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캔두잇 Sep 03. 2024

둘째가 생겨서 첫째가 되었다네.

하태오남매


뱃속에 하동이가 들으면 서운할 만한 얘기가 있다.

그것은 우리 부부가 둘째를 원하는 이유이다.

귀하디 귀한 내 딸이 언젠가 엄마 아빠가 없는 세상에 홀로 남겨졌을 때 조금 덜 외로우라고 첫째에게 주는 선물 같은 동생 하동이. 태명도 하오동생 하동이.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 7개월 만에 아기가 생겼다. 우리 부부의 계획보다 너무 일찍 찾아와서 어떠한

기대도 없이 정말 <불쑥! 엥? 갑자기?> 찾아왔다.

일찍이긴 해도 원래 갖고 싶었던 거였으니 너무 귀하고좋다.

그리고 시작된 입덧으로 나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되었다. 이제 막 시작해서 즐겁게 다니던 필라테스도 중단되었고 자기 계발로 주 3회 꾸준히 다니던 중국어 학원도 끊었다. 계획서를 제출했던 연구대회 출전도 중도포기하게 되었다.

평소 ‘아기 키우면서 엄마가 하고 싶은 거 하면 하지 왜 못해! ’라는 마인드로 살았는데 결국은 불가능한 현실에 부딪힌 속상함을 달래느라 꽤 우울했다.


간신히 책임감 하나로 출근을 했고, 또 간신히 퇴근해서 침대에 붙어있다가 꾸역꾸역 첫째 하원 시간이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흐트러진 머리를 대충 만지고서 아이를 데리러 갔다. 데려온 아이는 그대로 소파에 앉혀 뽀로로를 틀어주고 나는 또 소파에 누워있다가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나는 또 안방에 들어가 고대로 아침을 맞이한다.


또 출근. 또 퇴근. 버티고 버티다 주말이 오면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하루 종일 나가서 놀다가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 들어왔다. 혼자 있는 주말 동안은 살고자 먹고, 살고자 토하고 그렇게 총 8번의 주말이 사라졌다.

속 쓰림은 먹어도 지랄이고 안 먹어도 지랄이었다.

(뱃속에 하동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새벽 한시와 세시에는 쓰린 속을 붙잡고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 차가운 흰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 잤다. 그나마 우유와 감자로 버텼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못 먹는 일상이 너무 우울했다.


 어느 주말, 침대에 누워있다 나도 모르게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거실에서 놀던 남편과 딸이 동시에 부랴부랴 뛰어왔다. 두 돌도 안 된 녀석이 내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엄마 아파?” 그런다. 이쁜 내 딸 언제 이렇게 말을 잘했어. 엄마 입덧하느라 누워만 지낸 동안 넌 또 부지런히 컸구나. 또 광광 울었다.

너로 인해 처음 겪는 새로운 감정을 배워가며 난 또 그렇게 단단한 엄마가 되어간다.  


13주가 되자 속 쓰림이 잦아들고 몇 가지 먹고 싶었던 음식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 드디어!

하동이가 엄마 뱃속에서 열심히 컸구나.

이제 같이 맛있는 거 먹자며 신호를 보내는구나!


 뱃속에 둘째보다 첫째가 더 신경 쓰이는 요즘이다.

어느새 첫째라는 호칭이 생겼고. 우리 부부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엄마 배에 아기가 있어서 힘들어.’

‘엄마 배에 올라타면 안 돼.’

‘엄마 배에 아기가 있어서 못 안아줘.’라고..

그러면 우리 하오는 또 이해해 준다.

엄마에게 덜 안기고, 아빠에게 더 안기고

안고 가다가 ‘이제 걸어가자’라고 말하면 ‘엄마 힘들어?’ 묻기도 하고. 제법 나온 엄마 배를 만지며 ‘하동아~’ 부르기도 한다. 어느새 진짜 첫째처럼 의젓해졌다.

 두 돌. 지금 딱 예쁠 시기를 입덧으로 힘들어서 하루하루 하오의 순간을 놓쳐가는 게 너무 아쉽다.

할 줄 아는 말이 늘고 새로운 문장으로 말할 때면 힘들다가도 빵! 터지게 웃고 덕분에 웃을 일들이 매일매일 생긴다.


첫째와 둘째가 함께 만날 날을 기다리며 설레는 요즘이다. 우리 하오 더 많이 사랑해 줘야지.

엄마의 입덧을 묵묵히 참고 기다려준 내 딸.

나의 첫아기,

첫사랑,

첫째 딸, 하오야.

처음처럼 여전히 널 사랑해.

작가의 이전글 짱아가 어린이집에 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