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남미녀모친 May 11. 2024

분식집 아르바이트와 라면 할아버지

(오늘도 출근해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학생 때 학교 앞 분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본가는 차로 1시간 거리로 가까웠지만 방학 때 집에 가기는 싫었다. 그래서 생활비는 알아서 벌겠다고 하고 밤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규모가 꽤 큰 분식집이었는데, 홀이 넓고 룸도 있어서 근처에서 회식하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홀서빙은 장점이 많다. 신발을 벗지 않아서 좋고 입식으로 식사하는 사람들은 바닥에 떨어뜨린걸 대개 주워놓는다. 그리고 떨어진 것도 줍기 쉽다. 주방이랑 동선도 짧고 중간에 가림막이 없기 때문에 매장을 둘러보다 손님과 눈이 마주치면 필요한 것을 바로 갖다 드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웬만한 손님들은 모두 홀로 안내했다.


   하지만 룸서빙은 달랐다. 우선 신발을 벗어야 한다. 그리고 음식을 들고 수평을 유지하며 이동하여 자세를 바꾸고 앉아 접시를 하나씩 내려야 한다. 그래서 룸은 예약한 사람이 있거나 인원이 5명 이상일 때만 사용했다. 좌식 테이블은 밥상 깊숙한 곳에 쓰레기를 두거나 음료수병이나 뚜껑이 위아래 널브러져 있기 때문에 정리가 번거롭다.  하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재미를 찾고자 했다. 바로 뒷정리에서였다.

  

   식사 후 테이블 정리가 안되어 있으면 식당지저분해 보이고, 주문이 누락되는 일이 생긴다. 최선의 방법은 테이블 정리를 빨리 끝내는 것이다. 그래야 손님을 받기가 쉽고, 일이 순서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5명의 손님들이 가고 나서 뒷정리를 시작했다. 쟁반 하나에 모든 접시와 쓰레기를 담아 옮겼다. 편했다. 여러 번 왕복하지 않아도 된다. 신발을 벗거나 무릎을 굽히는 횟수가 줄고 시간이 단축된다. 그래서 생각했다. 신기록을 세워볼까? 이제까지 테이블을 치워본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의 방법을 설계했다.


1. 남아있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을 보고 몇 접시에 담을 것인지 정한다.

2. 그릇의 크기를 고려하여 음식물 쓰레기를 담는다.

3. 모양이 서로 다른 접시와 냄비를 쌓을 순서를 정한다.

4. 순서대로 정리하고 맨 나중에 쓰레기와 수저를 쟁반 틈에 끼운다.


   그 후로 좌식 테이블에 손님을 받을 때 나름의 방법을 실행에 옮겼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여나갔다. 그리고 어느 날, 12명의 예약 손님이 좌식 테이블에 빙 둘러앉았다. 음식 서빙이 완료된 단체석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쟁반 몇 개면 저 그릇을 다 치울 수 있을까?


일단 쓰레기를 치운다. 그리고 술병을 모아 둔다.

이단 음식물을 모은다.

삼단 그릇을 쌓는다.

사단 쟁반 틈에 수저를 끼운다.

12인분의 식사가 널찍한 쟁반 2개로 끝났다.

 쟁반이 엄청나게 무거웠지만 쟁반 2개에 12인분 테이블 정리를 클리어했다. 신기록을 세워서 신이 났다. 그리고 기분 좋게 앉아서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




   이 분식점에는 가끔 마감하기 직전에 할아버지 한분이 오신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메뉴는 늘 같았기에 사장님도 별말씀 안 하고 받아주신다. 그분은 올 때마다 '라면'을 시켰고 가끔 '만두라면'이나 '떡라면'을 주문했다. 12인분의 식사를 치운 그날 할아버지는 떡라면을 시키셨다. 홀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문을 받고 요리된 라면을 갖다 드리니 할아버지가 나에게 말을 거셨다.

" 몇 살이에요?"

" 21살이요"

" 젊은이가 열심히 사는 모습 보니 좋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고 라면을 후후 드셨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할아버지를 보았다. '열심히 사는 모습, 열심히 사는 모습...' 그저 집에 가기 싫어 생활비 벌려는 나를 할아버지는 열심히 사는 젊은이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나가시고 나도 곧 근했다. 이후에도 몇 번 만났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 개강을 하고 나도 저녁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면서 할아버지를 잊었다.  


  몇 년 뒤 취직한 후 지독하게 아끼며 살던 시절, 퇴근하는 길에 저녁으로 할 야채 김밥을 한 줄 사기 위해 분식집에 들렀다. 거기서 열심히 살아서 보기 좋다고 했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때, 늦은 밤 분식집의 할아버지는 라면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힘든 하루를 마치고 먹는 늦은 끼니라는 걸 알았다. 늘 먹던 라면에 가끔 추가되던 떡이나 만두는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네, 할아버지. 지금 이렇게 열심히 살면 나중에는 좋을 거예요.' 지독히 아끼며 누구에게도 응원받지 못했던 때였다. 얼굴도 기억 안 나는 할아버지의 한마디가 문득 나에게 힘을 주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처럼 나도 1000원, 1500원짜리 야채김밥만 먹었다. 그리고 10년 뒤에 참치, 샐러드, 돈가스가 들어간 김밥을 먹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3년 전 만난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젊은이가 열심히 살아서 보기 좋네.'라는 말은 '오늘을 살기 위해 미래를 빌리지 않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빚지지 않는다'는 말로 바꿔 부르고 싶다.


주말에도 미래를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격려와 응원, 돈가스 김밥과 만두 라면함께 보낸다. 파이팅!


작가의 이전글 버스 기사 양반이 이해를 하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