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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헌 Jan 01. 2018

여행 도중에 앞니가 뚝 부러지다니

2017년 회고하기 - 사건사고 편




1. 앞니가 부러지다


2017년의 여러 사건사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3월의 다낭 여행 중 앞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던 기억일 테다.


3박 4일의 여행 일정 가운데 둘째 날 오후쯤이었다. 바다에서 파도와 싸우며 서핑을 하고 돌아와 피곤했지만, 오전보다 더 화창해진 날씨를 보고는 아쉬운 마음에 이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렇게 맥주를 또 한 잔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리조트의 야외 수영장 물에 뛰어들었다.


아아, 여기서부터가 사고의 발단이었다. 여자 친구와 티격태격 물놀이를 하다가 잠영 솜씨를 보여주겠노라며 물안경도 없이 머리부터 물속으로 입수했는데, 몇 미터 채 못 가서는 내 얼굴이 - 정확히 입부터 - 수영장 바닥과 쿵 닿아버린 것이다. 아뿔싸. 수영장 바닥과 강하게 입을 맞추고는 놀라 벌떡 일어나니, 극심한 통증과 함께 입술에서 피가 주륵 흘렀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입안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딱딱한 알갱이, 그 녀석의 정체는 바로 뚝 부러져버린 내 윗 앞니였던 것이다.




택시 뒷좌석에 붙어있던 종합병원 연락처 @ 다낭 택시




설명하기도 지난한 우여곡절의 끝에, 택시를 타고 다낭 종합병원 응급실에 가서 손짓 발짓해가며 겨우겨우 간단한 응급처치만 받았다. 부러진 이는 다시 붙일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윗 앞니 하나의 절반이 휑하니 빈 채로 남은 휴가를 보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우울한 생각이 들어 힘들었지만, 어쨌건 나름 베트남 쌀국수도 코코넛 아이스 라떼도 해산물 BBQ도 곧잘 먹어댔다. 다만 무서워서 수영장엔 더 이상 못 들어가긴 했다.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놀라고 당황했던 사고의 순간, 윗 앞니가 버텨주어야 하는 공간이 비어버려 윗입술이 축 처지고 말하는 게 영 어색하던 시간들, 입으로 숨을 들이쉴 때면 공기가 신경을 자극해 찌릿찌릿 시려오던 우울하고도 거슬리는 마음. 그런 와중에도 그나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고 현명하게 또 세심하게 곁에서 나를 챙겨주었던 여자 친구 덕이었지 싶다. (이 글을 통해 다시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때가 아마도 강냉이 파손 1분전 @ 멜리아 다낭 리조트




2. 울적하고 지난했던 치료의 시간


베트남에서의 즐거운 휴가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나는 다시금 초조하고 울적해지기 시작했다. 라미네이트로 해결되면 좋으련만, 신경치료를 해야 하고 크라운을 씌우게 되면 어떡하지? 아예 뽑고 임플란트를 하게 된다면? 돈은 얼마나 들까? 이런 걱정들을 하다 보니, 물안경을 안 챙겼던 나, 바보같이 맥주 마시고 알딸딸한 와중에 첨벙 뛰어들었던 나, 심지어 무슨 배짱인지 여행자 보험 하나 들지 않았던 나를 자책하게도 되었다. 한국행 비행기가 일상에 가까워지는 만큼, 없었던 일마냥 모른 척했던 사고사실과 그 치료 걱정이 성큼성큼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국에 도착한 건 일요일 밤 즈음이었다. 집에 돌아와 짐을 풀고 잠을 청하려니 도저히 잠이 안 와서, 부러진 앞니 치료법을 찾아보았다. 세상에나 앞니가 부러진 사람이 정말 많았구나 싶으면서도, 이런저런 앞니 파절 치료 사진들을 내 부러진 앞니의 모양새와 비교해보며 현실을 직시하려니 너무나 기분이 안 좋았다.



‘앞니 파절’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했더니



출근해 복귀 인사를 드리려니 텅 비어버린 앞니를 숨길 길이 없다.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조언과 구경 방문과 어쩔 수 없이 터져나오는 웃음을 (네네, 영구 읎다!) 뒤로하고 일찍 퇴근해 치과에 갔더니, 치과 의사 선생님이 혀를 끌끌 차신다. 조금만 덜 부러졌으면 라미네이트로 해결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신경 치료를 하고 크라운을 씌워야 하겠다고. 사랑니 발치 외에는 치과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던지라 생각보다 높은 비용과 긴긴 치료 기간에 또 한 번 놀라버렸다. 하루면 될 줄 알고 털레털레 갔는데 신경 치료에 며칠, 치아 모양 본뜨고 기다리는 데에 또 며칠, 뭐 이래 버리니 어휴. 치과를 찾을 때마다, 엉성해 보이는 임시 치아를 거울로 볼 때마다, 따뜻한 차를 마실 때면 안팎의 온도 차이 때문에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에, 나는 계속 울적하고 약해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합리화의 동물


지난한 치료를 마치고 귀국한 지 한 3주가 지나고 드디어, ‘다이아몬드만큼 강도가 높고 정밀한 제작이 가능하며 육안으로 보기에 진짜 치아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지르코니아 크라운을 장착했다. 한동안은 여전히 울적하게 쳐져있었다. 20대의 많지 않은 나이에 벌써 앞니 크라운이라니 혹여 치열이 우르르 망가져버리면 어쩌나, 크라운 씌워둔 아래의 신경 치료한 치아가 썩어서 결국 뽑고 임플란트를 하게 되면 어쩌나, 등의 걱정으로 가득 찼다. 죽을 때까지 잘 간수하며 사용해야 마땅한 치아의 한 부분이 부러져버렸고 앞으로도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도. 있을 때 잘 할걸.


하지만 이미 일어난 사건을 빠르게 잊고 덮고 넘어가고자, 망각과 자기합리화를 해내고야 마는 게 인간이라. 나 역시 지금까지도(!) 온갖 생각들을 동원해 행복 회로를 풀가동하며 기분을 달래고 있다. 뭐 이런 내용들로 혼자 해보는 합리화.


크게 다칠 뻔했는데 앞니 하나 반토막 나고 만 게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나 다행이니 그저 인생 수업료를 미리 낸 셈 치고 앞으로는 조심히 살아야지.
알고 보니 주변에 나처럼 앞니며 어금니며 크라운을 씌웠다는 사람도 참 많더라, 많이들 겪는 일일 뿐이었다.
부러진 앞니는 마침 원래 툭 튀어나와 있었는데, 크라운을 씌우는 과정에서 예쁘게 맞춰주셨으니 다행이다. 




사람 일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어른들 뻔한 말씀에 투덜거린 적도 많았는데, 이럴 때 보면 정말 마음먹기에 달린 것도 같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던데,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다행인 일이 된 것도 같다. 양치질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고 좋다는 칫솔도 하나둘씩 사보게 되었다. 안 하던 치실 사용도 꾸준히 하고 있다.


비단 부러진 앞니와 나머지 치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1) 수영장 사고의 경험을 계기로, 바보 같은 짓, 객기 넘치는 일탈을 저지르기 전에는 한번 더 생각하고 멈칫해보게 되었다. 순간의 혈기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한 이후여서다. 수영장 바닥과 앞니가 부딪히던 순간의 기억은 나를 본능적으로 뜯어말리는 안전장치처럼 작동하게 되었다. 2) 나를 놀라고 당황시키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사고도, 마음먹기에 따라 새롭게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배움을 얻었다. 동전에는 양면이 있고 어둠이 있으면 빛도 있고 그런 거였다. 3) 그리고 작게나마 상실의 고통을 겪으면서, 앞으로는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더 조심하고 더 잘 보살펴야지 하고 다짐했다. 다시 한번,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정말로.




마치며


그래서 2017년 한 해를 돌이켜보자니 다낭에서의 이 사고를 빼놓을 수가 없었다. 20대의 끝자락인 스물아홉 살의 봄을 앞니가 툭 부러진 영구마냥 시작했으니 말이다. 울적한 경험이었고 스스로를 많이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 좋은 계기이기도 했다. 덕분에 앞으로의 나는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이 될 테고, 더 낙천적인 사람도 될 수 있을 테고, 가진 것들을 더 소중히 다루는 사람이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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