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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Mar 06. 2020

살아있을 때 편지를 쓰자

유서보다는 편지가 좋지 않을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연이 있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아차 한다. 주변의 누군가가 많이 아프면 두려워진다. 아직 전하지 못한 말이 많은데 그가 떠나거나 내가 떠날까 봐. 세상일은 모르는 거다.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유서를 썼다. 이상하게 쓰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삶에 미련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 크게 미련이 없다. 어느 날 떠나도 그렇게 슬프지는 않을 것 같다.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다가 의문이 들었다. 왜 죽고 나서 마음을 전해야 하지? 왜 극적인 순간에 말해야 할까? 살아있을 때 편지를 쓰자.


부모님께는 얼마 전에 이미 긴 장문의 편지를 썼다. 아빠의 건강이 안 좋아져서 불안해졌을 때다. 꼭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데. 특히 아빠가 우리 아빠라서 정말 정말 좋다는 말을 반드시 하고 싶었다.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담아 편지로 썼다. 이렇게 쉬운 일인데 어릴 때 이후로 편지를 쓴 적이 없다는 사실이 죄송해졌다. 매년 생신마다 편지를 써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설문지 폼을 만들어서 돌렸다. 편지를 받을 주소와 축하받고 싶은 일, 고민, 듣고 싶은 말을 적어 달라고 했다. 답변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친구들의 일상을 알 수 있었다. 요즘 이런 일이 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예전만큼 친구들을 자주 보지 못한다. 만나지 못하는 날들만큼 각자의 삶은 멀어져간다. 친구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친구들은 자기가 가진 것에 비해 자신이 얼마나 멋진지 알지 못한다. 너는 모르지 네가 얼마나 멋있는지. 그냥 멋지다고 말하면 믿지 않을 테니 네가 왜 멋진지 알려주지 각오해!


편지를 쓰면서 친구들을 더 사랑하게 됐다. 고지서만 꽂혀 있던 차가운 우편함에 빼꼼히 얼굴을 내민 편지를 상상했다. 편지를 읽는 1분이라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할 일을 미루지 말자는 생각은 참 많이 하는데 표현도 미루면 안 되겠다. 사랑해.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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