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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Sep 18. 2016

'별과 시'를 고집했던 이유

삶의 헛헛한 빈틈이 생길 때마다 떠올렸으면 좋겠다.

올초에 친구들과 반지를 하나 맞췄다. 어떻게 하면 유치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개성을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겉에는 각자가 원하는 문구를, 안에는 하나의 구절을 새기기로 했다. 안에 새길 문구로 윤동주 시인의 시집 제목인 '하늘과/바람과/별과 시'가 뽑혔는데 문제는 누가 어떤 부분을 가져가냐였다. 나와 다른 한 친구가 '별과 시'를 서로 탐내 하다가 나의 고집스럽고 억지스러운 주장에 마음 착한 친구가 양보해주었다. (날개라는 뜻을 가진 네 이름엔 하늘이 더 어울린다며. 그래도 맹세코 그건 진심이었다.)


사실 그게 뭐 큰 차이이고 대수일까. 하늘이든 별이든.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에 대한 애착을 쉽게 버릴 수 없었다. 내겐 아버지에게도 소년 시절의 감성이 살아있음을 알게 해 준 것이 시였고, 학창 시절 지끈거리는 머리를 식혀주던 것도 시였고, 사람과 글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 준 것도 시였다. 좋아하던 이와 가장 소중했던 추억을 꼽으라면 자정이 넘는 시간 메신저를 통해 서로에게 시를 보내주던 것을 꼽는다. 


나는 학창시절 유별나게도 고전시가를 좋아했다. 몇 백 년이 흘러도, 살아온 환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유할 수 있는 감정선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동짓달 기나긴 밤 허리를 베어내어 그리운 님 오실 때 펼치고 싶다던 황진이의 시조를 읽을 때면 괜히 내가 부끄럽고 설레고 그리움을 느꼈다. 물론 내가 시를 쓴 사람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생면부지인 누군가의 감정을, 글로만 접한 이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일 수 있단 건 마법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이별 없는 세대'에선 이런 구절이 나온다.

너는 인간이다. 네 두뇌는 기린처럼 외롭게 끝없이 긴 목위쪽 어느 곳에 붙어 있다.
그리고 네 마음을 속속들이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래 알고 지낸 이들도, 내 가족들도 어딘가 외롭게 붙어있을 내 마음을 알아주기란 힘든 일이다. 인간이기에. 그러나 시는 알아 달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준다. 읽는 순간 나의 언어가 되고 나의 감정이 되어버리니까.


그러나 취업이며 졸업이며 밥벌이 등을 핑계로 잠시 시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시를 잊은 그대에게'의 저자이신 정재찬 교수님의 강의를 듣게 됐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기억을 어렴풋이 되살려보자면, 시는 살아가는 데 있어 돈을 벌어다주지도 명예를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나 삶의 헛헛한 빈틈을 채우는 존재라고 하셨다. 그러니 시를 가까이하라고. 그제야 내가 시를 좋아했던 이유가 생각났다는 게 부끄러웠으나 먼지 가득한 오래된 일기장을 발견한 것마냥 반갑기도 했다. 다시는 시를 잊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어, 개인적으로 한 가지 다짐했다. 네 마음을 속속들이 들어주는 이가 필요할 때에 반지 속을 한번 들여보자고. 굳이 '별과 시'를 고집부렸던 이유를 한 번 떠올려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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