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닦는 것과 공황장애의 상관관계
2021년 3월 30일
어제는 기어이 수면제를 복용했다.
정신과 싸워 이겨야지, 약에 의존해서는 안 돼! 하며 4일을 버텼는데,,
4일 잠 못 자니, 아후..
눈 밑 다크서클이 까맣다 못해, 퍼렇게 변하는 것이 이러다 안 되겠다 싶었다.
일단 잠을 자야, 면역력이 생기고, 면역력이 생겨야 건강한 몸, 그래야 건강한 정신이려니, 스스로 위안하며 수면제를 먹었다.
근데, 수면제 먹을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참 효과가 좋다.
신기하다.
약 먹고, 10~20분 안에 여지없이 잠이 든다.
그리고, 정말 얼마 안 잤다 싶어 일어나는데, 여지없이 5시간~6시간이 흘러있다.
강제로 잠들게 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내 몸을 위한다면야….
나는 지금 약해져 있으니까, 나는 지금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 괜찮아!
누가 그랬다.
술, 담배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것들에라도 의존할 텐데, 그런 것을 안 하니, 맨 정신으로 온통 버텨내야 하니 더 힘들 거라고!
맞는 말이다.
술이라도 먹어서 정신이라도 잃으면 몸은 쓰리지만, 이렇게 슬프거나, 괴롭진 않을 텐데.. 드넓은 사막의 거센 모래폭풍을 천 쪼가리 하나 없이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기분이다. 눈을 감고, 손으로 얼굴을 가려보지만, 작은 모래들이 사정없이 맨 살을 잘게 잘게 찢어내고 있는 듯하다.
밤이 되면, 세상이 조용하면 더 그런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술, 담배 없이 어떻게 견뎌야 할까?
일어나서 이를 닦았다. (그러고 보니 칫솔이 엄청 낡았네)
칫솔을 붙들고, 치약을 짜 냈다.
거울을 보며 칫솔질을 시작했다.
먼저 앞니의 위아래를 한 30번 정도? 아니다 40번 정도?
그 다음 난 오른손 잡이라서, 왼쪽이 쪽으로 칫솔의 방향을 튼다.
왼쪽 위 아랫니를 돌려가며 닦아낸다.
끝났다 싶으면 이번엔 팔목을 돌려서 오른쪽 위 아랫니 차례이다.
좀 불편하다 싶지만, 내 오른쪽 위 아랫니도 소중하니까?
일부러 왼쪽 위 아랫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자세가 불편하니 더 신경을 써줘야 한다.
인생도 그렇다.
불편하면, 부족하면 더 시간을 투자하고, 더 기다려주고, 더 아껴줄 일이다.
수학 실력이 부족할 때 그러하듯이,
게임만 하는 아들에게 그러하듯이,
대소변을 못 가리는 애완견에게 그러하듯이,
능력이 부족한 팀원에게 그러하듯이,
나를 사랑하지 않은 상대에게 그러하듯이,
먼저 기다려주고, 더 기다려 줄 일이다.
다음은 안쪽 이들 차례다.
이번엔 순서가 사뭇 다르다.
이미 오른쪽에 칫솔이 가 있으니, 그 상태에서 칫솔을 안으로 넣어 아랫니를 털어내듯이 닦아낸다. 문지르면 안 된다.
그 다음은 중간 위 아랫니, 특히 아랫니에 더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 다음 왼쪽으로 이동!
그렇게 끝이 나면, 혓바닥도 닦아줘야 한다.
몸에서 독소가 제일 먼저 나오는 곳이 혓바닥이라니, 구역질이 살짝 날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닦기가 끝이 나면, 칫솔을 헹구고,
컵으로 물을 받아(물을 아낄 수 있다. 우울증인데 지구 걱정이라니…) 다섯 번은 헹궈야 입에서 치약 냄새가 남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칫솔질로 이에 남아있는 치약들을 다시 닦아준 후에, 입을 헹궈주면 끝!
입안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적어도 10분은 그 개운함, 상쾌함을 간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다음 식사까지 적어도 찝찝하지는 않을 수 있다!
이게 중요한 거다. 우울증에 걸려있으면, 모든 것이 불편하고, 귀찮고, 울고 싶은데,,,
어느 것 하나가 나를 찝찝하지 않게 해 준다면, 살짝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렇게라도 작은 성공 하나를 맛보아야 한다.
작은 성공은 나를 괜찮은 사람, 계획하는 사람, 성취하는 사람으로 보게 해 준다.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말이겠다.
나는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사람이 아니라,
계획하고, 도전하고, 성공하고, 성장하는 사람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누가 나를 귀하게 여기겠는가?
이 하나 닦았다고, 우울증이 치료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어도 10분은 개운할 것이고, 5~6시간은 찝찝하지 않을 것이다.
그거면 됐다. 우울증 환자들에겐 그렇게 짧은 시간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닦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 내는 것이다.
이게 중요하다.
우울증에 걸리면,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고,
이는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야’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데,
이를 닦는 것은
‘나는 우울증에 걸려 있어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 내는 사람이야!’라는 고양된 자기 인식을 갖게 한다.
그래서 내가 발견한 또 하나의 우울증 치료방법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해 나가기!’
1. 이를 닦기
2. 이불을 개기
3. 신발장을 정리하기
4. 아침을 챙겨 먹기
5. 하루 한 명의 사람에게 안부 전화를 걸기
6. 한 페이지라도 책을 읽기 등등
이런 묵묵한 버티기를 통해, 약간의 시간들 동안 우울증을 벗어날 체력을, 면역력을 키우게 될 것이다.
물론 당분간은 계속 우울하고, 슬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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