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이 내 집이다 생각하시고
-평일 5시 이후에는 집에 있습니다.
-그럼 7시쯤 집을 보러 가도 될까요?
지난 토요일,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치과에 갔을 때 나는 대청소를 했다. 장난감과 책을 정리하고 건조대와 건조기에 있던 모든 빨래를 개서 서랍에 넣었으며, 화장실 곰팡이도 락스로 싹 소독해 뒀다. 한 달에 한 번은 이렇게 청소를 하는데, 사랑받지 못했던 집은 아무리 쓸고 닦아도 한계가 있다. 지난번 전셋집도 그랬지만 내 집이면 이렇게 살았겠느냐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부동산 매물을 설명할 때 주인 거주, 정상 입주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집을 내놓고 난 후 외출하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은 퇴근 시간 맞춰서, 또는 밤 9시가 가까이 되어서 집을 보러 오기도 했다. 아직 갈 곳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집을 빨리 빼고 싶은 나는 기꺼이 집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팀은 월요일 오후 여섯 시에 왔다. 아이 둘 키울 전셋집을 구하는 부부였다. 안방의 화장실을 보려고 했지만 화장실 등이 켜지지 않았다. 며칠 전에 화장실 등이 갑자기 꺼졌다. 등을 교체하려고 근처 철물점과 이마트를 뒤졌는데, 사이즈에 맞는 등이 없어서 천장 구멍이 뚫려 있었다.
- 아 이거 근처 마트에서 매립등 사다가 하나 끼우면 되는데... 여기 층간소음 방지 매트 아직도 까셨네? 이제 빼도 될 것 같은데?
거실 매트를 치워야 한다는 생각은 못했다. 지나가는 말로 말씀하셨지만 부동산 사장님은 당황하신 것 같았다. 아이들의 안전과 층간 소음 방지를 위해 깔았던 매트가 집 상태를 가리고 개방감을 방해하는 '치워야 할 짐'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집을 둘러보던 부부는 간단히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나는 다음 날 사이즈가 비슷한 전구를 사서 끼우고 층간 소음 방지 매트도 1/3 잘라냈다. 4년간 한 번도 빛을 보지 않은 깨끗한 바닥이 드러나자 집이 더 넓어 보였다.
화요일 오후 8시에 온 부부는 각자 집을 구석구석 살폈다.
- 여긴 바닥상태가 매우 좋네요.
여자분은 아이들이 지낼 작은 방을 유심히 둘러봤다.
- 이 집은 작은 방 두 개가 다 큰 편이에요. 이 집처럼 옷장 3개와 책상을 놓아도 공간이 넉넉하고 붙박이장이 있어서 수납하기도 좋아요. 다른 방도 책상과 책장을 2개 놓아도 공간이 좁지 않아요.
같이 온 남편분은 아무 말 없이 집을 테스트 하고 있었다. 부엌에 있는 아일랜드 식탁을 들어보고, 부엌 베란다 수납장을 옮길 수 있는지 흔들기도 했다. 화장실에 가서 변기물을 내리고 수도도 틀어본다.
- 남편분이 꼼꼼하시네요. 아일랜드 식탁 들어보시고, 수도 틀어보시는 분은 처음 봐요.
- 네, 남편이 가구 옮기는 거 좋아하고 집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학생이 둘 있는 가족이라고 해서 나는 이 집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이 집을 골랐던 이유를 그들도 느끼길 바라면서.
-저는 베란다 공간을 좋아해서 이 집을 선택했거든요. 빨래도 말리고, 식물도 맘껏 키우고 아이들 놀이 공간으로 쓰려고요. 그리고 저희 동이 편의시설과 가깝고, 도서관이랑 학교도 길 안건너고 걸어서 3분이면 갈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가구를 흔들어 보던 남편과 아이방에 관심 많던 아내 팀도 '잘봤다'라는 인사를 남기고 웃으며 떠났다.
수요일 밤에 온 팀은 고 3 아들을 키우는 부부였다. 두 분 모두 인상이 참 좋았다. 부동산 사장님은 현관에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여기가 두꺼비집인데, 그림으로 가려두셨네요. 직접 그리셨나 봐요.
-네, 제가 둘째가 뱃속에 있을 때 태교한다고 완성한 그림이요.
-여긴 중간라인에다 베란다가 있어서 더 따뜻한 집이에요. 작은 방도 큼직해서 책장과 책상, 침대를 두어도 좁지 않습니다. 도배한 지도 얼마 안 돼서 매우 깨끗하죠.
-관리비는 얼마 정도 나오나요?
-지난달에는 32만 원이 나왔는데 평균적으로 월 24~28만 원 정도 나와요. 작년에는 총 304만 원을 관리비로 냈어요. 저희 집이 다른 집보다 좀 적게 나오긴 해요.
두 부부는 집을 꼼꼼하게 봤다. 이동 가능한 가구가 있는지, 세탁기와 건조기는 어디다 두면 되는지. 안방의 침대는 어느 방향으로 두고 현재 설치된 붙박이 에어컨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안방의 드레스룸과 작은 방의 붙박이장도 열어보고 화장실 상태도 확인했다. 적극적인 그들의 모습에 나도 나섰다.
-바닥에 소음방지 매트를 깔았다가 최근에 치워서 상태가 좋습니다. 벽에 못을 박거나 테이프 같은 걸 붙이지 않아서 깨끗하고요.
상대 중개인도 거들었다.
- 아까 본 그 집보다 상태가 매우 좋죠. 도배도 깨끗하고 관리가 잘 된 따뜻한 집입니다. 잘 봤습니다.
이번 주에는 3일 연속 세 가족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집을 보러 온다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바삐 집을 정리하느라 몸은 피곤했지만 매번 상태가 좋다는 말을 들으니 청소한 보람이 있어서 뿌듯했다. 타인에게 내가 사는 집을 보여 주는 것은 내 삶의 흔적을 닦아내어 타인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과정이다.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매일 쓸고 닦는 정성은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나는 날까지 계속될 것 같다.
며칠 뒤 새 직장에 첫출근한 남편이 돌아와서 말했다.
- 전 직장에서 아직 퇴사 처리가 안되어서 출근하면 안된대. 퇴사처리를 먼저 하고 오래...
사직서를 낸지 한달이 지났을 때였다. 이직한다고 집도 내놨는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