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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슬플 예정 20

라일락 꽃 향기에서 인생을...

우울증이 갑자기 지독하게 도져서 브런치에 글 올리는 것도 힘과 용기가 필요한 이틀이었다.

이게 뭐라고?

전에 적어 놓은 거 복사 + 붙여넣기 하는 것이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책상에 앉기도,

전원선을 멀티탭에 연결하기도,

노트북을 열기도,

power를 누르는 것도,

암호를 치는 것도,

브런치 폴더를 찾는 것도, 

구글 크롬에서 브런치를 여는 것도,

카카오 비밀계정으로 시작하는 것도,

뭐가 그리 힘들었던 것일까?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을!


그냥 어!

딱 의자 빼고 앉아서,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부정적인 생각 들기 전에, 샥샥착착!

하면 될 것을...

다음에 우울감이 찾아오면 이걸 꼭 기억해야겠다.

샥샥착착!


이번 내용은 2021년 4월 21일 아니다. 12일이구나! 

그 날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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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12일 



아파트 화단 앞에 꽃잎이 잔뜩 모여있길래, 

‘이게 무슨 꽃이지? 벚꽃은 다 진지 오랜데..’

하고 자세히 살폈는데, 모르겠다.

고개를 들어 무슨 나무가 있나 살폈는데,


라일락이다.

아니 4월에 라일락이 피는 게 말이 돼?

5월에 피는 거 아냐?

이거 배신이야 배신!


그나저나 벌써 이렇게 피고 지는 거야?

잠깐!

라일락은 향기인데!

마스크를 벗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향기가... 본래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쥐스킨트인가? '향수'라는 책을 내신 분.. 

군대에서 읽었던 책인데,, 강렬하기가 그지없어서, 꽤나 충격적이었는데,,

아마 그 소설에 비견할 만한 향기?

저녁을 배경으로 가득, 꽉 차 있었다.

어째서 이 향기가 이렇게도 진한데 내가 모를 수 있었을까? 

의아심이 들 정도였다.


또 그런 거 없나?

원래 있는데, 원래 내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거!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

나의 회복을 바라는 지인들?

다 잘 될 거라고 말해주는 응원들?

다시 본래대로 돌아올 거라고 얘기해주는 격려?

그렇게 되면 좋겠다.

행복했던, 우울하지 않았던, 희망으로 가득 찼던 그곳, 그 시간이 되돌아오면 좋겠다.

가능할까?

시간이 흘렀고, 온도가 달라졌는데,,

그래도 어쩌랴?

내 할 일을 묵묵히 또 해낼 수밖에!


라일락을 보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 비 흩날린 가을 오면  아침 찬 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우 우우우 우
 야위어 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 향기 더하는데
 우 우우우 우 
 아름다운 세상 너는 알았지 내가 사랑한 모습
 우 우우우 우
 저 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 밑  그 향기 더하는데
 

 저 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 밑
 그 향기 더하는데
 내가 사랑한 그대는 어디'


이문세 노래나 들어야겠다.

한 때 10시만 되면, EBS 교육방송을 들어야 하나, ‘별이 빛나는 밤에’ 들어야 하나를 고민하게 했던 우리 문세형!


아! 뭔가를 해야 할 것이 생겼다.

하여간 우울증에는 뭔가를 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애잔한 것과 관련된 거면 더 좋다.

그렇게 나를 집중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무언가를 한다면 우울증은 잠시 잊어도 좋겠다.

뭔가를 하지 않고, 멍하게 있는 순간, 우울증은 그 발톱을 드러내어 나의 심장을 마구 할퀸다.

가만있자. 문세형 노래가 뭐가 있더라?


옛사랑, 소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깊은 밤을 날아서, 사랑이 지나가면, 그리고 광화문 연가…

‘이젠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은 아직 남아 있어요….’


문세형 요즘 몸이 안 좋아서, 강원도 어딘가에서 요양하고 있다던데,,

힘을 내요 문세형님!


라일락 꽃 보니까 새삼 추억 돋는다. 



사진에서 꽃 향기가 물씬 나지 않는가?

라일락 꽃잎을 누군가 먹을 수 있다 해서, 하나만 먹어보았는데,

향기와는 다르게, 쓰다!

씁쓰름..

향기가 좋아 기대를 했는데,

적어도 진달래보다는 맛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보기와는 다르다.

삶도 그러하다.

보기와 다르다.

내 삶도 다른 사람이 보기와 다르듯이,

다른 사람의 삶도 내가 보는 것과 많이 다르다.

우리는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

남들이 보는 나의 삶?

내가 보는 남들의 삶?

꼭 집중해야 하는 걸까?

둘 다 집중 안 하면 안 되는 걸까?

집중하다 보니, 내가 이렇게 힘들고 지쳐버린 것은 아닐까?

그래도 둘 중에 하나 고르라면, 나는 

'내가 보는 남들의 삶!'

나는 분명 오해할 터다.

나는 분명 나만의 기준과 경험치로, 그들은 '이럴 것'이다!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상처가 될 것이다.

마땅히 그 사람이라면 내게 이래 줘야 하는 거 아냐?라는 기대!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오해하고, 배신감 느끼고,,,,,

그러니, 마땅히 내가 조심하고, 내가 판단을 경계할 일이다.

무릇 우울증의 큰 부분은, 사업이나, 시험, 승진, 재산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관계에서 오는 것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기에,,

라일락 꽃잎 하나 맛봤는데, 그 아스라한 쌉쌀함에서 인생의 철학을 깨우치다니...

우울증은 이래서 좋다.

역설적이게도, 라일락 꽃잎을 맛보는 그 찰나의 순간에는 우울하지 않아서 좋다.


그러니, 우울증을 벗어나는 방법으로는

1.     라일락 나무 아래에서 라일락 향을 맡을 것

2.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릴 것

3.     유튜브로 들어도 좋겠다.

4.     꽃잎 하나를 따서 먹어볼 것. 두 개 먹어보는 것은 안 권한다. 

5.     보이는 것과,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챌 것

6.     그것을 삶에 적용할 것


라일락 덕에 추억 돋고, 새로운 것을 배웠지만,

괜찮아질 때까지 계속 아플 예정, 슬플 예정!


#공황장애 #우울증 #라일락 #이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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