 박혀서, “마지막으로 보는 하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론 ‘고작 이런 이유로 눈물이 나오려 하나’ 싶어 스스로를 비웃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감정이 소진됐다고 믿었는데, 내 안에도 아직 뭔가 남아 있었나 싶었다.


비행기가 안정권에 접어들자, 승무원이 기내식을 돌렸다. 한국행 노선이라 그런지, 약간 한국식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다. 뚜껑을 열고 김치와 밥, 간단한 반찬이 보이자,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일어났다. ‘이제 이 음식들을 먹을 기회도 많지 않겠지.’ 그렇다고 특별히 더 많이 먹고 싶지는 않았다. 몇 숟가락 뜨다가, 별다른 맛도 느끼지 못한 채 도로 뚜껑을 덮었다. 옆자리 승객이 “맛이 좀 별로죠?”라며 한국어로 말을 걸었지만, 나는 그냥 애매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문 너머로 시선을 옮겼을 때, 구름 위로 번지는 햇빛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왠지 모르게 그 풍경 하나가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멋지긴 하네. 그런데 이제 이거 볼 일 없겠지?’ 혼잣말에 스스로 허무해졌다가, 곧 이어지는 스스로의 답변이 더욱 차가웠다. ‘그래도 괜찮아. 애초에 길지 않은 인생이었으니.’ 기내 안내 방송이 흐르며 착륙 준비를 하라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나는 머릿속에서만 끊임없이 말싸움을 벌였다.


인천공항에 착륙하기 직전, 예상보다 부드러운 기류를 타며 땅으로 내려왔다. 기내 아나운스가 “곧 착륙합니다”라고 안내했을 때,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었다. 그것은 흥분인지, 불안인지 정확히 구별하기 어려웠다.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내 마지막.’ 그런 기이한 생각이 피어올랐다. 사실 일반적인 여행객이라면 도착 후의 일정을 기대하며 설렐 텐데, 내겐 기대라는 감정이 거의 없었다. 대신 ‘드디어’라는 막연한 안도감뿐이었다.




공항에 발을 디딘 순간, 한국 겨울 특유의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왔다. 베트남의 습하고 더운 날씨에 익숙해졌던 몸이 깜짝 놀랐다. 옷깃을 여미며 천천히 입국 심사대로 향했다. 별다른 질문 없이 입국 도장이 찍혔고, 캐리어를 찾으러 컨베이어 벨트로 이동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낯선 나라에 도착해 ‘드디어 휴가가 시작됐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무채색처럼 보였다. 누가 봐도 ‘여행객’이겠지만, 내가 계획한 건 전혀 다른 종류의 ‘여정’이었으니까.


짐을 찾고 밖으로 나오자,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들, 회사 셔틀버스를 타려는 사람들, 해외에서 막 도착한 친구를 반기는 환영 인파가 가득했다. 간혹 ‘플래카드’를 든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다.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나를 환영해주지 않을 뿐 아니라,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환영받을 생각이 없었으니. ‘괜히 여기서 울컥하고 싶진 않아.’ 고개를 떨군 채, 공항 철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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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장으로 내려가면서, 서류 가방에 든 약 봉투가 다시 한 번 파스락 소리를 냈다. ‘그래, 너희만 있으면 돼.’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다 스스로도 희미하게 웃음이 났다. 다른 사람들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신나게 걸어가지만, 나는 이 작은 봉투 하나를 지키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왔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면서, “이제 호텔만 잡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점점 선명해졌다.


공항 철도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내내 창밖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김포공항 역을 지나고, 익숙한 지하 터널 구간이 나오고, 도심이 점점 가까워지는 광경이 이어졌다. 예전엔 서울의 빼곡한 빌딩숲을 보면 ‘복잡하다’며 피곤해했었는데, 오늘은 딱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어차피 한동안 못 볼 거’라는 마음이 무감각에 가깝게 날 지배했다. 그 어떤 반짝이는 불빛도, 붐비는 인파도, 이젠 내게 의미가 없을 거라 여겼다.


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면, 계획대로라면 “편안한 호텔 방에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사라지겠지.” 그걸 상상만 해도 묘하게 가슴이 두근댔다. 사람들이 느끼는 기대감과는 전혀 다른 종류였겠지만, 분명 내 안엔 일종의 설렘이 있었다. ‘드디어 끝날 수 있다’는 해방감. 베트남에서부터 ‘이제 곧 풀려날 거야’라고 생각해온 시간을 마침내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기묘한 희열이 있었다.




서울역에 내려 택시를 잡아탔을 때, 기사님이 “날이 많이 춥죠? 어디로 가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호텔 이름을 조용히 말해줬다. 기사님은 “와, 거기 좋은데… 특별한 일정 있으신가 봐요?”라며 대화를 시도했지만, 난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정말 ‘특별한 일정’이라면 맞긴 했다. 다만, 기사님이 상상하는 종류와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말이다.


택시가 서울 도심으로 들어갈수록, 익숙한 네온사인과 높은 빌딩 숲이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고, 겨울 코트 깃을 세운 행인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창백한 얼굴, 결연히 다문 입술. ‘여기서 잠깐 멈출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내겐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고, 아니 정확히는 돌아갈 의사가 없었다고 말이다.




도착한 호텔 입구는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돼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히터 바람이 상반신을 감쌌다. 리셉션 직원이 친절하게 “어서 오세요, 예약 확인해드릴게요”라고 인사했다. 나는 신분증을 내밀면서, ‘이제 3박 4일… 그 시간 안에 모든 게 끝날 거야’라며 머릿속으로 재확인했다. 마음이 착잡했지만, 동시에 확신도 있었다. 이곳이 내가 마지막으로 머무를 공간이 될 테니까.


직원이 건네준 카드키를 쥐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층 수가 올라갈수록, 내 심장이 천천히 빠르게 뛰었다. ‘이제 막이 오르는구나.’ 짧은 ‘딩’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복도에 걸린 고급스러운 그림들, 푹신한 카펫이 깔린 바닥, 호텔 특유의 은은한 조명이 눈에 들어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베트남에서부터 쌓아온 계획들이 ‘정말 이 순간을 위해 있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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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통유리 창 너머로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불빛이 총총한 야경, 지나가는 자동차들, 가로등이 반짝이는 거리. ‘이 멋진 풍경이 내 마지막 무대가 될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 눈물이 어디서 나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슬픔도, 후회도, 안도도 아닌, 복합적인 감정이었던 듯하다. 어쩌면 내 자신이 이 도시에 오랫동안 정을 붙여왔다는 걸 새삼 깨달은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짐을 내려놓으며, 가방 안에 든 약 봉투를 살짝 만져봤다. ‘결국 여기에 다 있지.’ 이번엔 손끝이 떨리지 않았다.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다고, 스스로 납득했다. 그리고 아주 잠시, “혹시 나중에 라운지에서 와인을 한 잔 마시고 시작해 볼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죽음 앞에서도 뭔가를 ‘더 즐기고 싶다’는 내 마음이 우스워서, 쓴웃음이 났다. 하지만 동시에, 이 호텔에 들어선 순간 내가 더는 되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걸 확신했다.


그렇게, 베트남에서 시작된 ‘숫자의 게임’을 품에 안고,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 한복판에 서 있었다. 짐을 풀고 창가에 잠시 걸터앉아, 숨을 고르며 야경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어둠 속 빛나는 자동차 불빛들이 일렁였다. ‘정말 대단한 계획’이라고 스스로 중얼거리며, 조금은 허무하고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밖을 내다봤다. 이제 남은 건, 차근차근 실행하는 일뿐이었다.




“비극이란, 그 고통 자체가 아니라 고통이 끝나지 않으리라는 절망에서 온다.” - 프리다 칼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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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호주 등 해외 거주자의 경우, 지역별 자살예방 또는 정신건강 지원 센터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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