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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헌 Nov 19. 2016

퇴사 반대를 반대한다

그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선택일 뿐입니다

1.


요즘 들어 '퇴사'와 관련된 글들도 참 많이 보이고, 또 퇴사학교를 비롯한 다양한 퇴사 전후 교육 프로그램도 나오는 현실이다. 워낙에 이러한 이야기들이 많이 노출되다보니 이제는 퇴사를 조장하는 분위기에 대한 반대 의견들도 속속 보인다. 높은 연봉과 복지를 제공하는 대기업에 들어간 사람들마저도 얼마 되지 않아 퇴사를 논하는 것이, 어떤 시선에서는 참 배부른 소리이자 나이브한 불만의 결과로 보이나보다.


실제로 내로라하는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퇴사를 하거나, 퇴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주변에도 꽤나 많다. 과연 내 주변의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이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그저 나이브한 불만의 결과일뿐일까?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퇴사자들의 선택이 매우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고 느껴진다. 퇴사를 고민하는 이들이나 실제로 실행하는 이들은, 오히려 스스로에 대해서 또 본인의 미래의 커리어 패스에 대해서 깊이 고민한 이들이었다. 고민과 노력의 끝에 좁디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여, 기대를 지니고 입사한 이들이 더 큰 고민을 가지고 퇴사를 하게 되는 실정인 것. 그 원인을 개개인에게서 찾는 것은 결코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다.


꿈을 찾는 어른들의 학교 '퇴사학교' 페이스북 페이지 커버 이미지



2.


1년 내 퇴사자의 퇴직사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조직 및 직무실패(49.1%)였단다. 사실 과거에는, 원치 않는 사업부나 부서에 배치를 받더라도, 혹은 원하는 곳에 배치받았으나 알고보니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더래도, 그게 크나큰 문제는 아니었다.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으며, 시간은 넉넉했고, 고용은 안정적이었으니까. 수년을 일하며 기다리다 보면 재배치의 기회가 오게 마련이니까.


그러나 요즘의 사회초년생들이, 신입사원들이 처한 환경은 꽤나 다르다. 고용은 불안정하고 채용의 문턱은 너무나 좁디좁아 경쟁이 치열하다. 그렇게 꾸역꾸역 어렵게 들어간 회사는 시시때때로 희망퇴직, 구조조정, 매각을 실시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 난세에 믿을 놈이라곤 오직 하나 자기 자신의 능력밖에 없는 셈인데, 원치 않는 일을 수년씩이나 해가며 기회를 기다릴만한 여유가 과연 우리에게 있는가? 누구보다 빠르게 전문성을 쌓고프고, 또 쌓아야만 생존해낼 수 있는 우리네 젊은이들에게 그럴만한 여유는 없지 싶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라는 구절이 있다. 과연 그만큼의 무게감으로, 귀중함으로 하나하나의 일생을 대하고 있었던가. 지원자들에 대해 알아가는 만큼, 그들이 하게 될 직무에 대해 알려주고 또 그리 배치했었던가 하는 궁금증이 든다.



3.


그럴 거 다 알고 입사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1)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치열해지는 경쟁과, 2) 반대로 해를 거듭할수록 좁아지는 취업의 문 사이에서 조급해지는 마음과, 3) 그런 와중에 정확한 업무범위를 설명도 않은 채 '기획 직무'이니 '영업/마케팅'이니 '공통 부문'이니, 또 때로는 '본사 및 지역'이니 말장난치며 커다란 묶음으로 뽑아다 놓는 채용 프로세스의 합작품일 뿐이다. 최악의 케이스를 미처 상상해보지 않고 입사한 신입사원의 과실이 0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뭘 할 수 있었겠나. 좁디 좁은 취업문을 뚫고 합격한 회사들 중 그나마 가장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회사를 꼽아 입사했을 사람들이다. 채용이라는 과정도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일진대, 신입사원은 그리하여 내가 어떤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할지 전혀 모르는 채로 기대감 속에서 확률에 그저 몸을 맡겨야 하는 것이다. 이 와중에서 배신아닌 배신을 당하고 퇴사를 결심하는 일부에게, 인생 고민이 부족했다는 이야기가 조금은 가혹하게 들린다. 정확한 직무 소개와 함께, 정확히 소요가 있는 포지션에만 채용공고를 내어놓는 외국계 기업들에 입사한 경우나, 입사와 동시에 그리던 커리어 패스와 부합하는 직무에 배치받는 극소수의 운 좋은 케이스라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기회가 결코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인 것이다.



4.


선택의 힘은 강하다.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노오력의 힘을 압도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선택의 기점이 왔을때 옳은 선택을 몇 번 해내는 것이, 구린 선택을 해놓고는 앉은 자리에서 노력을 기울이는 것 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욕심많고 성장하고픈 우리네 젊은이들에게 퇴사는 오히려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퇴사에 대한 비판적 담론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과연 이러한 현실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비판을 쏟아내는지 매우 의문이 든다. 사실 이렇게 길게 적을 것도 없이, 남의 무거운 선택에 대해 그렇게 쉽게 툭툭 훈수질을 하는 것 자체가 별로고, 그렇게 훈수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자세가 참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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