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집을, 순례하다>를 읽고 쓰다
나카무라 요시후미라는 일본인 건축가가 20세기 건축의 거장 여덟 명이 직접 지은 명작 주택 아홉 곳을 방문하여, 그들의 집이 담고 있는 철학과 이야기를 묶어낸 책이다. 건축가는 여덟 명인데 주택은 아홉 곳인 이유는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주택이 두 곳 소개되기 때문. 그렇게 유럽과 미국 곳곳을 넘나들며 여러 건축물들을 방문하여 그 뒷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또 스케치와 관찰일지를 정리해내었다. 거장들의 건축물을 방문하고 관찰하는 여행이라니, 저자의 기획력과 실행력이 참 부럽고 멋졌다.
사실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택들이 한국의 주택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어서, 읽을수록 몰입이 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레만 호수를 보기 위해 멋지게 뚫어놓은 전망창, 깊은 숲 속에서 흐르는 계곡물과 어우러진 낙수장, 뭐 이런 유유자적한 이야기들을 오피스텔 원룸에 앉아 뒤적거리자니 갈수록 딴 세상 얘기 같은 거다. 이 책 속에는 내가 살 수 있는 집도 내가 살고 싶은 집도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아무리 많은 이들이 걸작이라 칭송해대는 주택일지라도 다 부질없구나, 우리네 삶의 방식, 내 삶의 방식에 어울리는 방 한 칸이 결국 더 좋은 집이고 건축이겠구나, 뭐 이런 생각들을 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르 코르뷔지에의 '작은 별장 Le cabanon'은 그런 의미에서 그나마 재미나다. 책에 소개된 다른 주택들과는 달리 건축가 본인의 말년을 위해 지은 4평짜리 작은 별장. 앞서 소개된 주택들보다 훨씬 더 정감가고 현실적이며, '집은 거주하기 위한 기계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은 건축가 답게 말년의 본인에게 필요한 것들만을 남기고는 모두 없애버렸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건축이라는 일은 참 어려운 일 같다. 자연환경이며 기후며 주변 건축물을 포함한 주변 환경과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건축주를 설득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 필요할 테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히 아름다운 작품으로 그치지 않고 후대에도 길이길이 성공적인 건축물로 평가받으려면, 그 집에 사는 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관찰력과 상상력이 필수겠다. 언젠가 내가 살 집 한 채 정도는 짓고 싶은 소망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있자니 그 또한 어려운 일일 것 같으다. 역시 이래서 에이전시보다는 광고주 해야 하고, 건축가보다는 건축주 해야 하는 건가 봐 흑흑. 그렇다면 우선 나는 돈을 참 많이 벌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