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체를 벚어젖힌 이제 갓 돌을 넘긴 아이가 초롱초롱 눈을 응시하는 사진이 박힌 큼지막한 깡통에 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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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한 베이지색 분유 가루!
숟가락으로 한입 떠먹으면, 음...
혀끝에서 느껴지는 그 달콤함!
미세하게 혀 가운데에서 느껴지는 그 약간의 짭짤함!
맛의 90프로를 차지하는 고소함은 입 안 가득하게 느껴지고, 서걱거리는 식감은 귀의 촉감을 깨웠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평생 입에 넣고 느끼고 싶은 어린 시절의 그리움, 충격, 환희였다.
문제는 엄마가 그걸 장에 몰래 숨겨두고 가끔씩 아들 넷에게 주셨던 것이다. 그땐 그게 그렇게 야속했네!
이 맛있는 걸 왜 조금씩 가끔씩 주지?
없는 살림에 그것도 나름 최선을 다하신 것이었을 것이라 이제야 이해되는 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일 게다. 이해한다는 것은 대견하면서도 짐짓 슬프다.
여하간, 그 분유의 좋은 맛, 훌륭한 기억 때문일까?
한 동안 분유에 집착한 기억이 있다.
화를 거의 내지 않는 내가 엄마에게 더 달라고 떼를 쓰거나, 늘 동생에게 줬으면 줬지 빼앗아먹는 법이 없던 내가 동생을 구슬려서 분유를 빼앗아 먹거나, 내 걸 항상 빼앗아 먹던 작은형에게 늘 군말 없이 내어주던(안 그러면 작은 형은 나를 때렸다. 나쁜 놈), 나도 분유만큼은 주고 싶지 않아 반항하다가 얻어맞기 다반사였다.
내게 분유는 뭔가 포기할 수 없는 결연함이요, 처절함이었다. 그게 뭐라고!
아침에 헬스장엘 가려고 물병을 집어 들고 단백질 쉐이크 뚜껑을 열고, 숟가락으로 가득 담아 물병으로 옮기는데,
문득 어린 시절 분유가 생각났다.
베이지색 가루에 심지어 향도 비슷하다. 바닐라맛 단백질쉐이크라서... 쿠팡에서 46프로 세일하길래...
보통 우유에 타거나, 물에 타서 흔들어 먹는데 옛날 생각에 그냥 생으로 맛을 보았다.
달콤한 맛이 혀 끝에서..
짠 맛은 없고,
억지로 찾아낸 고소함은 입안 전체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맛이 되고, 향이 되었다.
그래도 어린 시절 그 열정, 환희, 충격은 아니었다.
그게 슬펐다.
내가 그렇게 좋아했는데,
내가 그렇게 평생 함께 하고플 정도로 집착했는데...
그러고 보면 집착이란 어쩌면 일정순간 동안의 깊은 애착이지 싶다.
시간이 지나면 있었는지도 모르는,
혹은 기억은 하지만, 가끔 떠오르는,
다시 마주하게 되었을 때엔 예전의 그 느낌이 아닌..
난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성공에 대해?
부유함에 대해?
잃어버린 무엇에 대해?
결국, 성공, 부유함, 잃어버린 무엇도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려나? 기억하긴 하지만 가끔 떠오르려나? 다시 마주하게 되었을 때에 예전의 그 절실한, 한결같은 눈물 나는 그리움은 아니려나?
그러니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겠다.
너무 마음 쏟지 말아야겠다.
너무 위하지 말아야겠다.
나만 아프다.
나만 괴롭다.
나만 슬프다.
나를 위한 시간과 공간도 준비해두어야겠다.
너무 집착하지 않으려면?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고, 새로운 곳에 자꾸 가 봐야할 일이다.
'집착'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대상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시계에 집착한다거나, 명품에 집착한다거나, 고시공부에 집착한다거나, 한 사람에 집착한다거나...
그것을 갖지 못하거나, 이루지 못한다면 절망하고 무너질 것이다. 고시 공부하는 사람 중에 몇 프로나 시험에 통과할까? 많은 사람들이 명품을 원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생 몇 개 정도, 어쩌면 한 두 개 정도, 어쩌면 한 개도 못 가져볼 수도 있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할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사랑에 실패해서 마음 아파하는 노래가 사랑받아서 기뻐하는 노래보다 훨씬 많은 걸 보면 역시 절망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이겠다.
게다가 원하는 그것을 얻기까지 행복함은 계속 요원할 것이고 미뤄둬야 할 것이다.
행복도 요원하고, 절망할 수도 있는데..
손해 나는 행동은 그만하자.
어느 것 하나에 집착하지 말고, 다양한 것들을 경험해 보자!
맨날 가는 프랜차이즈 커피숍 대신에 동네 한적한 핸드드립 커피를 다루는 카페에 가거나,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 본다거나, 시계 살 돈으로 기부를 해 본다거나, 명품 대신에 재활용 소재로 만든 옷이나 가방을 구경해본다거나, 너무 한 사람 말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본다거나...
한 대상으로의 올인은 아름다운데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물론 사람마다 가치가 다르니까 옳다 그르다 할 일은 아니다.
아니 내가 분유를 좋아한다는데 그게 그른 일은 아니지 않은가?
아니 누군가 다른 건 모르겠고 시계를 그렇게 좋아 산다는 데 누가 "너 그러면 안돼!"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 한 사람을 지극히 사랑한다는데 그게 어떻게 잘못되었단 말인가?
다만 그것을 행하는 자신도 돌보고, 사랑하자는 말 되겠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도 결국 집착에서 오는, 바라는 것을 이루지 못한 데서 오는 절망이며, 추락이며, 파국이니까!