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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헌 Nov 19. 2016

거리에 나가는 것은 즐거운 일

부담가질 필요 없이, 거창한 사명감 대신 즐거움 찾아 재미 찾아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폭력시위 비폭력시위 어쩌고 저쩌며 티격거리는 것도, 또 와중에 시위에 나간 내 자신의 아름다움에 반해버린 듯한 나르시즘들도, 우와 내 주변에 이렇게 많았나 싶은 정치평론가들도 다 재밌고 낄낄거리며 구경해줄만하다. 사실 투 머치 나르시즘은 쫌 별로이긴 하다. 백만명이다. 투표는 했는지 안했는지 아니 투표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친구들까지 거리로 나왔다. 이쯤 되면 그들마저 이 11월 쌀쌀한 늦가을에 거리로 나온 것이 더 중요한거다. 다시 한 번, 백만명이다. 그 수에 걸맞는 집회의 방식을, 또 그 수를 어떻게 유지하고 늘리며 이용해먹을지 고민하는게 영리하지 않을까.


삼천포로 빠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냥 지난 토요일의 광화문 광장은 위에 열거한 뽕같은 것들 다 빼고도 아주아주 즐겁고 재밌었다. 디제이트럭에서 EDM틀고 레게틀어주면 어깨 덩실거리다가, 다시 만난 세계 촛불 하나 떼창하고. 와중에 깨알같이 으어어 즐기는게 이기는겁니다 우리는 즐긴다 박근혜는 못 즐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겼다 으어어 하면서 아재 DJ 멘트 나와주시면 그냥 웃음보와 열광의 장이었다. 아빠랑 대여섯살 아들 둘이랑 디제잉에 맞춰서 춤추는거 본적있냐? 나는 엊그제 봤단다.  



와중에 양키캔들 라지 자로 들고 다니며 마음의 안정과 힐링을 제공해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배고플때면 귀신같이 위치선정한 먹거리 노점도 있다. 이쯤되면 락페가 따로 없다. 누가 그러던데, 하야 서울 페스티발이라고. 서브 스테이지에서 춤추다가, 돗자리 깔고 촛불 쬐며 과자 까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잠깐 앉아서 구호 외치고. 집에 갈라치는데 갑자기 헤드라이너 어린 왕자 이승환 등장해서, 우와악 하면서 다시 무대 스크린 근처로 후다닥 뛰어가 노래 따라부르고. 광화문 광장 장악잼 꿀잼.


별 일이 없다면 이번주 토요일에도 집회에 가지싶다. 엊그제 나섰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도, 그저 투표에 그치지 않고 또 SNS 글질에 그치지 않고, 광장으로 나가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의사표명을 하련다. 하지만 그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크게, 가볍고 즐거운 마음이 있다. 이를테면, 다가오는 이번 토요일에도 디제이트럭 가야지, 가방 안들고 빈손으로 가야지, 엊그제는 너무 배부른 채로 갔지만 이번에는 길거리에서 오뎅 떡볶이 다 사먹어야지! 요번엔 어떤 미친 코스프레 깨알같은 디스가 등장할라나, 요런 생각에 더 설렌다니까. 어쩌면 역사 교과서에 점으로나마 남을 수 있겠다는 의미부여마저도 재미질테다. 집회가 끝나고 상수동 뒷골목 심야식당에 앉아 라멘 후루룩거리고 있는데, 사장님이 들어와서는 광화문 광장 썰을 알바들한테 풀어줄 때 혼자서 속으로 얼마나 낄낄거렸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아직 광장에 나오지 않은 사람이걸랑, 거창함 따위 접어두고 나서봐도 좋겠다. 존나 재밌다굿.





*11월 12일 광화문 광장 촛불 집회에 다녀와서, 11월 14일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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