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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슬플 예정 12

산의 아름다움으로 우울증과 싸우기

2021년 03월 31일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아, 날이 샜고, 그 새벽이 아까워 어스름한 시각 5시 반, 길을 나섰다.

수락산으로 출동!

수락산에서 처음 만난 진달래!

나 보라고 저렇게 수줍게 새벽에 피어 있는 것인가?



일부러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을 골라 마스크를 벗고 올랐다.

손에는 핸드폰을 꼭 쥐고 있었다.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당분간은 슬플 예정’ 쓰는 것이 내게 우울증 치료제이기 때문이다.

쓰는 동안은 생각을 안 하게 되고, 그러면 슬프지 않아도 되고, 울지 않아도 되고, 무기력증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작은 성공’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새소리는 유난히 크다.

와! 저렇게 청량했던가?

마치 플루트처럼 고운 음으로 노래를 부른다.

신기한 것은, 한 녀석이 노래 부르면, 다른 녀석이 응답을 한다는 것이다.

내게도 누군가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부르면 ‘너 거기 잘 있지? 내가 걱정 많이 하고 있어! 너 혼자 아니니까 힘 내! 니 옆에 계속 있어줄게!’라고 응답하는….

왜 이리 혼자인 것 같고,

왜 이리 죽고 싶을 만큼 고독한지…

새벽이라 그런가?

사람들이 없어서 그런가?


산 중턱의 바위 위에 걸터앉아서, 유튜브를 켜고, 잔나비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이라는 노래를 검색했다. 

특히 JTBC에서 은평구 한옥마을에서 진행한 비긴어게인 편이 기가 막힌다. 




기분이다.

사이트도 공유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hG044Tfz938


참고로 말하지만, 이 노래는 팬들 사이에 '뜨여남볼'이라고 불리운다. 귀엽다. 


요즘 희한하게 잔나비가 좋다.

일부러 노래를 찾아 듣는 성격이 아닌데, 우연히 잔나비 노래들의 가사에 빠져서,,,

그중에 나의 최애 노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 실력에 계속 따라 불렀다.

뭐 어때?

사람들도 없는데,,


 그땐 난 어떤  마음이었길래 
 내 모든 걸 주고도 웃을 수 있었나 
 그대는 또 어떤 마음이었길래 
 그 모든 걸 갖고도 돌아서 버렸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 품 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갈 위해서 남겨두겠소 
 다짐은 세워 올린 모래성은 심술이 또 터지면 무너지겠지만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 품 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갈 위해서 남겨두겠소 
 그리운 그 마음 그대로 영원히 담아둘 거야 
 언젠가 불어오는 바람에 남몰래 날려보겠소

 
 눈이 부시던 그 순간들도 가슴 아픈 그대의 거짓말도 새하얗게 바래지고 

 비틀거리던 내 발걸음도 그늘 아래 드리운 내 눈빛도 아름답게 피어나길 
 눈이 부시던 그 순간들도 가슴 아픈 그대의 거짓말도 새하얗게 바래지고 
 비틀거리던 내 발걸음도 그늘 아래 드리운 내 눈빛도 아름답게 피어나길 

이제야 보내주오 

그대도 내 행복 빌어주시오


가사가….

특히, 후렴구는 예술이다.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파트들이...

바위에 걸터앉아, 한 열 번은 들은 것 같다.

새소리가 코러스처럼 들려 감정을 후벼 파는 기분이다.

노래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나?

이 목소리 뭐야?


당연히 눈물은 보너스!

언제고 이런 노래를 한 번 만들어봐야겠다. 

다짐했다.


다시 발길을 재촉했고, 이번에 만나게 된 녀석은


나무!

어지러이 있지만, 나름의 생명력으로 산을 만들고, 그늘을 만들고, 친구를 사귀며, 봄을 지켜주는!

참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구나!

나무야! 나라도 알아줄게!


천상병 시인의 시가 개나리와, 다리 난간과 나무와 함께 있다.

산에 있는 모든 것은 조화롭지 않은 것이 없다.

나무, 꽃, 물, 바위, 풀….

자연스럽다! 는 말이 이제야 그 뜻을 깨닫게 된다.

아름답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산에 장관이 펼쳐져 있다.

분홍빛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일부러 오솔길을 찾아온 건대, 여기 이렇게 너네들끼리 오손도손 모여 이야기하고 있었구나!

내가 더 분홍빛이라며, 네가 더 환하게 웃고 있다며 행복을 나누고 있었구나!

사람들 손이 타지 않은 곳에는 간혹 이렇게 감탄이 존재한다. 

그 감탄이 우울증을 낫게 하고,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고, 그 희망이 잠자고 있는 공황장애를 계속 잠들게 하는 듯하다.


이제 슬슬 해가 떠오를 차례이다. 

장엄하다.

뜨겁지도 않고, 압도하지도 않지만, 

잔잔한 장엄함이 내게 올 거라는 기대!

그 기대는 어긋남이 없다.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를 배경은 또 내게 

‘우울증은 없다!’라는 주문을 외우는 듯하다.

역시 우울증에는 태양이 약!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말했다.

Another day of the sun이라고 라라랜드에서 노래했다.

태양은 희망이고, 꿈이고, 목적이고, 동기이며, 에너지다.


이제 내려가 볼까? 하는데, 아직 피지 못한 적목련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난 안 보고 갈거냐?”고


백목련은 저리 활짝 피었는데,,

적목련은 이제 막 필 준비를 하고 있다.

누군가는 먼저 피고,

누군가는 나중에 핀다.

인생도 그렇겠지?

누구의 인생은 먼저 피고,

누구의 인생은 나중에 피는 거겠지?

내 인생도 언젠가 한 번은 피겠지?

내게도 한 번의 기회가 오는 거겠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 기회, 모든 것을 거는 희망에 너를 맡겨봐!’라고 적목련 봉오리가 내게 말했다.

그게 그렇게 위안이 되었다.

아직 나의 꽃은 피지 않은 거라고!

그 시기는 곧 올 것이라고….


누구도 얘기해주지 않은 이야기를, 

저 꽃봉오리가 붉게 이야기해 주었다. 


산을 가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우울증을 잊었다.

그러니,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면

1, 봄 산에 가서 제일 먼저 진달래를 만날 것

2, 바위 위에 앉아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불러볼 것

3, 나무를 만나서 나무의 의미를 되새길 것

4, 산에 존재하는 모든 조화로운 것들을 알아챌 것

5, 일부러 오솔길을 골라서 새로운 자연과 만날 것,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귀 기울일 것

6, 태양이 뜨기를 기다렸다가, 그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낼 것

7, 활짝 핀 백목련을 배경으로, 이제 막 피어나려는 적목련 봉우리가 나에게 주는 메시지를 해석하고, 기억할 것!


그렇게 7가지 우울증 치료제를 습득하고 내려왔지만,

여전히 당분간은 슬플 예정!


#공황장애 #우울증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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