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be shy.

배드민턴.

by 율캔두잇

사실은 배드민턴 한번 가려면 참 많은 일들을 해야 해.

직장인으로, 엄마로, 아내로 주어진 역할을 끝내야

비로소 그날 저녁 운동을 나갈 수 있어.

그러니까 나는 배드민턴을 가기 위해 애를 써.

그래서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해.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엄마. 운동 다녀올게!’ 인사하면

- ‘엄마! 다치지 말고 잘 다녀와’ 하며

얼굴이 침 범벅이 되게 뽀뽀해 주는 두 아이와

진한 인사를 나눠.


등 뒤로 현관문이 닫히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최대로 올려

세상의 소리를 닫아.


좋아하는 노래 딱 두곡을 들으면 체육관에 도착해.

어떤 날엔 노래에 취해 그만, 신호등의 초록불이

세 번이나 바뀔 때까지도 건너지 못해.

그렇게 체육관에 가는 길이 가깝고 멀어.


배드민턴이 너무 좋아.

게임을 하다 보면

힘들어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건지

좋아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건지 모를 정도야.

그냥 계속 설레는 감정이 쏟아져.


그러고 보니 내가 계속 웃고 있더라고.

일하는 시간에는 고작 입꼬리만 올려 웃는 내가

제일 안쪽 어금니에 씌운 금니가 보일 만큼 웃어.

이렇게 웃긴 운동이었어?


콕을 놓치지 않고 잘 넘긴 날에는

기분이 좋아 미치겠는데,

유난히 콕이 틱틱 소리를 내며

콕을 받지 못하는 날엔 화가 나 미치겠어.

그러니까 배드민턴에 미쳤다고 하는 거야.

이래도 미치고 저래도 미치니까.


무더운 여름날,

에어컨 바람에 콕이 잘 날지 않는다는 이유로

에어컨을 틀지 못한 체육관은 가만히 있어도 더웠어.

게임 한번 하고 나면 다리에도 땀이 나더라.

난 내 다리에서 땀이 나는 걸 처음 봤어.

그렇게 더워 죽겠는데 사람들이 배드민턴을 치더라.

나만 미친 게 아니고 다 미친 거 같아.


게임을 하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눈을 적셔

그 땀을 닦으면 내 파트너가 이렇게 말해.

- 힘내. 조금만 더. 할 수 있어.

그럼 또 내 발이 막 움직여.


이제 더 이상 지쳐서 숨이 차면

내 파트너가 또 이렇게 말해.

- 못하겠어? 그럼 끝내줄게.


배드민턴이 그래.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어.

내가 앞에 서 있을 땐,

닿지 못한 콕을 누군가 대신 받아주고

내가 뒤에 서 있을 땐,

앞에서 오는 콕을 모두 막아줘.

세상에 이렇게 든든할 수가 있을까.


삶도 배드민턴 같으면 좋겠어.

내 앞에 날아드는 거친 일들을 모두 막아주고,

내 뒤에서 나를 받쳐주면 나는 그냥 기대고만 싶어.


날던 콕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파트너의 라켓과 내 라켓은 서로 부딪혀 인사를 해.

그래서 더 힘이 나는 거야.

도대체 이건 누가 만든 룰이야?

게임이 끝나고 나면 모두가 손바닥을 부딪쳐 인사해.

이것도 누가 만든 룰이야?

인간의 사랑이 느껴져.

라켓 끝에서 손바닥 끝에서.


배드민턴이 자꾸 나한테 뭘 가르쳐.


사실 배드민턴을 칠 때마다 나는 용기를 내야 해.

- 체육관에 들어설 때마다 큰소리로 인사하는 것.

- 시선이 집중된 채 서브를 넣는 것.

- 콕을 놓치는 실수를 했지만 다시 일어서는 것.

- 날아드는 콕을 자신 있게 쳐내는 것.

- 레슨에 최선을 다하는 것.

- 운동을 마치고 돌아갈 때 큰소리로 인사하는 것.

이건 모두 나의 용기가 필요한 일들이야.

내 마음속은 계속 자신감을 가지라고 큰소리를 내.


이 작은 것들을 해내고 나면 난 내가 너무 기특해.

웃고 땀 흘리며 배드민턴을 친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하지만 내가 아직도 내지 못하는 용기가 하나 있어.

‘같이 게임하실래요?’

이 말이 목 끝에 멈춰 용기가 나지 않던 어느 날.

내 파트너가 내게 이렇게 말하더라.


Don’t be shy.


용기가 안나. 자꾸 망설여.

월요일엔 먼저 손 내밀 수 있을까?

‘난타 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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