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땡벌. 기다리다 지쳤어요. 땡벌땡벌.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은 꾸준히 있었다. 어느 순간 부동산에서 전화가 올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저녁 먹을 시간에 오거나 방문 시간을 바꾸는 등 불규칙한 일정에 맞추어 집을 단장하는 것이 힘에 부쳤고, 집에서 편하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편도 집에 있었다. 집을 보여주러 오시던 부동산 사장님이 말했다.
- 어, 안녕하세요? 사장님 집에 계시네요?
- 네 연차라 오늘은 집에 있어요.
- 아 그러시구나...
그리고 다음날도 남편은 집에 있었다.
문제는 집이 아니었다. 사직서를 내고 한 달 후 남편은 새로운 회사로 출근했다. 첫날 새로 입사할 회사에 대한 브리핑과 회사 건물 투어를 하고 다른 신입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연수도 받았다. 점심 때는 자신이 일하게 될 자리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다. 깔끔한 책상에 새 노트북이 보였다. 하지만 퇴근할 때 남편은 인사팀에게 전화를 받았다.
- 퇴사처리가 안되신 것 같은데요?
- 네에?
- 4대 보험 가입이 안 되는데요?
부푼 꿈을 안고 새 직장에 출근한 첫날 남편은 이전 회사에서 퇴직처리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다음 날 바로 본사로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한번 더 생각해 봐라.', '근무지를 바꿔 주겠다.', '팀을 새로 꾸려주겠다.'라는 말 뿐이었다. 회사에 불만이 없었던 남편은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나였다. 한 달 전, 남편이 공개 채용에 합격했을 때 남편 회사 근처 지역으로 전보를 신청했고, 집도 내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다음 날부터 남편은 출근 대신 본사에 가거나 사람들을 만나 면담을 시작했다. 일정이 없으면 온종일 방에 누워 지인들과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끊임없이 통화했다. 남편은 변호사와 상담도 해보고, 나도 인터넷으로 노동법을 찾아봤지만 방법이 없었다.
법은 사직서를 낸 당월과 그다음 한 달간 남편의 사직서를 처리해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매일 우리 손에서 해결되지 않는 고민만 하다가 남편은 2025년에 남은 연차를 모두 소진했다. 나는 법적으로 남편이 출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책상 위에 하루 종일 앉아 있으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마침내 남편은 본사 인사 책임자와 면담을 잡았다.
그날 저녁, 남편이 새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산 옷을 갖춰 입고 본사로 향했을 때, 나는 그가 책임자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어 문제를 잘 풀어내기를 바랐다. 하지만 남편은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돌아왔다.
- 왜 이렇게 일찍 왔어?
- 어, 그분이 바빠서 다시 회사 들어가야 한다고 저녁만 같이 먹었어.
- 아니 이 추운 날 본사까지 갔더니 고작 밥만 먹었다고? 남편한테 너무한데? 그래서 무슨 이야기했어?
- 그냥 남아있으라고. 근무지는 원하는 대로 내주고, 새 팀도 꾸려줄 테니까 계속 같이 일하면 좋겠다고.
- 그게 다야? 우리 상황은 이야기 안 했어?
- 응, 바쁘다고 해서 이야기는 못하고 그냥 듣고 왔어. 서울 본사에 가서 새로운 팀에서 일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이 추운 날 한 시간 반을 걸려 면담을 하러 갔는데, 고작 30분 식당에서 갈비탕 먹으며 인사책임자의 말만 듣고 왔다는 남편의 말에 화가 났다. 상대방도 멀리서 찾아온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줄 만도 한데, 자기 말만 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 30분을 위해 남편은 하루 종일 나와 무슨 말을 할까 고민했었다.
- 근데 남편 생각해 봐. 그럼 우리가 왜 이사를 해? 내가 왜 전근을 신청했겠어. 원래 회사로 돌아가면 우리가 집을 내놓고 이 고생을 할 필요도 없고, 내가 직장을 옮길 필요도 없었잖아. 아이들도 전학 가야 하는데. 우리가 이사 가면 당신 직장까지 출퇴근 시간이 편도 한 시간 반이야. 근무 상태만 바뀐 상태에서 우리 가족 모두가 이렇게 힘들어지는데 그게 말이 돼?
하지만 남편은 되려 내게 화를 냈다.
- 회사에서 나를 이렇게 붙잡을지도 몰랐고,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해준다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가 있냐. 그리고 원래 회사에 불만이 있었던 게 아닌데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다시 일하면 내 마음이 얼마나 편안하겠어.
회사의 퇴사 처리를 기다리는 남편은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서 전화통화를 하며 한숨을 쉬고, 다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울한 남편에게 집안일도 좀 하라고 말할 수 없었기에 아이들의 삼시세끼 밥에 집정리는 오롯이 내 몫이었다.
남편은 24년을 쉬지 않고 일했다. 이전에 직장을 바꿀 때도 퇴사한 다음 날 새직장에 출근했다. 새벽에 출근해서 퇴근한 후에도 일 때문에 전화기를 놓지 않았다. 아이들도 아빠가 집에서도 자신보다 휴대폰과 더 자주 대화한다는 걸 안다. 하루 종일 일만 하며 살던 사람이 주중에 하릴없이 뒹굴고 있다. 취미도 없는 사람이 이렇게 혼자 자기 세계에 빠지는 경우 사고는 왜곡되고 감정은 더 예민해진다.
몇 년 전 육아휴직을 했을 때 내 모습이 꼭 그랬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아무 옷이나 입고 세수 안 하고 모자 푹 쓰고 다니니 편했다. 하지만 한 달 뒤, 몸은 편했을지 몰라도 나는 더 초라해지고 어두워졌다. 그래서 나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침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줄 때 화장도 하고 옷도 단정히 입고 나갔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해 단장하니 마음도 안정을 찾아갔다. 남편을 보니 예전의 내가 생각났다. 나는 일부러 남편을 밖으로 끌어냈다.
- 커피 한잔 할래?
남편은 나갈 기분이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남편을 끊임없이 설득했다.
- 남편, 나도 겪어 봤지만 집에만 있으면 사람이 더 힘들어져. 그리고 하루 종일 휴대폰만 붙잡고 집에 있으니까 아이들도 당신 눈치 봐. 당신이 방에서 나오면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좋아하고, 당신이 방에 들어가서 전화하면 대화도 소곤소곤해. 퇴사 처리가 안 되고 있는 건 큰 문제지만 그렇다고 매일 아이들을 눈치 보게 할 필요는 없잖아. 차라리 아이들이 놀 때 한숨 쉬고 전화통화 하는 건 어때? 그럼 아이들도 당신 신경안 쓸 거 아니야?
그제야 남편은 밖으로 나왔다. 씻지도 않고, 우중충한 생활복에 패딩만 걸쳤지만 나무라지 않았다. 이 시간에 남편과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가? 주중에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 남편 회사에 출근하면 힘들겠지? 이제 연차가 끝났어도 법적으로 퇴사처리 될 때까지 출근은 해야 한다고 그러던데 당신 생각은 어때?
- 가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뭐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할 일도 없는데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것도 괴로울 것 같아. 나도 고민은 되는데 안 가고 싶어.
- 그럼 무단결근 처리되거나 월급이 적어지는 거 아니야?
- 하지만 돌아가면 무단결근은 없던 일로 해 준대. 그런데 잘 모르겠어.
남편은 출근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라면? 가서 앉아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시간 보내는 것보다 앉아서 돈이라도 버는 게 낫다고 생각하니까.
- 당신이 출근할 생각이 없으면 우리가 평소에 못해봤던 거 해보자. 아이들도 방학이라 집에 있는데, 당신은 평일에 한 번도 집에서 아이들과 있었던 적이 없잖아.
남편도 동의했다. 그래서 나는 밖으로 나갈 구실을 만들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남편에게 그날그날의 계획을 말했다.
- 오늘은 실내동물원에 가는 건 어때? 우리는 맨날 사람 많고 비싼 주말에만 갔는데, 평일날 가면 더 저렴하고 여유 있어서 좋을 것 같아.
- 오늘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 먹자. 우리는 늘 주말에만 가서 비싸게 먹었는데, 온 가족이 최초로 평일 런치를 먹어보는 거야.
남편과 외출을 할 때 나는 남편이 하는 이야기는 다 들어주었다. 매번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좀 더 웃고, 방에 들어가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지 않으려면 남편은 사람과 대화를 더 많이 하고 생각을 밖으로 꺼내야만 한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의견도 조심스럽게 피력했다.
- 당신이 지금 불편한 마음에 회사로 돌아가려는 생각도 들겠지만 그건 우리 가족에게 전혀 득이 되지 않아. 지난번 내가 몸이 아파 출근 못 할 때 당신이 회사에서 30분 만에 와서 나를 병원에 데려간 거 기억 안 나? 나나 당신이나 기댈 곳 없이 둘이서 애를 돌보는데, 나나 애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당신이 집에 오는데만 한 시간 반이야. 그렇게 매일 출퇴근하면 집에 와서 힘은 있고? 나는 회사에서 돈을 더 줘도 당신 다시 안 보내.
드디어 출근 안 한 지 열흘이 지난 화요일 저녁, 인사팀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 내일 본사 인사 담당자와 연락해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전화드리니 내일 이야기하자고 하시네요.
남편은 신이 났다. 내일은 어떻게 될까?
개인적으로 남편이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희일비하는 남편을 보는 나도 지치고, 그 남편을 양지로 끌어내려는 나의 노력도 슬슬 힘에 부친다. 무엇보다 매일 온 가족이 밖으로 나가니 깨지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다. 집도 사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