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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남미녀모친 Jun 02. 2024

백운호수 오리배에서 자본주의를 만나다.

내 돈에 페달 말고 모터를 달아야겠다.

주말, 평촌에 결혼식이 있어 가족들과 나왔다. 집으로 오는 길...  집에 그냥 들어가기엔 뭔가 허전했는지 남편이 말했다(남편은 P, 나는 J).

"백운호수에 가볼래?"

"왜? 거기 볼 일이 없잖아. 거기 밥도 비싸고 지금 밥때도 아닌데 왜?"

"그냥 드라이브겸, 호수 구경이나 하지 뭐."

 차를 왼쪽으로 돌렸다. 의왕 시내를 지나 백운호수가 나타났다. 백운호수는 수원 살 때 몇 번 왔던 곳이다.


   길 따라 호숫가를 드라이브 하다 남편이 말했다.

"예전에 아이 낳기 전에 저 카페에서 회사 직원들이랑 차 한잔 하러 갔었는데. 당신도 거기 있었잖아."

 남편 회사 직원의 결혼식에 갔었다. 행사가 끝나고 직원들과 함께 간 백운호수의 카페에서 우리는 차를 주문하지 않았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을 때였고, 남편은 커피 한잔에 칠 팔천 원 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후 아이를 낳고 백운호수에 왔었다. 그때 남편이 아는 맛집이 있다고 같이 가보자고 했다. 유아 2인 포함  식구가 2인분을 시켰다. 아이들은 기본 반찬으로 밥을 먹이고, 우리도 식사를 했다. 그리고 1/4쯤 남은 음식을  포장해 왔다. 음식을 포장해 오면 집에서 한 끼 더 먹을 수 있다. 이렇게 한 번의 외식으로 두 끼를 해결했었다.


   그리고 오늘, 정말 오랜만에 백운호수에 왔다. 호수를 한 바퀴 돌던 중 오리배가 눈에 띄었다.

"오리배나 타 볼까?"

"그래."

남편도 나도 오리배는 태어나 처음이다. 오래 연애를 하면서도 오리배를 타고 싶다는 또는 타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공공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저수지를 따라 걷다가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매했다.

"어른 둘 아이 둘이에요. 오리배 얼마예요?"

"이만 오천 원입니다."

데크에 내려가니 사람들이 줄 서 있다. 오리배는 시간이 되니 한꺼번에 선착장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구명조끼를 입고 오리배를 탔다. 고민하지 않고 오리배를 탈 수 있는 현재가 매우 기뻤다.

' 와, 오리배는 이런 거구나...'

   하지만 15분 뒤, 나도 남편도 이내 지쳐 버렸다. 페달을 밟은 만큼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배를 잠깐 세우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탄 오리배는 앞 좌석에만 페달이 있었다. 2륜구동에 스틱이었다. 힘차고 스피디하게 페달을 굴려야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배의 정면에서 바람을 맞거나 물의 흐름을 거슬러 가면 방향도 바뀌기 일쑤였다. 페달을 밟다가 잠시 쉬는 틈을  타 옆에 지나가는 배를 힐끔 본다.

   4명이 모두 페달을 밟는 4륜 구동배다. 속도가 빠르고 방향 전환도 쉽다. 부러웠다.

"남편, 저 배는 4명이 동시에 페달을 밟네? 우리는 아이가 어려서 이걸 줬나 봐."

"아니야, 뒤에 페달이 있으면 5000원 더 비싸."

"아, 그래?"

   몰랐다. 2륜구동 스틱 오리배를 타는 이유는 아이가 어려서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기본' 오리배를 고른 거였다. 타본 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그러다 우리 가까이에 사람들이 웃음소리가 들린다. 웃어? 행복해도 힘은 들었다. 페달을 멈추지 않고 돌려야 한다. 그래야 물과 바람에 밀리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웃음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본다.

'엇? 페달이 없네?'

   페달이 없는 배가 있었다. 모양도 오리가 아니었다. 모터로 움직이는 배였다. 배 안에는 다리 아픈 사람도 땀 흘리는 사람도 없었다. 여유와 자신감의 아우라가 나를 강타했다. 강력한 모터의 힘으로 가는 보트. 가족 중 한 사람이 방향키를 조작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남편과 내가 힘들어하니 뒤에 앉은 아이들이 자기가 페달을 밟아 보겠다고 했다. 아이들을 꼭 잡고 앞자리에서 앉아 페달을 밟아 보게았다. 아이들은 즐거워하며 더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을 말렸다.


'이건 게임이 아니라 노동이란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 엄마랑 아빠는 오리배를 태어나서 처음 타봐. 너희 태어나기 전에는 타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거든. 페달 밟아서 힘들긴 했지만 너희들이 좋아해서 다행이다."




   난생처음 오리배를 타면서 행복했다. 동시에 이 모습이 현재 내 모습이 아닌가 생각했다. 어린아이 둘 키우며 부부가 종일 일하고, 파도와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목적지까지 가려는 우리. 자식들 다 키워서 다 제 앞가림을 하여 여유 있어 보이던 4륜 구동 사람들. 마지막으로 누구 하나 땀 흘리는 사람 없이 편안해 보였던 모터 가족. 그 모습을 보며 다음에는 모터를 만들든지 사서 달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오리배를 즐겼다. 리배를 타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내가 오리배를 타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온 가족이 함께 생 처음 오리배를 타던 날이었다. 숨차고 땀도 났지만 우리는 내내 웃었다. 날씨도 기분도 완벽했다.

모터값 벌러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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