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거기 있는 당신, 고맙습니다.
내게 짐 싸기는 꽤나 어려운 숙제다.
단 며칠 집을 비우는 짧은 떠남에도 짐을 싸느라 한참을 끙끙거린다.
어떤 이들은 그냥 대충 가면 되지 별달리 짐 쌀게 뭐 있냐며 몇 분만에 짐을 꾸려 훌훌 가볍게 잘만 떠나는데 나는 도통 그 빠르고 가벼운 짐 싸기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부러울 따름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면 짐 같은 거 신경 쓰지 않고 멋스럽게 훌쩍 떠나 버려야 하지 않나. 맘 가는 대로 아무 구속 없이 코트 자락 멋지게 휘날리며 가뿐히 가 버리는 거다. 오! 쿨하여라! 바라 마지않는 희망적 모습이건만 오늘 짐 싸는 내게는 또 먼 나라 얘기가 되고 만다.
떠날 때마다 짐 싸기와 씨름하는 내 영혼은 아무래도 자유롭지 못한 걸까.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나 실제로는 구속 많은 인간으로 살고 있는 현실이다.
혹자는 내게 물을지 모른다. 짐 싸기가 어려울 게 뭐냐고. 많이 가져가 봤자 걸리적거리기만 할 테니 정말 필요한 것 몇 가지만 챙겨 가면 된다고. 문제는 '정말 필요한' 게 왜 그렇게 많은가에 있다. 정말이지 전부 다 필요하다!
그렇다고 정말 다 싸 갈 수는 없으니 전부 다 필요한 것들 중에서 가져갈 것들을 골라내느라 골머리를 썩는다. 게다가 걸리적거리는 건 또 싫으니 최소한의 짐을 싸고 싶은데 필요한 건 많으니 이 모순 속에서 빙빙 도느라 머리에 열이 난다.
오늘도 높은 산이라도 오르듯 낑낑거리며 어렵게 짐 싸기를 한다.
우선, 잠옷이 필요하다. 언젠가 잠옷을 가져가지 않아 불편을 한 번 겪은 후부터는 짐 쌀 때 잠옷부터 먼저 챙긴다. 외출복을 입은 채로 잠자리에 드는 건 매우 불편하다.
다음은 갈아입을 속옷과 양말이다. 갈아입어야 할 날짜 수를 헤아려 떠나는 날만큼에 해당하는 개수를 챙겨 넣는다. 혹시 물에 젖거나 오물이 묻는 등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지 모르니 여분으로 하나씩 더 챙겨야 한다.
속옷과 양말을 다 챙기면 겉옷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2박 3일 일정이지만 가고 오는 데 이틀을 빼면 정식 일정은 딱 하루니 단벌로 버틸까 하다가 그건 아니다 싶어 상의와 하의를 각각 1벌씩 챙겨 넣는다. 이렇게 하면 입고 가는 옷 외에 갈아입을 옷 1세트가 생기는 건데 여기서 추가로 더 챙겨 가 날마다 다른 옷을 입고 싶기도 하다. 갑자기 마구 옷 욕심이 난다. 옷을 더 넣었다가 뺐다가 무한 반복이 시작된다.
칫솔도 필요하다. 집에 가득 쌓여 있는 칫솔을 외지에서 돈 주고 사는 것만큼 아까운 일이 없다.
세면도구 챙기기가 끝나면 이제 화장품이다. 스킨, 로션 등 화장품 챙기기가 끝나면 머리빗, 헤어 드라이기 등 헤어용품, 그리고 핸드폰 충전기... 그다음은...
이렇게 한참 동안 머리 열 내며 어려운 수학 문제 풀 듯 짐 싸기를 한다.
힘겨웠던 짐 싸기 대장정을 끝내며 늘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늘 쓰는 물건들의 소중함을 짐을 싸면서 깨닫는다.
잠시만 곁에 없어도 불편해 바리바리 싸 갈진대 그동안 참 무심히도 대했구나. 늘 그 자리에 있는 걸 마땅히 그래야 하는 양 당연히 여겼구나.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는 것들을 소중히 보듬어 줘야겠다. 애정을 듬뿍 담아 아껴줘야겠구나.' 각성해 본다.
물건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늘 곁을 지켜주는 이들이 가장 소중한데 아이러니하게도 늘 곁에 있어 그 소중함이 자꾸만 희석된다.
늘 거기 있는 당신, 고맙습니다.
늘 거기 있는 당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