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르가모 미술관에서 어느 이탈리아인의 초상을 본 적이 있다. 현실적이고 냉철한 중세시대 중년 남성의 옆모습. 초안 잘못 써가면 언성 한 번 높이지 않고 처절하게 리뷰한 후 클라이언트에겐 완벽한 결과를 내놓을 법한 인상이었다. ‘그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이탈리아인이다’ 하고 감탄했다.
어느 문화의 전형적인 인물은 그 문화의 전성기대로 각인되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탈리아 사람을 생각하면 중세 은행가를 떠올린다. 베르가모에서 본 것이 누구의 초상화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떠올린 이미지는 메디치 가문에 가까웠을 것이다. 메디치라면 예술과 종교를 후원한 르네상스의 대표적 가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들의 본업은 은행이었다. 현대 금융의 기틀을 만든 가문이, 적은 돈의 흐름에도 민감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일가가, 그렇게 예술과 종교를 사랑한다는 로맨틱한 동기로 돈을 썼을까.
권력이 도시국가와 가톨릭 교회에 분산되어 있던 시대에 양측과 원만히 지내는 것은 당연하고, 종교든 정치든 은행가에게 바라는 것은 돈뿐이다. 실제로 메디치는 고국인 피렌체를 지원했고, 교황을 비롯한 가톨릭 권력자들의 자금줄로 유명했다. 종교와 정치는 그 대가로 호칭과 호의를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귀하게 쓸 돈을 메디치는 어떻게 벌었을까. 은행의 본업이라면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대출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중세 교회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금지했다. 성경이 금하는 데다(신명기 제23장 제19절), 준 돈 이상을 받으려는 탐욕이니 이자는 죄요 이자를 받는 자는 죽어도 교회에서 장례도 치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은행이 돈을 어떻게 벌라고.
영리한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든 어떻게든 돈을 벌 방법을 찾아내기 마련이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못 받는다면, 이자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더 많은 돈을 받아내면 된다. 메디치는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이용해 환치기를 했다.
피렌체에서 양털을 팔아 돈을 번 영국 상인이 메디치 은행에 10플로린을 맡긴다. 상인이 런던에 돌아가면 런던 메디치 지사에서 현지 화폐로 5파운드를 받기로 하고, 그 내용을 교환증에 적는다. 상인은 산적 걱정 없이 교환증만 들고 여행하면 된다! 단순한 거래 같지만 현대인이 간과하기 쉬운 변수가 있다. 당시 교통사정상 피렌체에서 런던으로 가는 데만 석 달 가까이 걸린 것이다. 그동안 플로린 가격이 올랐다고 하자. 10플로린을 그대로 들고 갔더라면 런던에서 10파운드로 교환할 수 있었던 상인은 교환증대로 5파운드만 손에 쥘 수밖에 없다. 나머지 5파운드, 그 환율 변동에 따른 차익이 메디치 은행의 수익인 것이다.
만일 환율이 내려가면 메디치 은행은 도리어 손해를 볼 테고, 채무자와 ‘위험’을 분담하는 셈이니 돈벌이가 ‘확정’된 이자와 달리 죄가 아니라 할 수 있다. 그래 봤자 법해석은 권력에 달려 있기 마련이니 이런 국제적 돈장사는 어느 정도 각국의 비호와 각국을 망라하는 교회의 묵인이 있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거대한 제도의 비호를 받을 수 없는 금융가라면 어떨까. 돈의 흐름에는 밝지만 안전하게 장사를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각국에 부동산을 구하거나 국가 정책에 관여할 수도 없다면. 당시 유럽에서 이등시민 취급을 받던 유태인의 처지가 그러했다. 반면 그들은 기독교도가 아니기에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부도덕'한 영업을 할 수는 있었다. 특혜가 아니라 부정적 의미의 치외법권에 놓여 있던 것이다.
그 씁쓸한 처지를 잘 드러내는 인물이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이다.
<베니스의 상인>은 주인공이 승리하는 희극이고, 주인공은 제목대로 베니스의 상인인 안토니오다.
안토니오는 친구에게 구애 자금을 대주고자 평소 경멸하던 대부업자 샤일록으로부터 돈을 빌린다.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담보로 돈을 무이자로 빌려주나, 안토니오는 결국 돈을 못 갚는다. 안토니오가 담보를 내기 싫어 전전긍긍하는 사이 친구의 새신부 포샤가 변호사로 둔갑하여 샤일록을 법정에서 추궁하고, 샤일록에게 '살을 담보로 잡았으니 피는 흘려서 안된다'라고 주장하여 샤일록으로 하여금 담보를 포기하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조금이라도 샤일록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버리면 이 극은 비극이 되어 버린다. 내가 여태 <베니스의 상인>을 즐겁게 보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샤일록이 맺은 계약은 현대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민법상 신체를 재산처럼 거래하고 담보로 잡는 것은 공서양속에 반하는 계약으로 무효이다. 하지만 전쟁이 무시로 터지고 용병이 합법적으로 횡행하던 시대에, 살 1파운드를 담보로 잡는 것이 현대인의 상식만큼 무리였을까(참고로, 1파운드는 약 450g. 마트에서 파는 고추장 한 통 정도다).
포샤의 주장도 합리적이지는 않다. 살을 취하되 피는 흘리지 말라는 것은 땅을 사고팔면서 그 땅을 구성하는 자갈은 제외된다는 주장처럼 이치에 맞지 않다. 게다가 담보를 실행할 수 없다 해서 돈 갚을 의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텐데(일부 무효냐 전부 무효냐 하는 논점은 차치하고), 안토니오는 결론적으로 돈이 생긴 후에도 갚지 않는다.
사실 샤일록이 겪어온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그가 살아 있는 사람의 살을 내놓으라고 매달린 의도의 무시무시함에도 불구하고 관객으로서 마음의 저울이 흔들린다. 그는 합법적으로 돈을 벌면서도 경멸을 당했고, 안토니오는 돈을 빌리는 마당에도 혐오를 숨기지 않았다. 샤일록이 계약에 따라 담보를 실행하려 하자 기독교도들은 사람 살을 어디 쓰려느냐 묻고, 샤일록은 ‘물고기 미끼로라도 쓰겠다'며 내뱉고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독교도 안토니오에게 받은 박해를 토로한다. '너희에게 배운 대로 악을 실행하겠다'는 말에 적어도 나는 설득당할 기분이 들었다.
각국 정부가 대출이자를 조절할 수도 있다는 말 한마디로 경제정책을 조율하는 요즘 시대에, 시간과 물가의 무시무시함 때문에 빌려준 원금만 돌려받으면 채권자가 손해라는 것을 아는 마당에, 이자 자체가 죄라는 발상은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중세가 지난 후, 이자에 대한 시선이 변한 상황을 남용해 터무니없는 이자를 받고 채무자를 죄인 취급했던 시절도 있었기에 현대 사회는 ‘이자는 좋지만 이율은 적당해야 한다’는 타협에 이른 것이다.
사회의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리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주어진 환경에서 돈을 방법을 찾아낸다. 그 환경이 도시에서 도시까지 가는데 석 달이 걸리는 기술적 한계든, 남들이 더러운 낙인을 찍은 직업밖에 택할 수 없는 사회적 상황이든 말이다. 법도 그 환경의 일부를 이룰 뿐, 법으로 사람의 욕망까지 끊어낼 수는 없다.
이자를 금한 시대에 외환으로 돈을 번 메디치 가문이나, 이자를 받는 대금업만 허용하는 사회에서 직업에 충실했던 유대인들이나, 열심히 살기는 오늘날 은행가들과 매한가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어떤 가문은 예술의 수호자가 되고 어떤 민족은 시대의 경멸을 받았던 것은 ‘이자’가 죄냐 아니냐 이상의 갈림길을 내포하고 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신용대출이자에 떨고 적금 이자에 감지덕지한 소시민으로서는 역사책을 통해서나 딜레마를 고민해 볼 뿐이다.
참고자료
"Medici Bank,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accessed July 20, 2021).
"The Merchant of Venice,"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accessed July 20, 2021).
<Medici Money: Banking, Metaphysics and Art in Fifteenth-Century Florence>, by Tim Parks. W.W. Norton & Company/Atlas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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