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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헌 Sep 28. 2016

정리하는 삶, 현재 진행형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이후의 삶

지난 연말연초에 걸쳐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과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었는데, 이 책들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이 꽤나 큰 것 같다. '세상에 이런 일이'와 같은 TV 프로그램에는 가끔 잡동사니를 주워다가 집안을 가득 채우는 이들이 나온다. 이른바 '저장강박증'인 셈인데, 위에 적었던 두 권의 책을 열심히 읽고 내가 속해있는 공간들을 돌이켜보면서, 비록 세상을 놀라게 할 정도는 아니지만 나 역시 아주 약한 저장강박증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아주 열심히 고쳐나가고 있는 중이다.


17년 동안이나 쓰레기를 주워 쌓은 쓰레기집 / SBS 세상에 이런 일이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사실은 집안 내력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함께 삼대가 한 집에 살던 어릴 적, 할아버지는 산책만 나가면 신기하게도 그럭저럭 쓸만한 물건들을 주워다 오시곤 했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가 바람이 빠져 버린듯한 축구공이며 농구공, 누군가가 산에서 흘린 등산용 지팡이, 적당히 손보면 멀쩡해질 우산들이 집에 쌓여가서 난감해하던 엄마의 표정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엄마도 이런 부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쓰지도 않을 종이가방이며 비닐봉지들이 어찌나 예쁘게 차곡차곡 접혀, 쓰일 날만을 기다리며 찬장 한 켠에 고이 모셔져 있었는지 모른다. 애초에 나 역시 저장 강박에 가까웠고 고향집에 관심을 점점 덜 주게 되어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 추석에 집에 가보니 몰랐던 새 꽉꽉 들어찬 냉장고만 세 대다. 이제 아빠 엄마 둘이서만 사는 집에 무슨 먹을 것이 그리 많냐며, 빨리 냉장고도 내놓고 잡동사니들도 버리자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남자 주인공 승민(엄태웅 분)이 엄마에게 아파트로 이사 가자며 잔소리를 하는 장면에서, 엄마는 승민의 짝퉁 게스 티셔츠를 입고 있고 냉장고 문을 열자 언제나처럼 냉장고를 그득그득 채우던 - 과연 다 먹을 수 있을지나 의심되는 음식들이 와르르 떨어져 버린다. 그때의 승민이 느꼈을 기분이 이런 걸까. 이런 말을 늘어놓는 스스로가 웃기기도 하다.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정리를 잘 하고 잘 버렸다고.


문을 열면 꼭꼭 눌러 담은 음식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어머니의 냉장고 / 영화 <건축학개론>


어려운 시기에 시골에서 나고 자라 좋은 말로 근검절약이 몸에 밴 부모님 덕인지 탓인지, 나 역시도 손에 들어온 물건을 버리는 데에 능숙치가 못했다. 시간이 날 때면 책과 잡지를 사 읽었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는 옷과 신발과 가방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다녀오면 입장 티켓은 물론이고 각종 예뻐 보이는 리플렛과 엽서들과 기념품들까지. 그렇게 사는 공간들이 잡동사니로 속속 들어차게 된 것. 그리하여 책을 읽고나서 그제야 주변을 돌아보니, 워낙에 사모으고 가져온 것들이 많아서 난장판이 된 방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싶으면 같은 색깔 같은 사이즈의 티셔츠도 여러 장, 같은 디자인 같은 사이즈의 신발을 색깔만 달리 하여 세 켤레, 뭐 이런 식인 데다가 잡지는 매월 한두 권씩 사모은 것을 쌓아놓으니 웬만한 사람 키에 댈 높이였고. 군 입대 전에 입던 티셔츠가 서랍 속 층층이 접힌 티셔츠로 이루어진 지층 사이에서 고대 화석인양 발견되고 나니 그래, 한숨이 절로 나올만 하다.


앞서 쓴 지층이라는 표현이 참 적합하겠다. 시간의 흐름 속에 퇴적물들이 차곡차곡 쌓여만 가고, 그 사이에서 어떤 것들은 빛나는 시기를 지나거나 혹은 놓쳐버려서 퇴적물 사이에서 질식한 화석이 되어버리고 만다. 수년 전에 예쁘게 입었어야 할 옷들인데 너무 많은 옷들 사이에서 제대로 입어보지도 못하고 빛 바랜 채로 발견되기도, 심지어 대학교 새내기때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 저장해둔 즐겨찾기 URL들이나 파일들을 이제야 발견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화석의 발견인 셈. 2008년의 최신 정보를 2016년에 와서야 어디다가 쓰겠나. 무엇을 하느냐 보다 무엇을 안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무엇을 사고 소유하느냐 만큼이나 무엇을 버리는지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영혼까지 박박 긁어모은 총량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의 비중이 나를 조금 더 잘 설명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


그래서 요즘은 버리고 지우는 게 일상이다. 책상 앞에 앉으면 뭐 버릴 것이 없나 찾고, 또 노트북을 펼치면 수백개도 넘게 쌓여있던 즐겨찾기 URL들과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았고 열어볼 일 없는 파일들을 지운다. 스마트폰을 들면 말이 없는지 한참된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하나둘씩 나가고 또 나간다. 버리자니 추억과 기억들이 범벅이라 아쉬웠던 각종 티켓들과 리플렛들은 사진을 찍어 혼자 보는 블로그에 올려두고 버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버릴때마다 망설이기도 오래 망설이고 참 아쉬워도 했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속도가 붙었다. 그렇게 버리고 지울수록, 버리지 않고 지우지 않은 내가 또렷해진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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