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으슥한 골목길을 지나쳐야 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모골이 송연해진다.(와! 이 표현 몇 년만이지? 이걸 기억하다니… ‘털 모, 뼈 골, 두려울 송, 그럴 연 : 털과 뼈가 쭈뼛해질 정도로 오싹하다’라는 뜻이라 한다.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그래서 발걸음을 빨리 하는데, 그 발걸음 소리도 따라서 빨라진다면? 이건 뭐 두려움 때문에 심박수가 증가하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았는데, 마중 나온 아빠라면?
두려움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질 것이다.
알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모르니까 두려운 것이다.
컴퓨터가 막 나오고, OHP대신에 파워포인트로 발표하라고 했을 때, ‘파워포인트’가 뭐야? 하며 두려워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파워포인트가 나의 무기일 정도다.
알기만 하면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기가 되게 할 수도 있다는 증거이다.
이런 것을 알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슬프고, 서럽고, 괴로웠다.
그래서 눈물이 났던 것이다. 그게 더 슬펐다. 아는데, 어쩔 수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주 슬픈 일이다.)
그냥 운 것도 아니었다.
처음엔 ‘흑흑’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엔 ‘엉엉’으로 바뀌어 있었다.
심장 한쪽에 묵직한 서러움 가득 안고서, 헬스기구 움직이면서, 힘주면서, 그 루틴에 맞춰 울고 있었다. 이상하게 리듬이 맞더라는…
확실하진 않지만, ‘렛 풀다운’이라 불리는 이렇게 생긴 녀석이다.
운동은 호흡이 중요한데,
힘을 주고 나서, 숨을 내뱉어야 한다. 호!
힘을 풀고 나서, 숨을 들이쉬어야 한다. 흡!
그래서 호흡이라고 한다고 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호흡!
잠잠하다 싶었는데, 터져 나오는 울음에 그냥 렛풀다운만 하염없이 하고 있었다,
내게 ‘렛풀다운’은 이제 슬픈 헬스기구가 될 것 같다.
저 번엔 대한항공이 슬프더니, 이젠 ‘렛풀다운’이다.
한 가지 이상한 건, 운동을 하면,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어 좋은 생각들을 할 수 있다고, 하버드 대학원의 Amy Cuddy교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왜 슬픈 생각이, 그것도 운동하는 중에 갈 길 모르고, 터져 나와서 사람 당황스럽게 하는지..
그래도 굴하지 않고, 헬스 기구에 맞춰 울며, 운동하며, 기합 한 번 넣고, 울음소리 한 번 넣고!
아마 사람들이 ‘저 새끼 진짜 운동 열심히 하네! 힘들어서 우는 거 봐봐!’ 했을 것 같다.(새벽 5시에 오는 운동충들이 한 4명 정도가 있다. 요즘은 경쟁하고 있다. 누가 일찍 오는지! 별게 다 경쟁이다)
한 시간 정도 울고 나니, 마음이 많이 홀가분해졌다.
샤워를 하고 나니, 더 개운해졌다.
다행이다 싶었다.
만약 이 슬픔이 터져 나올 때,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으면, 그 밀려드는 슬픔을 혼자서 어찌 감당하고 있었을지… 또 그 거센 사막의 모래폭풍을 옷 하나 없이 발가벗겨진 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고통?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듯한 프로메테우스의 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