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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슬플 예정 24

대한항공은 슬픈 비행기이다!

2021년 4월 23일

일이 있어서, 울산엘 가게 되었다.

요즘엔 기분의 등락이 너무 심해서, 일을 웬만하면 안 하고 있는데, 그래도 삶은 이어져야 하니, 일을 해야 할 때엔, 약을 세게 먹고 하고 있다.

근데 약이 참 좋아! 

효과가 금방 나타나고, 심지어 전혀 아픈 사람 같지 않게 해 준다.

근데 그게 더 슬프기도 하다.

사람들은 내가 아프지 않은 줄 알고 있다.

굉장히 긍정적이고, 유쾌하다고 느끼고 있다.

가면을 벗고 나면, 나의 우울감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그렇게 되면, 또 약을 먹게 되고,, 그렇게 약에 의존하는 것이 싫어서, 웬만하면 일을 안 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도 이번 일은 부담이 많이 덜 한 일이어서,,, 게다가 비행기!

비행기!

나는 희한하게 비행기 타는 것이 좋다.

어렸을 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축구하다가, 하얀 두 줄 을 길게 늘어뜨리며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며,

‘저런 비행기에는 누가 탈까?’

‘나도 언젠가는 비행기 탈 수 있을까?’

하고, 막연하게 동경했던 장면들이 선명해서 그런 걸까?

나는 비행기 예약하고, 공항에 가고, 비행기 기다리며 햄버거를 먹고,

발권을 하고, 짐 검사를 하고, 면세점을 둘러보는 일련의 행동들이 

어린 시절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 같아 사뭇 신성하기까지 하다.

6시 50분 비행기였나?

6시 10분쯤 도착했는데,, 이럴 수가,, 

사람들이 사람들이 어마어마하다.

김포공항 1층은 텅 비어 있어서,, 오호, 새벽이라 한가하구먼! 했는데,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완전 북새통!

아차! 오늘 금요일이구나!

전부 제주도 가는 사람들이었다.

와! 코로나 상황인데, 이렇게 사람이 많나?

다들 데스크에 줄을 길게, 정말 끝도 없이 길게 서있는데, 나는 셀프체크인 기기로 가 보았다.

시간이 없었다.

쉭쉭.. 금방 체크인이 끝났다.

아직은 기계치가 아닌가 보다.

자! 그럼 저 사람들 올라오기 전에 잽싸게 게이트에 들어가야겠다! 싶어 3층으로 갔는데, 이상하게 계단에 사람들이 못 올라가고 있다. 

뭐지?

비집고 3층에 가보았는데,,

뭐여?

줄이었어!

게이트에 들어가는 줄이 계단까지…

절망..

이를 어쩌지?

게이트 통과하려면,,, 2시간은 걸리겠는걸?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KTX를 도전해야 하나?

조마조마하는데,, 우울증은 생각도 안 났다.

생각해보니 그렇네..

문제 해결만 신경 쓰느라 내가 아픈지도 몰랐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네!


근데 이상하게 조기 6명 정도만 줄 서 있는 곳이 있는데, 저긴 뭐지?

‘바이오 생체 인증’ 줄!

어?

나 저거 코로나 터지기 전에 제주도 간다고 몇 번 한 적이 있는 거 같은데, 아직 유효한 건가?

스윽 도전했더니, 

‘삐빅’ 소리를 내더니 문이 열렸다.

와!

기분 좋은데?

사람들 저렇게 줄을 길게 서 있는데, 나는…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처럼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입장!

오늘 좋은 일이 일어나려나?

비행기를 탔다. 


승무원의 안내방송이 들리고, 비행기가 활주로에 들어선다.

서서히 속도를 올리더니, 이내 날아오르고, 구름 위를 날기 시작했다.

뒤이어 나오는 기장의 목소리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러분들을 울산까지 모시고 갈 기장 ***입니다”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툭! 하더니,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기장의 목소리가 슬펐던 걸까?

동시에 창문으로 보이는 비행기 날개가 슬펐던 걸까?

또르륵 수준이 아니라, 주르륵주르륵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쓰고 있던 마스크가 더 젖고, 미처 마스크를 벗어나지 못한 눈물이 내 입술에 닿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콧물도 흐르고,,,

심지어 조용히 흐느끼기까지…

왜 그렇게 슬펐던 걸까?

왜 그렇게 서러웠던 걸까?

왜 그렇게 아팠던 걸까?

왜 그렇게 절망적이었던 걸까?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더니, 승무원이 지나가면서

“고객님 괜찮으세요?” 물었다.

그게 또 그렇게 슬펐다.

겨우겨우 참아내는 힘을 키워가고 있었는데,

다시 터진 둑처럼 눈물이…

눈이 뻘게질 때까지 꺼이꺼이 울었다. 

그 와중에도 내가 얼마나 슬픈지, 내가 얼마나 힘든지,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나도 보고 싶었나 보다. 핸드폰을 꺼내 들어 나를 찍어보았다.

'아! 너는 이렇게 절망하고 있구나!'

'아! 너는 이렇게 포기하고 있구나!'

'아! 너는 이렇게 무너지고 있구나!'

사진 속의 나를 들여다보며, 이상한 공감을 나누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슬퍼 보였다. 비행기 의자도 슬펐고, 비행기 통로도, 앞좌석에 꽂혀있는 브로셔도, 비행기 바닥도, 비행기 선반도 너무 슬펐다.

슬퍼서 계속 울었다.

처음엔 참으려 하다가, 아예 슬픔에 나를 내어줘 버렸다.

아예 펑펑 울어버리자고!

딱 한 번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길래,

‘이대로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겠다!’ 싶었다.

죽음을 이렇게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구나! 싶었다.


비행기 타고 있는 내내, 울었다. 

기록을 세웠다.


그래도 한 시간 울고 나니, 개운해졌다.

눈물이 치유에 좋다고 하더니…


정리를 어찌해야 하나?

1.     예전에 좋아했던 것을 기억해내고, 시도하자

2.     비행기를 타라(낯선 곳으로 가기)

3.     바이오 생체 등록은 꼭 해 놓아라

4.     울음을 참지 마라!

울산에서 김포 오는 비행기에서도 계속 눈물이 났다.

눈물 흐르지 말라고,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마음으로 울었다.

어깨로 울었다.

꽉 깨문 입술로 울었다.


내게 대한항공은 슬픔으로 기억될 것 같다. 


슬픔이여 안녕!


#우울증 #대한항공 #공황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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