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초과, 아내 전근지 미지정이지만 두 달 뒤 이사를 가야 합니다.
집을 내놨다. 4년째 전세로 살고 있는 현재 집은 국평으로 학교와 도서관을 갈 때 도로를 지나지 않고, 도보로 5분 거리에 상가와 학원, 병원 등 편의 시설이 가까워서 좋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전 세입자가 개를 키우면서 창틀과 붙박이장 구석구석에 털뭉치를 남겼고, 도배는 새로 했지만 주인내외가 직접 수리한 집은 아무리 락스를 발라도 기어코 곰팡이가 올라온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고장 나면 우리가 알아서 고쳐 쓰고, 수리를 늦게 해 줘도 별말 안 했다. 인터폰 수리에 두 달이 걸려도 그러려니 하고 기다렸다.
이사를 하게 된 이유는 남편의 이직 때문이었다. 남편은 동종업계 더 큰 회사에 경력직 공채 시험에 응시했고, 3달 만에 최종합격했다. 합격 소식이 있던 날 남편은 현재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고, 나는 남편이 이직할 회사 근처로 전근을 신청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집주인에게 이사를 해야 한다고 알렸다. 만기까지 두 달 하고 일주일 남은 때였다.
그때부터 짐을 줄이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버릴 물건을 찾았다. 앞서 두 번의 이사를 해보니 짐을 정리해서 이사를 가도 다시 짐을 풀면 또 버릴 것들이 나왔고, 수납할 곳이 없으면 집은 오래도록 어수선했었다. 집을 빨리 정리하려면 물건을 냉정하게 버려야 했다.
읽지 않은 책과 오래된 교재, 군데군데 낙서하고 때 지난 노트는 정리했다. 집에 있는 연필꽂이는 모두 뒤집어서 색연필과 사인펜은 딱 두 세트만 남기고 모조리 분해해서 분리수거했다. 옷장을 열고 혹시 다시 입을 일이 생길까 고민만 하고 2년간 손대지 않은 옷도 대부분 버렸다. 하지만 딱 하나, 20년 전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엄마가 대학 졸업할 때 준 돈으로 사준 코트와 바지는 오랜만에 입어보고 다시 옷장에 넣었다. 이 옷 앞에서는 냉정해질 수 없었다. 아이들 옷도 안 입는 옷과 사이즈 안 맞는 옷, 물려받았지만 내가 입힐 스타일 아닌 옷을 모아 헌 옷 수거함에 넣었다. 그래도 아직 멀었다. 베란다, 이불장, 신발장 등 매주 분리수거 날마다 정리할 예정이다.
밤에 남편이 새로 다닐 회사 근처의 아파트를 뒤졌다.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무리해서라도 상급지를 가야 할까? 아니면 빚이 부담스럽지 않은 집을 구하는 게 나을까? 게다가 최근에 집값이 많이 올랐다. 이직이 확정되었을 때 내가 찍어 둔 상급지 구축 아파트는 8천만 원이 올랐고 매물도 몇 개 없다. 한 때 전 재산을 걸고라도 가야 하나 고민했던 구축 아파트는 앞자리가 바뀌면서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듯하다.
그래도 이왕 같은 가격이면 지상에 차가 안 다니는 아파트가 좋을 것 같아 옆동네 준신축 아파트를 알아봤다. 처음 찾아 봤을 때 8억대 후반이었던 아파트는 중층 매물 호가가 10억이 넘었다. 며칠을 뒤적이다 옆 아파트에 새로 나온 매물을 발견했다. 9억 4천. 하지만 저층이다. 저층은 몇 층일까? 1층일까 아닐까? 하지만 저층의 기준은 물어보는 곳마다 제각각이었다.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고민 끝에 아파트 매물 사이트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네. **부동산입니다.
- 거기 **** 아파트 저층 매물이 9억 4천인데, 혹시 몇 층인가요?
- 거기는 1층이에요.
- 아, 저층이 1층이에요?
- 네, 1층이 9억 4천입니다. 이 동네에 관심 있으신가 봐요. 매매하실 예정이세요?
- 네, 이사 갈 집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 예산이 얼마신데요?
짧은 순간 고민했다. 솔직히 말할까? 돈이 없다고 하면 안 보여줄까? 글쎄... 모르겠다. 나는 총예산이 9억이고, 빚은 최소한으로 가지고 가고 싶다. 하지만 여기는 1층이 9억 4천이라 이미 예산을 초과했다. 매매가 9억 4천이지 세금 3500만 원에 이사비 복비 합치면 넉넉히 5000만 원은 더 들것이다. 그럼 결국 10억이다. 10억... 40대 중반인 내가 10억을 모두 집에 던져야 할까? 결국 빚을 져야하나.
- 현금 8억에 빚 2억 정도 생각하고 한 10억입니다.
- 그럼 원하시는 아파트랑 조건 있으시면 제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나는 간단히 층수만 확인하고 싶었지만 상황은 다르게 흘러갔다. 내 전근지가 확정되지 않은 데다 아이 둘 데리고 그 먼 곳까지 집을 보러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친절하고 적극적인 중개인에게 차마 '아니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결국 머릿속 생각과는 다른 대답이 튀어나왔다.
- 어... 그래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내가 고른 동네와 아파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남편은 출장 차 가봤던 곳이라 아는 곳이고 아파트와 동네 모두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진짜 그 돈으로 집을 사야 할까? 가서 매물을 봐야 할까? 취소할까? 너무나 친절하고 적극적인 중개인의 말에 나는 거절하지 못했고, 결국 다음 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보러 가겠다는 약속을 잡아버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우리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 집에 계신가요? 집을 보러 오신다는 분이 계시는데 언제쯤 방문 가능 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