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웨어 브랜드 행사로 맨발 달리기에 참여한 적이 있다. 장소는 용산가족공원. 서울에 살면서도 이렇게 훌륭한 공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공원 크기에 비해 주차장은 아담했지만 피크닉 하러 오기에 안성맞춤의 공원이었다. 가족공원이라 이름 불려서인지 주말 오후시간 가족단위로 피크닉 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한국인보다 외국인의 비율이 높아 보이는 이 공원은 아마도 그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난 듯했다.
맨발 하이킹은 요즘 워낙 유행인지라 산에 갔을 때 어르신들 따라서 나도 무거운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흙을 밟으며 걸어본 적은 있지만 맨발 달리기는 사실 처음이었다. 자연이 좋은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던데(실제로 호주에 갔을 때 맨발로 다니는 아이를 보지는 못했지만;;) 사실 맨발로 달린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나였지만 그 시절에도 맨발로 과수원밭을 뛰어다닌 기억은 없다. 그래서인지 공원에서의 맨발 달리기는 내심 기대되었다. 혼자서는 쉽게 하기 어려운 것을 프로그램에 참여해 함께할 때는 그 행위를 하는 것에 나름의 명분이 생기니까.
맨발 달리기에 참여한다고 하니 주위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벌레나 세균의 감염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다. 쯔쯔가무시병과 같은 무시무시한 병을 이야기하며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벌레에 물리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그런 위험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할 뿐 겁이 나지는 않았다. 그렇게 위험한 활동을 대기업에서 기획할 리 없다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행사 당일, 공원에 도착해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프로그램 전에 활동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때 벌레 등 감염에 대한 우려스러운 질문도 있었는데, 진행자분은 그런 질문이 나올지 알고 있었다는 듯 대답을 해 주셨다.
"사람의 발은 생각보다 두꺼운 가죽으로 되어 있어요. 생각보다 세균 감염이 쉽게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수차례 진행했지만 맨발 달리기로 문제가 된 적은 없었어요. 너무 겁먹지 말고 차근히 저와 함께 시작해 볼게요."
걱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답변을 들으니 한결 안심이 되었다. 우리가 운동할 장소는 대략 지름 10미터 정도의 넓은 공간이었다. 풀이 짧게 자라나고 있어 맨발로 서도 따갑지 않은 폭신폭신한 장소였다. 30명 정도의 인원이 진행자분의 안내에 따라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발을 신은 상태로 몸을 풀어 주었고, 10분 정도의 워밍업을 마친 뒤 한쪽에 신발과 양말을 멋어두고 맨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양말을 벗고 땅을 딛자마자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느낌이 들었다. 갑갑한 신발에서 벗어나 맨발로 자연과 마주하다니!
맨발 워밍업까지 마치고 자유롭게 원을 그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규칙은 없었다. 걷거나 뛰거나 가로지르거나 시계방향으로 돌거나 그러다가 반시계방향으로 돌기도 하면서. 참가자들은 자유롭게 맨달 달리기를 즐겼다. 정말 자유로운 순간이었다. 20여분 동안 맨발 달리기를 한 뒤, 마무리 운동을 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난 후기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나의 마음도 들여다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해방의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맨발 달리기는 나에게 해방이었다.
맨발로 달리며 땅과 내가 어떠한 장애물 없이 마주하니 자연을 오롯이 느끼는 기분이었다. 집에서 마룻바닥을 맨발로 돌아다니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인 것이 방에서는 평평한 바닥을 발바닥으로 닿는 부분을 짚어 나가는 것이라면, 자연에서의 맨발 걷기는 나의 발 모양대로 발 뒤꿈치부터 발가락 마디마디까지 나를 포근하게 감싸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또 언제 할 수 있을까..?
기록에 의존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오로지 내 몸의 감각을 느끼며 달렸던 이날의 기억이 앞으로의 달리기에 신비로운 경험으로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