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거리는 가스레인지

차근차근 정성 들여 내 인생 아귀도 맞춰 나가리라.

by 유희

가스레인지를 바꾸고부터 엄마는 가스레인지 상판의 그레이트와 홈을 맞추지 못해 늘 달그락거리는 채로 쓴다.


설거지를 하면서 가스레인지를 정리하려고 보니 오늘도 역시나 그레이트와 상판 홈이 맞지 않아 그레이트가 갈 곳 잃고 어설프게 걸쳐져 있다.


가스레인지로 조리를 할 때 냄비를 안정적으로 올려놓을 수 있도록 받침대 역할을 하는, 동그란 모양에 사각 발 달린 검은색 '저것'을 그레이트라 한다는 걸 안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원래 쓰던 가스레인지가 낡아 가스불을 점화할 때마다 말썽을 부리기에 교체해야겠다 싶어 새 가스레인지를 알아보다가 상품 설명문에서 이 단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늘 쓰는 익숙한 가스레인지에 비해 난생처음 보는 말이었다. 이 그레이트라는 부속품은 내게 가스레인지와 으레 한 몸이었기에 이 물건에도 따로 이름이 붙여져 있다는 걸 까맣게 몰랐다.


가스레인지에 묻혀 존재감 미약하던 그레이트가 요즘 유독 내 관심을 받는 건 오로지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그레이트를 가스레인지 상판 홈에 맞추느라 꽤 요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의지의 한국인인지라 아귀가 맞아질 때까지 몇 바퀴고 돌리는 통에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한동안 집 안에 끊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언젠가부터 달그락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 이제 요령을 깨우쳐 잘 맞춰 쓰는구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홈에 맞추려면 힘도 들고 시간이 걸리니까 급한 성격에 아예 그냥 대충 걸쳐 놓은 채로 쓰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엄마가 요리를 할 때는 냄비가 늘 불안불안하게 가스레인지 위에서 달그락거린다. 그래도 엇비슷하게는 맞추어서인지 다행히 지금까지 조리 중에 냄비가 떨어진 적은 없다.


가스레인지 상판에 나 있는 홈과 그레이트를 맞추려면 천천히 차분하게 돌려 가며 아귀를 맞춰야 한다. 급히 대충 돌리다 보면 의외로 아귀 맞추기가 쉽지 않다. 성격 급한 엄마는 늘 휙휙 서둘러 돌려 버리기에 아귀 맞추기가 어려운 것이다.


아귀가 맞지 않아 가스레인지 위에서 빙빙 겉도는 그레이트를 보면서 인생길 위에 서 있는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네 인생도 내게 꼭 맞는 일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모두 내게 맞는 것을 찾는 여정이다 싶었다. 내게 맞는 사람, 내게 맞는 일, 하다 못해 작은 잡동사니 하나도 내게 맞는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합이 잘 맞을 때 빛을 발한다.


가스레인지 그레이트가 홈과 아귀가 꼭 맞아야 하듯 내게 꼭 맞는 아귀를 찾아야 하는 거다. 맞지 않는 아귀를 만난다면 헛수고뿐인 공회전만 힘들게 계속하게 될지도 모른다. "빙빙 빙빙빙~ 어지러워라. 힘 빠져 못 해 먹겠네." 하고.


다만 어지러울지라도, 힘 빠질지라도 돌리지 않는 것보다는 돌아가는 게 낫다. 가스레인지 그레이트가 홈에 맞지 않은 채 올려져 있더라도 그조차 없으면 아예 냄비조차 올리지 못하듯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존재조차 희미해지리라.


빙빙 돌아가면서 맞춰 보는 거다. 이 짝이 맞으려나 저 짝이 맞으려나. 맞춰 보고 안 맞으면 다시 돌아가며 다른 걸로 맞춰 보면 된다.


가스레인지 그레이트를 맞출 때 급하게 쌩쌩 돌리면 잘 맞기가 어렵고 차근차근 정성 들여 돌릴수록 딱 맞기가 쉽다. 살아가는 것도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급히 먹은 밥일수록 체하기가 쉽고 천천히 정성 들여 갈수록 내게 맞는 길을 찾기가 쉽다.


차근차근 정성 들여 내 인생 아귀도 맞춰 나가리라. 그리하여 합 꼭 맞는 아귀를 만난다면 나도 가스레인지 불꽃처럼 찬란히 타오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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