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설렐 수 있을까?”
“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설렐 수 있을까?”
침대에 몸을 뉘자, 부드러운 매트리스가 몸을 감싸왔다. 손끝에는 여전히 가방에서 꺼내 둔 캡슐들의 감촉이 은근히 남아 있었다. 마치 두터운 이불을 덮듯, 긴장된 마음이 서서히 풀어지는 동시에, 묵직한 책임감 같은 것이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여기서 멈추면 어떡하지?’라는 엉뚱한 질문이 슬쩍 떠올랐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이미 수도 없이 거쳐 간 생각이었으니까.
[주의] 아래 이야기는 극단적 선택 및 자해 시도를 다룹니다. 읽는 분들 중 불편함이나 트라우마를 느낄 수 있는 분들은 충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위기 상황에 있거나 자살을 고려 중이라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옆으로 돌아누워, 커튼 사이로 보이는 서울의 밤 풍경을 다시금 바라봤다. 반짝이는 빛들이 작은 점이 되어 흐릿하게 퍼져 있었다. 상상 속에서 ‘죽음’이란, 눈꺼풀을 닫는 순간 모든 게 정지하는 일이겠지만, 이렇게 호텔 창문 밖에는 여전히 세상이 유유히 움직이고 있었다. 길 위의 자동차와, 건물 꼭대기에서 깜빡이는 빨간 신호등,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사이렌 소리까지. 이 도시는 내 선택과 관계없이 제 갈 길을 가는 중이었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차분한 순간일지도 몰라.’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니, 의외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방금 전까지 들뜬 심장박동이 조금씩 안정되었고, 숨을 크게 내쉬자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면, 얼마나 아이러니하게 보일까.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준비하는 모습이, 어쩌면 웃기게도 ‘살아 있으려는 의지’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겐 알약 봉투에 쌓인 ‘수치’와 ‘계산’이 너무 분명했고, 머릿속에서 돌고 도는 그 공식이 이 결단을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머리를 약간 들어, 머리맡 테이블에 놓인 물컵을 잡아 들었다. 컵에 남아 있는 물이 흔들려 작은 파동을 만들었다. 문득, 내 인생도 이렇게 조금만 흔들려도 쉽게 깨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웃음이 나오는 동시에 씁쓸했다. ‘사실 인생이란 것도, 이 물 한 컵 정도의 충격에 흔들리는 것일지도 몰라.’ 그런데 나는 스스로 그 큰 충격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었다. 얼른 고개를 돌려버리고, 다시 창문밖 불빛에 집중했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시야를 둔 채로 있자니, 호텔 특유의 조용한 온기가 몸에 배어들었다. 복도에서 아주 희미하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발소리, 옆방에서 간간이 흘러나오는 말소리마저 ‘평화롭다’는 인상을 주었다. 내일 아침이 오면 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루를 시작하겠지. 회의에 참석하고, 시내 카페에 들르고, 혹은 체크아웃 후 다른 일정으로 떠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와 달리, 나는 모든 것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 차이가 기묘했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런 ‘차이’를 인식하는 과정이 서서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 저 사람들은 저들의 이야기가 있고, 나는 내 이야기가 있는 거니까.’ 이미 결론을 지어둔 이상, 불쑥불쑥 떠오르는 불안감이 오히려 반가웠다. 그 불안감조차 곧 사라질 거라고 믿었으니까. 물컵을 다시 내려놓으며, 한 번 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자세를 찾으려 몸을 조정하고, 베개를 끌어 안았다. 정신이 서서히 흐려지려는 찰나, 베트남에서 병원 문턱을 오갔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낯선 의사들에게 연신 “배가 아프다”고 호소했고, 한 번은 진통제 주사로 온몸이 풀린 적도 있었다. 그때는 실없이 웃음이 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휴식’을 잠깐 맛본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의 나른함과 지금 다가오는 잠 사이에는 무언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오자, 온몸이 침대에 녹아드는 것 같았다. ‘그래, 조금만 자고 일어나면 돼. 내일은 또 내일의 계획이 있으니.’ 머릿속에선 여전히 “이 정도 용량이면 확실하겠지?”라는 목소리가 맴돌았지만, 그걸 더 곱씹을 힘도 없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지배해 온 계산식이기에, 더 이상 되짚을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어쩌면 내일이면, 정말 모든 게 깔끔하게 마무리될 수도 있겠다. 그 상상을 하니 안도감이 몰려왔다. 뭔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나 부작용 없이, 계획대로 흐를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것 말이다. 사회적 통념으로 보면 ‘희망’이란 단어를 이렇게 비틀어 쓰는 게 이해되지 않을 테지만, 내게는 그만큼 절박했고, 또 동시에 차분한 방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창문 너머의 불빛을 휙 돌아본 뒤,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숨이 깊어질수록, 수많은 시간과 노력, 고통과 거짓말의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가 사라지고, 또 다시 몰려왔다. 하지만 끝내 결정된 결말은 흔들리지 않았다. ‘차근차근, 계획대로만 하면 돼.’ 그런 생각이 더없이 공고하게 정신 속에 박혀 있었다.
결국, 그 밤의 끝자락에서 나는 서서히 잠에 빠졌다. 호텔 방 안은 여전히 조용했고, 밖에서는 서울 도심의 빛들이 은은하게 스며들었다. 뇌리 한구석에서는 ‘이게 정말 마지막 밤이 될 수도 있다’는 문장이 희미하게 반짝였지만, 곧 온전한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 갔다. 숙면인지, 미련인지, 혹은 무감각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상태로, 나는 다음 날을 맞이하기 위한 쉬지 못할 휴식을 시작했다.
“인생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짐이 되는 건 남겨진 이들을 향한 미안함이 아니라,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하지 못했다는 자책일지도 모른다.”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 자살 예방 핫라인(한국) 1393 /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 베트남, 호주 등 해외 거주자의 경우, 지역별 자살예방 또는 정신건강 지원 센터를 확인
• 주변에 믿을 만한 친구, 가족, 전문가에게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길 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