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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슬플 예정 29

슬픈 헬스장!

2021년 5월 23일


헬스장에서 엄청 울었다.

어제 장례식장에 다녀오고 나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 때문이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에게 종교가 생긴 이유가 두려움 때문이라 들었다.

인간의 두려움 중에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고!

왜냐?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르면 두려워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산이라면, 길이 잘 닦여 있어도, 두렵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라면, 그게 외국이면 더 그렇다.

새로운 지식도 그렇다.

직장을 선택할 때도, ‘이게 맞나?’하는 것은 궁금함이라기보다, 차라리 두려움이다.

그래서 미래가 두려운 것이다.

가 보지 않았고,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도 잘 모르는 사람이면 두렵지 않은가?


나는 무엇을 몰라서, 그 새벽에 헬스장에서 한 시간을 넘게 울었던 것일까?

나의 미래?

나의 일?

나의 사람?

나의 능력?


나는 어떻게 그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것일까?

알면 된다.

퇴근길에 으슥한 골목길을 지나쳐야 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모골이 송연해진다.(와! 이 표현 몇 년만이지? 이걸 기억하다니… ‘털 모, 뼈 골, 두려울 송, 그럴 연 : 털과 뼈가 쭈뼛해질 정도로 오싹하다’라는 뜻이라 한다.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그래서 발걸음을 빨리 하는데, 그 발걸음 소리도 따라서 빨라진다면? 이건 뭐 두려움 때문에 심박수가 증가하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았는데, 마중 나온 아빠라면?

두려움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질 것이다.

알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모르니까 두려운 것이다.

컴퓨터가 막 나오고, OHP대신에 파워포인트로 발표하라고 했을 때, ‘파워포인트’가 뭐야? 하며 두려워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파워포인트가 나의 무기일 정도다.

알기만 하면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기가 되게 할 수도 있다는 증거이다.


이런 것을 알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슬프고, 서럽고, 괴로웠다.

그래서 눈물이 났던 것이다. 그게 더 슬펐다. 아는데, 어쩔 수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주 슬픈 일이다.)

그냥 운 것도 아니었다.

처음엔 ‘흑흑’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엔 ‘엉엉’으로 바뀌어 있었다.

심장 한쪽에 묵직한 서러움 가득 안고서, 헬스기구 움직이면서, 힘주면서, 그 루틴에 맞춰 울고 있었다. 이상하게 리듬이 맞더라는…

확실하진 않지만, ‘렛 풀다운’이라 불리는 이렇게 생긴 녀석이다.


운동은 호흡이 중요한데,


힘을 주고 나서, 숨을 내뱉어야 한다. 호!

힘을 풀고 나서, 숨을 들이쉬어야 한다. 흡!

그래서 호흡이라고 한다고 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호흡!


잠잠하다 싶었는데, 터져 나오는 울음에 그냥 렛풀다운만 하염없이 하고 있었다,

내게 ‘렛풀다운’은 이제 슬픈 헬스기구가 될 것 같다.

저 번엔 대한항공이 슬프더니, 이젠 ‘렛풀다운’이다.


한 가지 이상한 건, 운동을 하면,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어 좋은 생각들을 할 수 있다고, 하버드 대학원의 Amy Cuddy교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왜 슬픈 생각이, 그것도 운동하는 중에 갈 길 모르고, 터져 나와서 사람 당황스럽게 하는지..


그래도 굴하지 않고, 헬스 기구에 맞춰 울며, 운동하며, 기합 한 번 넣고, 울음소리 한 번 넣고!

아마 사람들이 ‘저 새끼 진짜 운동 열심히 하네! 힘들어서 우는 거 봐봐!’ 했을 것 같다.(새벽 5시에 오는 운동충들이 한 4명 정도가 있다. 요즘은 경쟁하고 있다. 누가 일찍 오는지! 별게 다 경쟁이다)


한 시간 정도 울고 나니, 마음이 많이 홀가분해졌다.

샤워를 하고 나니, 더 개운해졌다.

다행이다 싶었다.

만약 이 슬픔이 터져 나올 때,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으면, 그 밀려드는 슬픔을 혼자서 어찌 감당하고 있었을지… 또 그 거센 사막의 모래폭풍을 옷 하나 없이 발가벗겨진 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고통?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듯한 프로메테우스의 고통?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오늘 새벽 헬스장에서 말 그대로 ‘만감이 교차’했던 것 같다!

미래가 어찌 될지 모르는 두려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절망,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허무함,

‘왜 그렇게 안 되는 거야?’하는 초조함,

‘나는 쓸모가 없어!’라는 우울함,

갑자기 터져 나오는 울음 덕에 당황스러움,

‘잘 될까?’하는 불안함,

어찌해야 될지 모르는 혼란스러움,

계속 이런 상황일지 모르는 막막함,

이 정도 나이면 이렇게 되어 있겠지 했는데, 이루어 놓은 것은 없는 허탈함,

열심히 했는데, 이 정도라 억울함,

‘최선을 다했다’ 생각한 데서 오는 쓸쓸함,

이제 내가 무엇을 해도 마음에 들지 않을 거라는 겁남,

그리고,

그래도 이렇게 새벽에 나와서 운동하고 있다는 뿌듯함,

좌절에 굴하지 않고 도전하는 약간의 당당함,

이렇게 조금씩 성장하는 나를 발견한 반가움,

배치기 없이, 정석으로 완성시킨 6개의 턱걸이 덕에 흐뭇함,

기구와 울음이 이상하게 들어맞는 경험 덕에 재미있음,

새벽에 누가 먼저 헬스장 출석하나 경쟁하는 이상한 친근감,

한참 울고 나니, 찾아오는 홀가분함,

샤워하고 나니, 느껴지는 개운함,

헬스장 건물을 나섰는데도, 사람들이 거의 안 다니는 데서 느끼는 평온함!


나는 잘 될까?

두렵지만, 묵묵히 가야겠다.

가 봐야 알겠지!

강물이 어디로 흐르는지 지켜볼 일이다!

그때서야 두려움이 사라지겠지!

그때까지는 당분간 슬플 예정, 그래도 참아낼 예정!


#우울증 #공황장애 #헬스장 #눈물 #슬픔 #렛풀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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