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이 되면 김장을 한다. 예전처럼 김치를 많이 먹지는 않지만 한국인의 밥상에 김치는 필수이고, 나도 레오도 김치를 좋아하기 때문에 매년 김장을 가족 연례행사로 하고 있다. 특히 나는 시댁 김치를 더 좋아하는 편이라 시댁 김장 행사에 가급적 참여하려고 해 왔다. 직장에 다닐 때는 이래저래 참여하지 못한 해도 있었는데, 그럴 때도 레오가 참여해서 김장일을 돕곤 했다. 올해 김장에는 나도 레오도 둘 다 함께 참여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충주에서 김치공장을 하는 친척집에서 절인 배추와 무채, 새우젓, 액젓, 소금 등 김장 재료들을 얻어서 서울에 가져와 가족들과 함께 김장을 하곤 했는데, 작년부터는 공장에서 통조림을 생산하게 되어서 김치 공장 운영을 하지 않게 되어 충주 시골집에서 직접 키운 배추로 만든 절인김치를 수급받아 오고 있다. 올해도 충주에 가서 절인 배추를 받아왔다. 전날 소금에 절여 통에 가득 담겨있는 배추들이 알이 굉장히 크고 튼실했다. 올해는 양을 줄이고 줄여서 40 포기만 받고(사실 40 포기도 적은 양은 아니었다) 그 외 쪽파, 무, 대파 등의 재료들을 함께 실어 서울로 올라왔다.
어릴 때는 시골에서 자라 시골의 정취랄 것을 따로 느낄 일이 없이 일상이었는데, 서울살이 30년이 넘다 보니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날들이 되려 특별해졌다. 시골에 가면 사진도 더 많이 찍게 되고 시골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에 흥미가 간다. 김장 김치를 수급하는 일도 그런 것 중에 하나이다.
절인 배추를 물에 3번 물에 헹구면서 이물질을 제거하고 판에 올려서 물기를 빼는 동안에 쪽파를 다듬고 이른 점심을 먹었다. 들기름에 녹두전을 부쳐 주셔서 맛나게 먹었는데, 더불어 함께 내어 주신 김치들이 너무나도 아삭하고 맛있었다. 깍두기는 상큼하고, 무생채는 아삭하고, 멸치볶음은 바삭, 황탯국은 뜨끈하면서도 개운했다. 시골밥상은 모든 반찬이 별미다. 맛난 점심을 먹고 배추를 비닐에 옮겨 담고 채소도 차에 실은 뒤, 서울로 출발~!
서울에 도착해 짐을 옮기고 본격적인 김장 준비를 시작했다. 동서가 미리 집에 도착해 준비를 해 두고 있었다. 짐을 옮기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무채썰기. 예전에는 공장에서 채 썬 무를 가지고 왔기에 무채 썰 걱정이 없었는데, 올해는 무채를 직접 만들어야 했기에 채 써는 기계를 장만했다. 무를 세로로 길게 4등분 해 기계에 넣으니 절로 무채가 만들어져 나왔다. 기계가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무 10개 정도를 채 썰어 준비해 두고, 다음으로는 양파, 대파를 다졌다. 쪽파는 5cm 길이로 썰었다. 양파를 다질 때는 기계로 하는대도 특유의 향 때문에 눈물범벅이 되었다. 양파 때문에 김장에 참여한 사람들 전부 눈물을 흘리며 재료를 준비했다. 레오와 조카들도 옆에서 재료들을 나르며 함께 김장을 했다.
김장 속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이 준비가 되어 이게 본격적인 김장 속을 만들 차례. 무채, 양파, 대파, 쪽파, 갓에 다진 마늘, 다진 생강, 새우젓, 멸치액젓, 고춧가루, 소금 등을 눈대강으로 넣고 버무렸다. 어느덧 빨간 김장 속이 완성되고 간을 보니 조금 매웠다. 우리 가족은 다 맵찔이인데 이번 고춧가루가 조금 매운 고춧가루인 듯하다며 아린 혀를 물로 진정시키며 간을 보았다.
김장 속이 완성되고 드디어 절인 배추에 김장 속을 넣기 시작했다. 한 포기를 4등분 해 골고루 속을 넣었다. 40 포기 중 17 포기는 이웃이 주문한 것이어서 넘겨주고 나머지 23 포기 중 20 포기는 김장을 3 포기는 겉절이를 했다. 3명에서 하려니 꽤 시간이 걸렸다. 겉절이까지 끝내고 김치통에 차곡히 들어가 있는 김장김치를 보니 든든했다. 사실 예전 김치가 아직도 우리 집 김치냉장고에 가득한 상황이라 김장김치는 당분간 시댁에 두고 후에 김치가 필요할 때 가져갈 예정이다. 이렇게 담근 김치는 오래되면 또 묵은지가 되어 또 다양한 요리를 할 때 사용하곤 한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묵은지 김치찜! 레오의 단골메뉴 중 하나이다.
김장을 마치고 뒷정리까지 한 뒤 둘러앉아 수육으로 저녁을 먹었다. 김장하는 날은 수육이 필수인 것 같다. 겉절이 한 통과 시골에서 함께 주신 깍두기 한 통 그리고 안동에서 올려 보낸 쌀 한 가마니를 들고 집에 올라오니 곳간이 두둑해진 느낌에 배가 불렀다. 이제 어머니도 기력이 달리시는지 김장하는 내내 배추가 너무 많다며, 배추가 너무 크다며 힘들어하셨는데, 내년부터는 동서네와 우리 식구가 거의 해야지 않을까 싶다.
매년 힘들다 하면서도 김장을 안 하면 뭔가 서운한 느낌. 사 먹는 김치도 요즘에는 맛있게 나오긴 하지만 나는 그래도 시댁김치가 더 좋다. 올 한 해도 김치만큼은 인심 넉넉하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