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그치던 책 읽기가, 나누고 발전시키는 책 읽기가 되기까지
부끄럽게도 남성 패션잡지나 브랜드를 소개하는 잡지 정도를 제외하고는, 군대를 전역하고 한 3년간은 읽은 책을 손에 꼽을 수 있었다. 핑계 같지만 독서라는 것이 그렇다. 책을 읽겠노라 마음먹은 적은 많아도, 실천하는 것은 어려웠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독서라는 행위는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면 좋은 것'에 불과해지기 마련이고 그러니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마음속 밀린 채무처럼 쌓여있던 '책 읽기'를, 작년 6월부터 다시 시작했다. 독서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 그 계기였고 그렇게 9개월이 지났다. 더 오랜 기간 독서모임을 경험한 사람들도 많을 테니 이런 글을 쓰는 게 조금은 부끄럽지만, 그간 달라진 여러 가지를 정리해보고 싶어 이 글을 쓴다.
내가 속해있는 독서모임에서는 한 달에 한 권을 선정해, 같이 읽고 독후감을 쓰고 모여서 토론을 한다. 책을 읽지 않거나 읽더라도 독후감을 쓰지 않으면 토론에 참여할 수가 없고, 지불한 회비를 낭비하는 셈이다. 그러니 돈이 아까워서라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하는 것. 그렇게 나는 한 달에 최소 한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모임과 회비에 의해 강제되는 독서도 의미가 있지만, 독서모임을 두세 달 지속하다 보니 또 다른 종류의 자발적 즐거움이 더해진다. 홀로 하는 독서를 통해 나와 글쓴이의 개인적인 관계 맺음에서 오는 즐거움을 느꼈다면, 독서모임과 함께 하는 독서를 통해서는 같은 글을 읽은 다른 독서모임 친구들이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 있는 것. 같은 책을 읽고도 다른 느낌 다른 감상 다른 의견을 가져온 사람들과 때론 의견을 쌓아가기도 하고 때론 상대방에 의견에 반대하기도 하면서, 책을 읽고 난 이후의 경험이 조금 더 충만해지고 즐거워지는 경험을 한다. 나는 두세 달째 독서모임을 하는 시점에서 여럿이 나누는 후자의 즐거움에 눈을 뜨고 독서에 다시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고, 이렇게 뚜벅뚜벅 독서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하자 전자의 즐거움 또한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글쓴이의 세계관 속으로 빠져들면서 또 가끔은 같은 책을 읽은 누군가와 감상을 나눌 경험을 고대하면서, 지금은 한 달에 최소 서너 권의 책을 자발적으로 읽게 되었다.
독서모임을 시작하면서 달라진 두번째는 책을 읽는 방법. 과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고 덮어두는 방식의 단순한 독서를 했다. 별도로 감상을 남긴다거나, 곱씹는 행위가 없이 읽고 잊어버리는 - 남는 건 알아서 남겠지 식의 독서. 그러나, 함께 독후감을 쓰고 감상과 생각을 나누는 행위를 염두에 둔 독서법은 조금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책을 더 곱씹어 읽고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재미있고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적어두거나 읽으며 사진을 찍어둔다. 그리고 나중에 책의 맥락과 동떨어져 되새겨본다. 구절이나 챕터별로 코멘트를 달기도 한다. 토론할 때나 독후감 글 속에 인용하고 싶어서도 있지만, 조금 더 잘 기억하고 감상을 잘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이기도 하다. 모임을 하고 뒤풀이를 할 때마다 사람들이 정말 다양한 각자만의 방식으로 책을 소비하는구나 생각한다. 모임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독서법을 엿볼 수 있는 것도 묘미라면 묘미.
한 달에 한 번 독후감을 써내야 한다는 것은 대학교 때도 상상치 못했던 일인데! 의무적으로 독후감을 써내고, 다른 독후감들을 읽다 보니 글을 쓰는데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주기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온전히 나만의 언어로 정리한다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이 생긴다. 또한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생각 다른 언어로 써 내려간 사람들의 독후감을 보며 경쟁심이 들기도 한다. 더 깊이 고민하고 싶고, 더 잘 쓰고 싶다는. 그렇게 긴 글을 써 내려가는 데에 익숙해지고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아마 글을 제대로 써보겠다며 이 브런치를 개설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어디 요즘 같은 세상에,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만나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술 마시는 친구들이 흔한가?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그런 친구들을 얻을 수 있었다. 비록 나이도 하는 일도 배경도 제각기 다르지만, 우리는 이번 달에 같은 책을 읽었으니까! 하며 함께 만나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는. 그리고 함께 읽은 책들이 겹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공통의 화제도 풍부해지고 또 다양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